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가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익숙했던 내 얼굴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저도 처음 보는 낯선 얼굴, 낯선 표정 투성이였어요.” 배우 손예진(사진)이 23일 개봉하는 영화 <비밀은 없다>를 본 소감이다.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서 배우 스스로도 “내 필모그래피 중 가장 독특한 영화, 이렇게까지 전형성을 벗어난 영화는 없었다”고 할 만큼 낯설고 독특한 이야기에 뛰어든 손예진을 만났다.
제목관 달리 이 영화엔 비밀이 아주 많다. 국회의원 선거를 보름 앞두고 후보의 딸이 실종됐다. 정신이 나간 듯 딸을 찾아 헤매는 엄마 연홍(손예진)에겐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여전히 유세에 몰두하는 남편 종찬(김주혁)과 가출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는 딸 민진(신지훈), 심지어는 딸 친구와 선생님까지도 모두가 수상쩍고 저마다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정말이지 우리가 가족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가 연홍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쌓았던 캐릭터는 촬영장에서 모두 깨졌어요. 제가 걱정스러워 하면 감독은 더 고래고래 소리지르라고 하는 식이었지요. 감독님이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생각을 다 내려놓고 거기에 따라갔어요.” 갑자기 흥분하고, 집착하고, 의심하고, 분노하는 손예진의 낯선 얼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의 손에 칼과 대걸레 자루를 쥐어준 것도 감독이었다. <비밀은 없다>는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그려낸 <미쓰 홍당무>를 만든 이경미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비밀은 없다>에 출연한 배우 손예진. 사진 엠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손예진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미쓰 홍당무>에 출연했던 공효진씨에게 이경미 감독님하고 일하는 건 어땠냐고 물어봤어요. 공효진씨가 ‘지독하게 반복시키고 울라고 하다가 웃으라고 하는 식으로 말도 안되는 지시를 하는데 나중에 보면 그게 다 맞아떨어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감독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배우로선 이토록 자기 세계가 확고한 감독을 만났다는 게 운이 좋을 수 있다”며 “저도 이 감독을 사랑하게 될까요? 영화를 한번 더 봐야 알 수 있겠다”며 웃었다.
“재미있다, 없다라고 한 가지로 말할 수 없는, 이렇게 명쾌하지 않은 영화엔 처음 출연한 것 같아요. 사람에 따라서 너무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영화죠.” 영화 <연애소설>(2002)부터 <타워>(2012),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 등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에 주로 출연했던 그에겐 아주 의외의 선택이었다. “고민되거든요. 저는 아주 많은 작품을 해왔잖아요. 매일 듣던 목소리, 내 얼굴이 이 작품 저 작품에 나오면 다들 지겨워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성형수술을 받거나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자꾸 다른 포인트를 갖고 있는 영화를 추구하게 되죠.” 올해 그는 또 어떤 방점을 찍게 될까. 6월 <비밀은 없다>에 이어 8월엔 그가 주연을 맡은 <덕혜옹주>가 개봉한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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