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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물’ 김기덕 감독 “분단 그 자체로 잔인한 영화…매일 울며 찍었죠”

등록 2016-10-04 11:29수정 2016-10-05 09:56

문제적 감독 인터뷰②
남한 표류하는 북한 어부 다룬 <그물>
잔혹한 묘사 줄이고 잔인한 권력에 집중
<일대일>~<그물>까지 현실 정치 비판
유혈 낭자한 거리, 분단 상황에 대한 돌직구, 노인의 성과 죽음…. 스크린은 강렬했다. 자신의 영화 세계가 확고한 감독들이 이 가을 유난히 강렬한 직설의 언어로 돌아왔다. 표현과 주제의식 모두 문제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내놓은 김성수(<아수라>), 김기덕(<그물>), 이재용(<죽여주는 여자>) 감독을 인터뷰했다. 3~5일에 걸쳐 매일 한명씩 차례로 내보낸다.

국가폭력, 분단논리가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짓밟는지를 직설적으로 묘사한 영화 <그물>로 22번째 장편작을 내놓은 김기덕 감독. 뉴 제공
국가폭력, 분단논리가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짓밟는지를 직설적으로 묘사한 영화 <그물>로 22번째 장편작을 내놓은 김기덕 감독. 뉴 제공

배가 고장나 남한으로 오게 된 어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물>은 김기덕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아주 독특한 작품이 될 것이다. 직설적인 사회 비판이 주조를 이룰 뿐 아니라 관객을 설득하려는 듯한 연극적 대사들, 육체적 폭력보다는 구조적 폭력에 집중하는 태도는 낯설기까지 하다. 지난 9월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감독은 그의 변화에 대해 묻자 “변한게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새로운 방 하나를 열어젖힌 것”이라고 했다. 정치 지형을 헤아리기보다는 누구의 자리에도 들지 않으려는 야생적 생태학을 구사해온 그는 인터뷰에서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 <자백> 개봉이 반갑다. 젊은 세대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했다. 6일 <그물> 개봉을 앞두고 영화 제작의 배경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영화 <그물>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언어치고는 상당히 낯선 편이다. 관객들을 설득하려는 인상이다. 영화 <해안선>등 전작과 비교하면 참여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현실 참여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영화에서 항상 의식적으로 본능을 표현해왔는데 내 본능이 어떤 점에선 영화적 가치와 영화적 매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의 본능에는 공적인 일이 꽉 찬 방, 개인적 감정의 방, 포르노 방도 있다. 내게도 항상 그런 방들은 있었다.

내가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주제일 거라고 예측을 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전엔 나는 다른 방에서 개인적 고민과 욕망에 몰두했던 것 같다. 내가 안전하게 작품을 할 수 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2014년 정치에서 공범의 문제를 비유한 영화 <일대일>부터 그 방이 열리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해엔 원전 문제를 다룬 <스톱>을 촬영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 하는 것들, 얼마전 경주 지진처럼 어떤 증상으로 보여지는 것들이 불안이 되어 나를 휘감고 있다.”

역사와 권력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가. <그물>에서 그는 폭력의 과정보다도 자꾸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초라한 개인에 집중한다. 뉴 제공
역사와 권력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가. <그물>에서 그는 폭력의 과정보다도 자꾸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초라한 개인에 집중한다. 뉴 제공
-9월28일 언론시사회 때는 개인적인 동기를 이야기했다. 개인사로서도 의미있는 변화가 아닌가 한다.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로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아버지를 정말 미워하고 싫어했다. 너무 많이 폭력을 쓰고 공포를 조장했다. 아버지와 한 밥상에 앉지 않기 위해 해병대로 도망갔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북한군에 대한 적개심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해안선>에 나오는 광적인 애국주의자는 그 영향이다. 그런데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나이도 들면서 아버지는 전쟁에 대한 상흔에 치명적으로 매몰돼 있어서 그것을 우리에게 토해낸 것이며 그 또한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과 북을 공평한 기준으로 보는 시선으로 확장된 것 같다.

