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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뭣이 중헌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등록 2016-12-26 17:17수정 2016-12-26 17:39

2016년 한국 영화는 304편이 개봉했다. 실제로 1천명 이상 관객이 든 영화는 120편이었다. 1천만명 이상이 본 영화는 <부산행> 1편, 100만명 이상이 본 영화는 <검사외전> <밀정> <터널> <인천상륙작전> <럭키> <곡성> <덕혜옹주> <아가씨> <귀향>(순서대로) 등 20편, 10만명 이상이 본 영화는 48편이었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최종 기준연월은 11월)

만물은 결정적인 계기들을 변곡점으로 진화한다. 변곡점을 넘어서는 순간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현재가 펼쳐지는 것이다. 2016년의 수많은 영화 혹은 장면 중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평론가 10명에게 물었다. 첫 질문은 ‘2016년 영화에서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결정적 장면은 무엇인가’, 둘째 질문은 ‘한국 영화의 풍경을 바꾸어놓은 2016년 결정적인 한국 영화는 무엇인가’다. 강유정·김봉석·김소희·김영진·듀나·이용철·전찬일·정민아·한동원·황진미 평론가가 답했다.

■ 2016년의 결정적 장면

<곡성>과 <아수라> <비밀은 없다>의 장면이 결정적 장면으로 꼽혔다. <곡성>과 <비밀은 없다>는 몇 장면으로 나뉘었지만 <아수라>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례식 장면 한곳으로 모였다.

<아수라>
<아수라>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한 <곡성> ‘뭣이 중헌디’는 한 해를 정리하는 예언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롯해 올해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한 유행어이자 명대사이기도 하지만 올 한 해 우리 시사용어로서 ‘굿’이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다. 만약 곡성을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설명할 수 없지만 불편했고, 이해할 수 없지만 부당했던 일들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서 <곡성>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강유정) <곡성>의 가톨릭 부제가 동굴의 일본인을 찾아가는 장면도 결정적 장면으로 꼽혔다. “<곡성>은 현혹되는 인간의 존재를 그리면서, 믿음의 근간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가장 통렬한 역설을 감행한다. 인간은 인식론적 한계로 전체를 이해할 수도 없고, 존재론적인 한계로 무엇인가를 끝까지 믿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가장 익숙한 종교적 메타포를 통해 극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장면이다.”(황진미)

10명의 평론가가 뽑은 2016년의 결정적 장면
‘곡성’-한해 정리하는 예언적 역할
‘비밀은 없다’-2016 우리모습 요약
‘아수라’-안남시는 헬조선 축소판
‘우리들’-혐오의 시대를 이겨낼 지혜

<곡성>
<곡성>
<비밀은 없다>의 각 장면은 한국 사회의 은유가 되었다. 듀나는 주인공 연홍이 차 안에서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되뇌는 장면을 제시했다. 그는 “주인공의 설정과 성격, 영화 속 상황, 그리고 그 대사가 스크린 밖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합쳐져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2016년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요약해 보여준다”(듀나)고 했다. 이용철은 <비밀은 없다>의 클라이맥스 장면에 대해 “온갖 죄와 죄인들이 판치는 한국의 현 상황을 바라보는 감독의 상징적 코멘트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평했다.

<아수라>의 마지막, 장례식에 모여 벌이는 죽음의 난장은 김성수 감독이 며칠을 촬영한 장면이었다. “<아수라>에 등장하는 안남시는 한국이라는 지옥의 축소판이다. 김성수 특유의 날것의 액션이 묵직하게 등짝을 후려친다.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아프다. 이 현실에 살아남아 있는 내가 버겁다.”(김봉석)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고 모두 죽는다. 나쁜 아비의 권력을 계승하기 위하여 형제들이 싸우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 자체를 부순다. 아비의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그럼으로써 다른 체제를 꿈꾸는 단념의 결말.”(김영진)

정민아는 <우리들>에서 “걔가 때리면 내가 때리고, 또 때리면 내가 또 때리고. 그러면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고 주인공의 동생이 말하는 장면을 “혐오의 시대를 이겨낼 지혜”라고 평했다. 김소희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의 30분간 잠들기로 한 남녀의 침대 옆에 놓인 촛불을 디졸브하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마술 같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상찬을 보냈다. 전찬일은 이동우-임재신 두 중년 장애남의 우정과 사랑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시소>의 클로즈업을 선택했다. “겪어보진 못했으나 천사의 표정이 그런 게 아닐까?”

