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작가의 웹툰 <마음의 소리>가 게임으로 재탄생했다. 애봉이 등 웹툰 속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했다.
아침에 일어나 백아연의 ‘쏘쏘’를 듣고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엔 모바일게임 ‘마음의 소리’ 한 판.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는 <더블유>(W). ‘기안84’라는 희한한 이름의 남자가 티브이에서 자주 눈에 띈다. 빨리 나왔으면 하는 영화는? 하정우·마동석이 나온다는 <신과 함께>.
가수 백아연은 지난 5월 디지털 싱글 ‘쏘쏘’를 내면서 올레 웹툰 ‘썸툰’과 협업(콜라보)을 진행했다. ‘누굴 만나도 쏘쏘/ 혼자인 것도 쏘쏘/ 설레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같은 가사가 짧은 에피소드로 재탄생했다. 스크롤을 내리면 ‘쏘쏘’가 ‘브금’(BGM·배경음악)으로 은은하게 깔린다.
네오위즈게임즈에서 지난 4월 출시한 게임 ‘마음의 소리’는 동명의 네이버 웹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사례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영화화 전에 지난해 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로 만들기도 했다. <나 혼자 산다>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기안84, 박태준 같은 웹툰 작가가 바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효주·이종석 주연의 드라마 <더블유>는 웹툰 속 세계와 현실을 오가는 독특한 설정으로 순항 중이다.
가수 백아연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올레 웹툰 ‘썸툰’.
웹툰 없는 대중문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 웹툰은 대중문화 미디어 믹스의 가장 ‘핫’한 소재다. 미디어 믹스는 서로 다른 성격의 매체가 섞이는 것을 뜻한다. 한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해 보여주는 ‘원소스 멀티유스’와도 비슷하지만, 좀 더 확장된 개념이다. 웹툰 원작 드라마·영화는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에만 영화 <내부자들>, 드라마 <송곳> <치즈인더트랩> 등이 잇따라 나왔다. 음악·게임·공연…. 무엇과 섞어도 ‘케미’(화학반응을 뜻하는 영어 단어의 줄임말)가 폭발하는 웹툰의 무한확장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한번, 웹툰이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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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케미’의 비밀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매체는 웹툰이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무한동력>을 뮤지컬로 제작한 이지혜 작곡가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진입 장벽도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2003년 포털 다음 ‘만화 속 세상’ 출범 뒤 본격적인 시동을 건 국내 웹툰의 역사는 10여년에 불과하지만 2014년 말 기준 연재작 4440편, 완결작 1288편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웹툰 플랫폼은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 포털 3사와 독립형 웹툰 서비스인 레진코믹스 등을 포함해 47개에 달한다. 다양성, 자유로움 등이 맞아떨어지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그 와중에 탄탄한 이야기를 갖춘 양질의 웹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차정윤 네이버 홍보 담당은 “일상부터 병맛 코드, 공포, 스포츠, 판타지 등 워낙 다양한 작품이 나오다 보니 2차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선택지도 넓다”고 말했다.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신과 함께’의 한 장면.
댓글로 대중과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 <신과 함께> 총괄제작을 맡았던 서울예술단 김덕희 기획팀장은 “웹툰은 매주 업데이트되면서 독자들에게 심판을 받지 않나. 성공한 웹툰은 그 자체로 이미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최미영 팀장도 “독자들 덕분에 다른 매체에서 웹툰을 어느 정도 검증된 콘텐츠로 본다. 이때 작가의 인지도가 큰 걸림돌이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웹툰이 원소스 멀티유스에 유리한 이유다.
최근에는 동시다발적인 원소스 멀티유스가 느는 추세다. 2차 콘텐츠 제작을 위해 더 이상 완결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게임회사 여직원들>은 11화짜리 웹드라마로도 제작돼 동일한 플랫폼에서 7월25일부터 3주간 연재됐다. 최근 종영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마녀보감>은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방영 한 달 전부터 본편 이전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 웹툰을 내보냈다.
