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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 영화를 본 뒤 눈을 뜨고 머리를 감았다

등록 2016-07-18 17:48수정 2016-07-20 19:56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마니아·일반관객·프로그래머·평론가의 B급 기억
출판사 편집자 김송은씨는 20년 전의 일 때문에 지금도 ‘공포영화 장애’를 겪고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친구랑 “재밌다”며 낄낄거렸는데 그날 이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어글리>가 바로 문제의 영화. 심리 프로파일러가 귀신을 보는 남자를 심문하고 그 형상을 보여준다. 김씨는 눈을 감으면 소복을 입고 늘어서는 귀신 때문에 머리 감을 때도 눈을 뜨고 감아야 했다. 이후로는 공포영화는 보지 않게 되었다.

부천영화제가 시작된 1997년 그해 많은 것들이 새로 시작되었다. 1회 영화제를 보러 간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커플을 보고는 새로운 영화 경험이 시작된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에서 부천까지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도 있다는 게 신선했다.”

‘미드나잇익스프레스’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김도형씨는 그해에 심야상영으로 <킹덤>을 보고는 죽 부천영화제 사랑을 이어왔다. “영화관은 좁고 더웠는데 워낙 인기가 있어 계단까지 관객들이 들어찼다. 한 명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김씨는 군대 간 2년을 제외하고는 매해 부천영화제를 찾았다. 영화제는 그에게 보상하듯 ‘선물’도 안겼다. 2004년에는 영화 상영 티켓 25장을 모아 인증을 받아 선물을 받았고, 창작글을 모집하는 공모 행사에서는 1등을 차지해 디빅스(Dvix) 플레이어를 받았다. 마스터 클래스를 듣고 감독들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곤 했다. 그의 블로그 조회수를 올리는 데 영화제는 혁혁한 기여를 했다.

2003년 <문차일드> 암표가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도형씨는 게시판에 ‘암표를 판다’는 글을 올리고 10~15분 뒤 ‘다 팔렸다’는 메시지를 올리는 식으로 교란작전을 펼쳤다. 실제로는 팔 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암표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인 일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당시 이 영화의 암표 가격은 20만원까지 치솟았다.

일본 밴드 라르크앙시엘의 하이도와 각트가 출연한 <문차일드> 상영관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용철 평론가는 “관객들이 ‘폭도’ 같았다. 모든 장면에서 환호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씨네필이 새롭게 폭발할 때였고 관객들은 열광적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요즘 관객들은 너무 무뚝뚝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유지선 프로그래머는 2008년을 사고가 아주 많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해에 두 감독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상영 중 정전이 일어났다. <고사>(‘창’ 감독) 첫 상영 때도 디지털 포맷이 제대로 다운로드되지 않아 차질이 빚어졌다.

2011년 <헬 드라이버>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 행사에 훈도시를 입고 참석한 이구치 노보루 감독. 오른쪽 끝 훈도시를 입은 사람은 출연 배우 니시무라 요시히로. 사진 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11년 <헬 드라이버>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 행사에 훈도시를 입고 참석한 이구치 노보루 감독. 오른쪽 끝 훈도시를 입은 사람은 출연 배우 니시무라 요시히로. 사진 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11년 영화제 자원봉사를 했던 윤현정씨는 전시관에서 근무하느라 영화는 제대로 보지 못한 ‘불행한 기억’이 있다. 윤씨는 일본식 속옷인 훈도시를 입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감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매년 신작을 들고 부천영화제를 찾아오는 이구치 노보루 감독은 2011년 <헬 드라이버> 상영 행사에 훈도시를 입었다. 출연 배우 니시무라 요시히로도 감독의 압력(?) 때문인지 훈도시를 같이 입었다. 둘은 이 차림으로 카라의 엉덩이 춤을 추었다.

영화제는 여러 번 계절을 옮겼다. 1회는 8월에 개막했지만 2회는 12월에 개막했다. 유지선 프로그래머는 겨울 설원에서 열리는 유바리 영화제를 이상향 삼아 옮겨보았다 한다. 이용철 평론가는 비까지 내리는 겨울날 열린 2회 영화제를 보면서 “영화제가 기간을 옮겨다니다니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제는 3회부터 7월 셋째 주로 옮겨 계속되고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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