■ 2016년의 결정적 영화

1천만 관객을 모은 <부산행>을 ‘올해의 결정적 영화’로 꼽은 영화평론가들이 많았다. 관객들이 변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부산행>
<부산행>
“한국 관객들은 허구에 대해 꽤 엄격하다. 환상이나 욕망을 반영한다고 해도 꽤나 사실적인 이야기에 사실적인 해결 방식의 판타지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산행>은 애당초, 좀비라는 아예 현실성과 사실성을 뛰어넘은 낯선 개연성에서 출발하는, 철저한 장르 영화이자 허구다. 그런데 이런 완전한 허구에 천만 이상의 관객이 호응했다는 것은 한국 영화의 외연이 일순간 확장되었음을 보여주었다.”(강유정) “한국 영화의 장르는 의외로 단순하다. 여성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가 과거의 승자였다면 요즘엔 남성 액션과 스릴러가 대세다. <부산행>은 그런 한국 영화 장르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았다. 일단 장르의 너비를 확장하는 데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게 깊이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다. 연상호 같은 뛰어난 재주꾼이 계속 등장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이용철) “당 영화에 붙은 천만영화 마크 때문도 아니요, 노골적 헬조선적 메타포 때문도 아니라, 당 영화가 한국 영화의 오랜 화두 중 하나였던 할리우드 장르물 국산화에 있어 하나의 결산이자 분기점이라 사료되기 때문이다.”(한동원)

<비밀은 없다>를 2016년의 변곡점이 될 만한 영화로 꼽은 이들도 많았다. “주변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연홍은 남편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헌신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싸워서 찾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비밀은 없다>는 전형적인 스릴러로 시작하여 한 여성, 인간의 시선으로 귀결된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길을 만들어서 가고야 마는 여성이 이곳에 있다.”(김봉석) “여느 모성 복수극을 뛰어넘어, 딸의 생사를 추적하는 가운데 자신 스스로를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진정한 여성 성장담 영화.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닌, 생각하고 행동하는 진짜 어른이 되려는 길에서 전복적이고 해방적인 틈새를 읽어낼 수 있다. 멍청하거나 미치거나 해야 유지되는 현대 가족주의의 허망함을 대담하게 폭로한다.”(정민아)

평론가가 뽑은 2016 결정적 영화
‘부산행’ -한국영화 장르 지형도 바꿔
‘비밀은 없다’-주변여성들의 목소리
‘곡성’- 사회현상적 증상 새겨넣어
‘자백’ ‘무현, 두 도시 이야기’-다큐 약진

<비밀은 없다>
<비밀은 없다>
<비밀은 없다>가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드러낸 영화라는 데 주목한 이들도 있었다. 듀나는 <연애담> <아가씨>와 <비밀은 없다>를 함께 결정적 영화로 꼽으며, “여성 캐릭터들을 노골적으로 지워나갔던 알탕영화들의 행진. 이에 대한 여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영화의 도전. 점점 의식화되어가는 여성 영화인들의 발언. 지금까지 묵인되어왔던 영화 내 성폭력에 맞서는 움직임. 여러모로 끔찍하면서도 전환점이 될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던 해”라고 평가했다.

김소희는 “한국 영화 속에 사회현상학적인 증상을 새겨넣은” <곡성>을, 황진미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스타일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탁월한 누아르” <아수라>를, 김영진은 영화의 소재로 삼기를 꺼리는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인물을 내세운 <우리 손자 베스트>를 결정적 영화로 선택했다.

