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은 이요섭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김보희 프로듀서가 이 과정을 함께 지켜줬다. 감독과 프로듀서를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수도세 120만원’ 아이디어가 재밌었다. 현실 속 살인사건에서도 이런 일이 나오곤 한다.
=제가 실제로 예전에 50만원 수도세가 나온 적이 있다. 해결할 방법도 모르고 전전긍긍하는데 엄마가 “같이 가자”고 했다. 관리사무소가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에 있었다. 엄마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소리쳐도 놀라지 마라”고 하셨다. 5분 있다가 문을 열었는데 커피를 마시고 계시더라. 엄마가 나오시고 나중에 이렇게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오야붕은 저 사람, 컴퓨터 하는 애다.” 처음에 백수 아들이 시골 사는 초안이었는데 광화문시네마 멤버들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발전했다.
-‘고시삼자동락설’ ‘반포’ ‘십시’ 등 재밌는 고시촌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고시촌 취재는 어떻게 하신 건지.
=한달 정도 마지막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논현동 고시원에 있었던 게 다다. 시나리오 초고를 들고 실제로 이전에 고시에 합격한 적이 있는 한예종 영상 전공자를 찾아가 자문을 받았다. 보자마자 “고시촌 이렇지 않아요” 하시더라. 중요하게 나오는 용어들도 그때 들었다. 재밌던 게, 고시생들이 식당을 월 단위로 계약해 식사를 하는데, 가끔 별식으로 삼겹살이 나오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하더라. 그 이미지가 와닿았다. 옆에 있는 사람에 전혀 관심없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미영(박지영)은 “엄마가 되어줄게”라고 개태(조복래)에게 말하는데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멜로 느낌이 나는 게 인상적이더라.
=로맨스는 의도를 하지는 않았다. 이야기 안의 남녀 관계는 알듯 모를 듯한 긴장도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아들과 엄마가 싸울 때도 연인같이 싸울 때도 있다. 박지영 선배님은 이 영화를 ‘멜로’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범죄의 여왕>에 특별출연한 이솜. 콘텐츠 판다 제공
-조복래씨도 그렇고, 허정도씨도 마찬가지고 저예산인데 캐스팅이 화려하다.
=(김 프로듀서) 준비기간이 짧아서 한달 반 정도에 캐스팅을 마쳐야 했다. 개태라는 인물은 모성애도 자극하고 소의 눈처럼 눈이 예뻐야 하는데 그런 배우를 만나기가 힘들었다. 조복래씨를 봤는데 딱 어울렸다. 복래씨 같은 경우에는 상업영화의 조연급인데, 출연하고 싶다면서 감독과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박지영씨도 빨리 결정됐는데, 대본을 주고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다. 매니저가 따끈따끈한 프린트를 가져갔더니 “나 다 읽었어. 해야지. 너무 재밌는데” 하셨다더라. 허정도씨는 여러 얼굴을 가진 배우인데 꼭 함께 촬영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하겠다고 해줬다. 이솜씨는 예상을 못한 경우다. 그쪽 소속사에서 <족구왕> 이후 광화문시네마를 궁금해하셨다. 캐스팅 거의 완료 상태에서 대본을 보여달라고 해서 줬다. 그랬더니 “시나리오 다 읽고 바로 바로 전화했다”며 “캐스팅 안 된 역할이 있냐”는 연락이 왔다. “진숙 역할이 안 됐다”니까 “그 얘기하려고 했다. 솜이씨 괜찮냐”고 해서 캐스팅됐다.
-살인사건의 수도세에선 유영철이 생각나고, 개태의 이름에는 김길태의 이름 사연이 보이는데, 사회면의 사건들을 유심히 보는 편인 것 같다.
=수도세 같은 경우 살인사건에 많이 등장하는 사례다. 사람이 사라졌는데 남아 있는 건 수도세 고지서 한 장이라는 느낌이, 이상했다. 허망하기도 하고. 개태의 이름을 지을 때 김길태 사건이 났다. 김길태 사건은 시시티브이도 없는 재개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사건의 배경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십시’는 듣기만 해도 우울하다.
=‘십시’를 보지는 못했다. 영화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고시생처럼 생활하시는 형, 누나들이 많다. 같은 시나리오만 6~7년 이상 쓰고, 결혼해도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고. 그중 사법고시가 정점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법고시는 성공 드라마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데, 사실 익수(극중 미영의 아들, 사법고시 준비생)도 사법고시 패스하면 엄마한테 잘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장편 개봉까지 했으니 그 길을 쉽게 간 편이다.
=갈 길이 멀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실력보다, 주변의 환경이 좋았다. 광화문시네마를 만난 게 좋은 인연이 되었다. “난 이걸 꼭 해야 돼”라는 사시패스 느낌으로 달렸다기보다는 술자리에서 나도 이런 시나리오가 있어,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학교 다닌 느낌으로.
-덕구 역의 백수장씨가 독립영화계의 스타라고 하던데, 이번 영화에서도 신스틸러다.
=독립영화 쪽에서 출연을 많이 했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다. 배우가 불안한 직업이고 불안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만나보니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정감이 있더라. 오래된 건물 앞에는 꼭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그런 인물을 상상한 결과 만들어진 인물이 백수장씨가 연기한 덕구다.
-순제작비가 4억인데 세트장 등이 잘 만들어졌다.
=(김 프로듀서) 한 달 촬영이어서, 세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세트가 어느 정도까지 지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여러 파트에서 희생도 많이 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서 작업을 했다. 미술감독이 발품을 팔아서 싼 가구를 구해왔다.
-광화문시네마는 청춘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1999, 면회>는 군대, <족구왕>은 복학생, 그리고 <범죄의 여왕>은 고시 준비생들이다. 광화문시네마는 한국 영화붐 초창기인 1990년대 말 영화사의 활기가 보이는 듯하다. 어떤 회사인가.
=감독들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지옥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힘을 모아서 찍는다면 힘든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첫 작품 <1999, 면회> 때는 좀더 나이브했다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 있는데 돈이 없어. 같이 준비해보자.” 그런 기운들이 남아 있다.
=(김 프로듀서) 연대인 것 같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감정적으로 많이 힘든데 보호막을 만들어준다.
-영화 흥행은 얼마나 예상하시나.
=(김 프로듀서) 흥행을 바라고 찍지는 않았다. 영화 재밌다, 이런 영화 또 보고 싶다, 는 생각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이런 영화들이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흥행도) 보장되면서 서로가 에너지를 주고 받으면 좋겠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