손으로 빚어낸 유쾌한 상상력-유령신부, 윌래스와 그로밋
애니메이션 ‘유령신부’와‘월래스와 그로밋’
3차원(3D) 애니메이션의 매끄러운 영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섬세하고 따뜻한 ‘손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두편이 나란히 가을 극장가를 찾는다.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의 〈월레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위 사진)와 팀 버튼 감독의 〈유령신부〉(아래 사진). 각각 전작의 명성과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애타게 개봉이 기다려지는 작품들이다.
스타일로 승부한다 〈유령신부〉=팀 버튼 감독의 두번째 애니메이션인 〈유령신부〉는 그의 첫 애니메이션인 〈크리스마스 악몽〉의 제작방식과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이다. 걸어다니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처럼 팔다리가 부러질 듯 길고 가는 인물들, 사람보다 유령들이 더 즐겁고 부산하게 살아가는 세계 등이 〈크리스마스 악몽〉을 빼닮았다. 차이라면 전작의 출연배우들이 철사에 흙을 덮어 빚은 인형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흙 대신 실리콘으로 업그레이드된 정도. 그리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는 한번에 0.5㎜씩 손으로 인형을 움직이며 촬영해야 하는 스톱모션의 더디고 뻣뻣한 작업의 결과를 마치 3차원 애니메이션처럼 유려하게 바꿔놓았다.
러시아의 민담을 팀 버튼 식으로 변형했다는 〈유령신부〉는 결혼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청년과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살해된 처녀 유령의 만남을 줄거리로 한다. 생선장수로 떼돈을 벌어 아들을 귀족에게 장가보내려는 부모의 등쌀로 내일 결혼하게 된 빅터(목소리 연기 조니 뎁)는 결혼식 예행연습에서 실수를 연발하다가 목사에게 쫓겨나고 만다. 어두운 숲속에서 결혼서약서를 암기하며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것처럼 나뭇가지에 반지를 끼우니 처녀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빅터를 데리고 지하세계로 간다.
비록 눈알이 수시로 툭 떨어지고 눈구멍에는 구더기가 살지만 수줍고 여린 유령 신부, 유령 신부가 사는 지하세계는 욕심과 이기주의로 가득 찬 지상보다 더 생기있다. 창백한 잿빛에 그로테스크한 고딕풍으로 묘사된 지상에 비해 오히려 지하세계는 천연색으로 알록달록하다. 누더기지만 마치 히피의 면사포를 두른 듯 매력적인 유령 신부의 차림과 극도로 과장된 인물들의 모습이 어두움 속에서 유쾌함을 찾아내는 팀 버튼의 감수성과 독특한 스타일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11월3일 개봉.
따뜻하고 포근한 클레이메이션의 정수 〈월래스와 그로밋〉=부드러운 흙을 빚는 이의 지문까지 생생하게 드러나는 〈월래스와 그로밋〉은 투박하지만 아늑하고 귀엽다. 첫 개봉편이 세개의 단편을 묶었던 데 반해 〈거대토끼의 저주〉는 제대로 완성한 장편이다. 전편의 불량 펭귄을 대신해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막강 조연은 돼지코의 토끼들이다. 야채 축제를 앞두고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레 키우고 있는 채소를 갉아먹는 토끼들을 잡는 ‘해충관리 특공대’ 월래스와 그로밋은 강적을 만난다. 엄청나게 큰 토끼가 밤마다 마을 야채밭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월래스는 사기충천한 사고 대장이고, 우정과 헌신, 용기의 화신 그로밋은 월래스가 저질러 놓은 사고들을 수습하고 다닌다. 눈 위의 피부(흙)가 조금씩 움직이며 애교에서 분노, 섹시함까지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그로밋의 ‘표정 연기’는 관객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최첨단 공법을 완강하게 거부하며 수공업적 정교함을 표방하지만 〈슈렉〉이 몰고온 패러디 열풍에는 아드만 스튜디오도 예외가 아닌 듯 〈플라이〉 〈킹콩〉 등의 주요 장면들이 ‘깜찍’ 버전으로 재현된다.
〈거대토끼의 저주〉와 함께 상영하는 10분짜리 단편 〈마다가스카 펭귄들의 크리스마스 미션〉에서는 〈마다가스카〉에서 살벌했던 ‘조직’ 펭귄들의 근황도 확인할 수 있다. 11월4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손으로 빚어낸 유쾌한 상상력-유령신부, 윌래스와 그로밋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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