나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남과 북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분단과 냉전의) 외부 조건에 우리를 맡긴 결과를 냉정하게 봤으면 좋겠다.”

<그물>은 원동기가 고장나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 북의 어부 남철우(류승범)가 일주일동안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뉴 제공
<그물>은 원동기가 고장나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 북의 어부 남철우(류승범)가 일주일동안 겪는 일을 그린 영화다. 뉴 제공

-표현에 있어서도 차이가 보인다. 가족을 중시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오랜만이다.

“이 영화를 보고 왜 예술을 하다 계몽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게는 의미없는 질문이다. 말하는 방식에서 예술과 계몽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 <빈집>이나 <섬>이나 <나쁜 남자>는 대사가 거의 없으면서도 메시지를 전했다면 <그물>은 고백 또는 자백하는 영화다. 자꾸 차이를 질문한다면 크게 할 말은 없다.

<뫼비우스>에서 나는 “가족은 성기”라고 이야기했다. <레드 패밀리>에선 남쪽 가족과 북쪽 가족을 대립시켰는데 <그물> 어부의 가족이 그보단 조금 더 소규모 가족이다. 남편, 부인과 딸은 가족의 판타지라 할 구성이다.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것이다. 국가를 믿고 국가에 동의하는 것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은 잘못한 게 없다. 배가 고장나서 남-북 경계선을 넘었을 뿐인데 서로를 의심하는 강박증을 가진 남쪽과 북쪽의 국가가 한 개인을 각기 의심한 결과 그를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 놓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경계선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누구 편이냐고 질문을 받는다. 실은 누가 하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분단이라는 60년된 유령이 저지르는 짓일 것이다.”

-선량한 인간을 대표하는 듯한 국정원 직원 이원근(오진우)은 김기덕의 영화에서 지금껏 없었던 유형의 인물이 아닌가.

“이 영화에선 꼭 필요한 누군가가 아니었는가 한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낸 인간유형이긴 하지만 나는 양심이 있다고 믿는다. 내 체제가 전복될까 이념이 흔들릴까에 목을 매는 조사관(김영민) 같은 사람도 있지만 어느 장소에나 더 큰 걱정을 하는 인물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정원 안에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이념의 부품이 되어버린 사람이나 북한 주민 한명이라도 구해내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크게 보면 그릇된 선택을 하는 간부 등이 있다는 상상을 했다

-극중에 ‘유한성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한겨레>가 보도했던 ‘유우성 사건’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 외에도 현실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빌려온 듯한 대목이 몇 곳 있다. 그런데 실제 간첩조작이 이루어진 합동신문센터를 국정원 한 사무실처럼 그리는 등 현실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상상의 세계로 발을 빼기도 한다.

“이런 줄거리를 따라가자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사건을 빌려올 수밖에 없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백>도 개봉한다고 들었다. 내 영화도 많이 봤으면 좋겠지만 <자백>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 영화는 <자백>과는 다르다. 나는 합신센터를 가본적도 없고 정확하게 재현할 의도도 아니었다. 은유된 드라마를 통해서 더 폭넓게 그리는 것이 목적이다.”

-북한 어부가 국정원의 방에 갇힐 때 수사관은 슬며시 블라인드를 내려 관객의 눈을 가린다. 고문 장면은 다른 영화에 비해 잔인하지 않다. 자기 검열 같은 게 생긴 것은 아닌가.

“폭력이나 섹스를 전시하려면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물>은 분단이 한 사람과 가족의 영혼까지 찢어버리는, 이미 그 자체로 아주 잔인한 영화다. 나는 매일 울면서 이 영화를 찍었다. 내 영화를 섹스나 폭력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부당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전하려던 이야기로 해석하고 어떤 사람은 잔인하고 성적인 코드로만 본다. 유전자가 달라서일까, 그 사람이 살면서 쌓아온 데이터베이스가 달라서일까. 이것이 바로 인간이 신비로운 이유다.”

