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매트릭스>가 재개봉 열풍을 타고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1994년 개봉했던 <포레스트 검프>는 9월8일, 1999년 등장한 ‘세기말 영화’ <매트릭스>는 9월24일 오랜만에 재개봉한다.
2013년 <러브 레터>와 <레옹>의 재개봉 성공으로 시작된 열풍은 이제 소규모 영화수입사들의 생존전략이자 예술영화관의 관객 동원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이 재개봉만으로 33만명을 끌어모아 개봉 당시의 기록(17만명)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재개봉은 ‘하나의 신드롬’이 됐다. 재개봉 열풍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 30대 후반~40대 초반을 잡아라 지금 극장에선 1980년대~1990년대 초반을 소환하는 영화들의 재개봉이 이어지고 있지만 성적표는 초라한 편이다. 17일 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와 25일 개봉한 <첩혈쌍웅>은 모두 1989년 작품이다. 24일 개봉한 <연인>은 1991년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1992년 개봉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로빈 윌리엄스 2주기를 맞아 다시 상영하기로 했고, <첩혈쌍웅>은 올초 재개봉했던 <영웅본색>에 이어 홍콩 영화 전성기를 기억하는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할 수 있으리라 판단에서 다시 스크린에 걸렸다. <연인>은 개봉 당시 삭제된 정사 장면을 포함해 무삭제판으로 재개봉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지금까지 총 4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연인>은 주말 동안 8040명의 관객을 모았다. <첩혈쌍웅>의 흥행 성적은 더 초라하다. <첩혈쌍웅>을 수입하고 개봉한 조이앤시네마 쪽은 “<영웅본색>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1만4천명)을 거둬서 <첩혈쌍웅>은 개봉관을 잡기 어려웠고 개봉과 동시에 아이피티브이로 풀렸다”고 밝혔다. 실패 원인에 대해선 “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여성 관객이 움직이지 않았다. 요즘 영화들의 액션에 비해, 이들 영화의 아날로그 액션이 조금 어설프고 느슨하게 보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광주극장의 김형수 전무는 ‘추억 마케팅’도 젊은 관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방학을 맞아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이터널 선샤인>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관람객이 젊은 층이었다.” 씨지브이 리서치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 관객중 20대가 51.2%, 30대가 25.5%에 이르렀다.
김형호 영화 시장 분석가는 ‘추억 마케팅’의 주요 대상이 30대 후반~40대 초반이라고 짚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은 20대 때 가장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창 영화를 많이 봤던 20년 전의 영화들이 주요한 ‘마케팅’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움직이고 나면 젊은 관객들이 움직인다. <러브 액츄얼리>는 2013년 재개봉 첫해 3만 1천명을 모은 뒤로 꾸준하게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개봉한다. 역시 대상은 ‘젊은 연인’ 관객들이다.
■ 소규모 틈새상품 멀티플렉스 메가박스·씨지브이 등은 ‘단독 개봉’ 형식으로 재개봉 영화를 수급한다. 씨지브이는 <500일의 썸머>, 메가박스는 <불의 전차> <바그다드 카페> 등을 단독개봉했다. <포레스트 검프>도 메가박스의 단독 개봉작이다. 씨지브이 관계자는 “재개봉 영화는 틈새상품”이라고 정리한다. “비수기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씨지브이가 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은 지난해 10월 개봉해 올초까지 비수기를 관통해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포레스트 검프>는 흥행 영화들이 맞붙는 한가위 시즌에 개봉한다는 점에서 독특해 보인다.. <포레스트 검프>를 수입한 피터팬 픽쳐스의 조성열 대표는 “맞붙는다기보다는 가족들이 영화관을 찾는 시기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역시 한가위 시즌의 틈새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 생존전략의 아이러니 씨지브이 쪽은 성공하는 재개봉작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다. “대히트작, 방송(지상파, 영화채널 등)에서 자주 노출된 작품보다는 디브이디 소장용이나 어렵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할 경우 호응도가 높다.” 김형호 분석가는 “재개봉 영화는 첫 개봉 당시 1백만 이하의 관객이 들었던 영화들”이라고 말한다. 한국영화나 직배사 영화가 아닌 작은 영화수입사들의 작품이 승률이 높다는 점도 특징이다.
수입사에 따르면 <포레스트 검프> 재개봉의 손익분기점은 1만5천명 수준이다. 다른 재개봉 영화에 비해 수입가격이 높지만 워낙 입소문이 난 영화라 홍보비용이 들지 않는다.
광주극장 김 전무는 “상업성을 우선시하는 최근 영화들과는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재개봉 영화를 찾게 된다”면서도, “이 영화들이 결국 다른 다양성 영화와 경쟁하게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한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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