게임도 상황은 비슷하다. 네이버 웹툰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게임 6개 중 4개가 연재 중인 작품을 골랐다. 조석 작가의 웹툰을 게임화한 ‘마음의 소리’는 에피소드 형식의 웹툰인 점을 고려해 지구의 치킨 맛에 빠진 외계인이 조석과 애봉이의 치킨집을 침공한다는 게임용 시나리오를 별도로 제작했다. 대신 조석, 애봉이 등 웹툰 캐릭터 50여종이 그대로 등장하고 외계인을 무찌르는 애봉이의 스킬인 ‘강화성공’은 웹툰 1007화에서 애봉이가 빵이 아닌 단단한 무기를 구워냈다는 에피소드에 착안했다. 게임을 운영 중인 네오위즈게임즈에서는 “사전 등록에만 100만명 이상의 이용자가 몰렸다”고 밝혔다.
웹툰 오에스티(OST)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케이티뮤직에 따르면 2013~2016년 웹툰 오에스티 앨범은 53개 정도 발매됐다. 기안84의 <패션왕>처럼 완결 뒤 영화화된 웹툰부터 연재 중인 <연애혁명> <윈터우즈>까지 스펙트럼도 넓다. <패션왕> 오에스티의 경우 2011년 발매 때에 견줘 2014~2015년 스트리밍 수가 급증하는데, 이는 영화 개봉과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웹툰의 파생으로 오에스티가 나오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파생 영역인 영화 개봉과 맞물리며 대중적 관심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미디어 믹스가 이뤄진 셈이다.
가수 백아연의 소속사 제이와이피(JYP)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대중에게 친숙한 매체인 웹툰의 특성과 백아연의 진솔하고 소박한 가사가 잘 맞아떨어졌다”며 웹툰 콜라보 효과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최미영 팀장은 “인기 작가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연재가 되기도 전에 2차 콘텐츠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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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계속 진화중 웹툰만 다른 매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웹툰 역시 다른 매체와의 융복합을 통해 진화 중이다. 최근 2~3년 사이 무수히 시도되고 있는 효과툰, 무빙툰, 멀티툰, 채팅툰, 더빙툰 등이 대표적이다. 이름은 다 달라도 기본적으로 멈춰 있던 웹툰 화면에 음악과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다는 점이 같다.
성우들이 참여한 더빙툰은 스크롤이 사라지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재생되는 점이 웹툰보다 애니메이션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채팅툰은 어떨까. 손끝 움직임에 따라 말풍선이 툭툭 튀어나오는 모습이 실제 채팅 앱을 보는 듯하다. 원작 주인공들이 나눴을 법한 대화를 새롭게 쓴 채팅툰 <저녁 같이 드실래요? 그들의 대화> 마하로 작가는 “원작 <저녁 같이 드실래요?> 속 주인공들이 워낙 차분한 성격이다. 대화로만 진행되는 채팅툰의 특성상 주인공들 간의 밀당이 좀 더 느껴지도록 대본을 썼다”고 말했다. 기술적 구현은 다음 웹툰 쪽에서 맡았다. 마하로 작가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표현 방식이 실제로 구현돼 작가로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채팅툰 ‘저녁 같이 드실래요? 그들의 대화’ 중 일부.
네이버에서는 지난해 ‘효과 에디터’를 자체개발해 작가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각종 효과음과 컷별 진동, 그림이 살짝 움직이게 하는 약한 애니메이션 효과 등을 구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디지털 편집도구다. 현재 화요웹툰 1위인 주동근 작가의 <귀도> 등 효과툰 5편이 연재되고 있다. 특히 공포 단편선 <2016 비명>은 지난해 39편에 이어 올해도 모든 작품이 효과 에디터를 사용한다. 2년 연속 참여한 청보리 작가는 “효과 에디터 자체가 작가들이 쓰기에 굉장히 편하게 되어 있어 작업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다만 스토리와 장면을 구상할 때부터 어떤 효과를 쓸지 고민하게 되더라”고 달라진 환경에 대해 말했다.
주동근 작가의 웹툰 ‘귀도’. 소름 돋는 이야기를 더욱 오싹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인기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원작의 힘, 기술의 진화 그다음은 무엇일까. 지난 10일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웹툰 비평 전문웹진 <유어마나>의 선우훈 편집장은 ‘비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선 편집장은 “웹툰 산업이 커지면서 굉장히 많은 웹툰이 나오고 있다. 독자 입장에선 웹툰을 고르기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지기도 했다. 웹툰 100자평을 통해 독자들과 웹툰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