- 배우 류승범과 처음으로 함께 일했다. 전작 <일대일>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여럿 출연했다.

“류승범과는 류승완 감독 추천으로 뒤늦게 만났다. 거지 둘이 만난 것처럼 둘이 다니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실은 그 친구는 안꾸며도 멋있으니 내 입장에서야 좋다. 그런데 나는 빨리 찍고 헤어지기 때문에 서로를 파악할 시간도 없었다. 류승범씨도 촬영 5~6일전에 들어와 인간적으로 유대를 쌓을 시간은 없었다. 실제로 서로를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나중에 편집을 하면서 류승범이 얼마나 영화 안에 들어오려고 애썼는지 발견하고 놀랐다. 굉장히 힘들게 노력하는 배우다.

영화를 찍을 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한 사람만 있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데 김영민은 내게 그런 사람이다. 영민씨 말고도 최귀화, 안지혜, 조재룡 등 <일대일> 배우가 많았던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나는 아는 배우가 별로 없다. 영화계엔 감초같은 연기자도 많으며 다른 감독들은 전화 한 통 하면 오는 인맥이 있다는데 나는 사람들을 잘 모른다.”

- 김기덕 감독이 함께 영화를 찍자고 하면 선뜻 응하는 배우들이 많을텐데.

“큰 배우를 너무 작게 쓰면 영화를 망치기도 한다. 물론 <그물>에서도 많은 관객들은 류승범의 이름을 믿고 영화를 보러 오겠지만 나는 아무리 유명배우가 나와도 내가 주인공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배우 연기만 적나라하고 균형이 안맞는 영화도 많다. 그림은 화가의 생각을 담는 거고 물감의 강렬함이 그림을 깨면 안된다.”

영화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철우를 귀순시키기 위해 그를 명동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자본주의로 그를 압도하려는 목적 앞에서 주인공은 가족의 논리를 고수한다. 뉴 제공
영화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철우를 귀순시키기 위해 그를 명동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자본주의로 그를 압도하려는 목적 앞에서 주인공은 가족의 논리를 고수한다. 뉴 제공

- <그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국정원 직원들이 어부 철우를 억지로 명동에 데려다 놓는 장면이다. 철우는 눈을 감고 안보려고 한다. ‘보지 않아야 말할 것이 없다’는 철우의 대사는 너무나 슬프다. 꼼짝 말아라, 듣지 말아라, 보지 말아라, 말하지 말라는 것은 남이든 북이든 권력자들의 한결같은 요구다. 이데올로기 안에 갇힌 우리들의 처지를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의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정치적 공범에 대한 이야기 <일대일>을 찍게 된 것은 선거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선거를 안하고 놀러가는 무책임한 개인들이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았다. 지난해엔 혼자 일본에 가서 <스톱>이라는 원전 영화를 찍었다. 몇번씩 ‘스톱’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래도 계속 찍어야 한다는 원심력이 있는 것 같다. <그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한 중요한 이야기는 이걸로 다 됐다. 내년 이맘때쯤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을 것이다.

10여개 생각해둔 소재가 있지만 이젠 누군가에게 시나리오를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는 영화다>(장훈 감독), <풍산개>(전재홍 감독) 등 제자의 영화에 제작과 각본으로 거들었는데 누군가의 독창적인 재능을 내가 선을 긋는다는 느낌이 있고 무엇보다 이제는 제작 지원을 할 만한 돈이 없다.

독립제작은 정말 힘들다. 대형 배급사 간섭없이 1년에 1편씩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요즘엔 굳이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야 하냐는 생각이 든다.”(김기덕 감독은 최근 중국의 한 스튜디오와 제작 계약을 맺고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관련기사>

문제감독 인터뷰①/ <아수라> 김성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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