<자백>
<자백>
올해의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다큐멘터리의 약진이다. 올해의 장면에 꼽히기도 했지만 <시소> 같은 휴머니즘 다큐멘터리가 나왔고,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자백>은 2016년 한국 다양성 영화 1위와 4위를 차지하며 “장르 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전찬일)로 기록됐다. 김영진은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질문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연말 터져나온 한국 사회의 부정의에 대한 촛불집회는 “픽션을 압도하는 현실”(한동원)이었다. 황진미가 <곡성>과 <아수라>를 한국 사회의 징후적 영화로 꼽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한계와 공동체가 직면한 총체적인 파국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한곳이다. 아무것도 믿지 말고 모든 것이 파괴된 지점에서, 즉 영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리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각 배급사 제공

아래는 올해의 결정적 장면 설문 전문이다. (가나다순)

당신이 생각하는 2016년 영화에서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결정적 장면은?

(강유정) <곡성>에서 “뭣이 중헌디.”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롯해 올 해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한 유행어이자 명대사이기도 하지만 올 한 해 우리 시사용어로서 “굿”이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다. 만약, 곡성을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설명할 수 없지만 불편했고, 이해할 수 없지만 부당했던 일들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서 <곡성>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봉석) 아수라의 장례식 장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더 이상 믿음도, 희망도 없다. <아수라>는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후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얻었다. <아수라>에 등장하는 안남시는 한국이라는 지옥의 축소판이다. 검사는 살아남으려 후배를 죽이려 하고, 시장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배자로 남으려 한다. 김성수 특유의 날것의 액션이 묵직하게 등짝을 후려친다.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아프다. 이 현실에 살아남아 있는 내가 버겁다.

(김소희)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의 마지막 시퀀스. 30분간 잠들기로 한 남녀의 침대 옆에 놓인 촛불과 그것이 줄어든 모양을 느리게 디졸브 하며 시간의 경과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마치 카메라가 줄어드는 촛불의 흔적을 포착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사이 카메라 앞을 지나쳤을 민정의 자취는 포착되지 않는다. ‘또 꿈인가?’ 멍하니 깨어난 영수처럼 멍해질 찰나, 아무렇지 않게 먹기 좋게 잘려 통에 담긴 차가운 수박을 들고 나타난 민정. 그 마술 같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오랫동안 품고 있을 것 같다.

(김영진) 김성수의 <아수라> 마지막 장례식 시퀀스.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고 모두 죽는다. 나쁜 아비의 권력을 계승하기 위하여 형제들이 싸우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 자체를 부순다. 아비의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그럼으로써 다른 체제를 꿈꾸는 단념의 결말.

(듀나) <비밀은 없다>의 주인공 연홍이 차 안에서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라고 되뇌는 장면. 주인공의 설정과 성격, 영화 속 상황, 그리고 그 대사가 스크린 밖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합쳐져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의심할 수 없는 올해 최고의 장면.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2016년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요약해보여준다.

<시소>
<시소>
(전찬일) ‘2016년의 영화’보다는 ‘결정적 장면’에 방점을 찍는 순간, 별다른 주저 없이 이동우-임재신 두 중년 장애남의 우정과 사랑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시소>를 선택하고 싶다. 몸 전체에서 성한 데라곤 고작 얼굴 밖에 없으면서도 자력으로는 제대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그 얼굴 표정들은, 사십 수년에 걸친 내 영화 인생에서 맛본 최상의 감동적인 클로즈업들이었다. 겪어보진 못했으나 천사의 표정이 그런 게 아닐까?

(정민아) <우리들> “걔가 때리면 내가 때리고, 또 때리면 내가 또 때리고. 그러면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누나가 다섯 살 동생의 벌게진 눈두덩이를 보며, 너도 때리라고 다그칠 때 동생이 하는 대답. 이 장면은 미리 설계되지 않았다. 감독은 배우들을 섭외한 후, 정확한 대사를 주지 않은 채 상황극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였다. 아이가 하는 현명한 말은 혐오의 시대를 이겨낼 지혜를 준다.

(이용철) <비밀은 없다>의 클라이맥스. 순진했으나 세상의 죄로부터 눈을 돌리고 살았던 아내가 남편의 온몸을 테이프로 포박한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그의 죄를 드러내 보여준 다음 세상에 전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로서 훌륭하거니와 온갖 죄와 죄인들이 판치는 한국의 현 상황을 바라보는 감독의 상징적 코멘트로서 가치를 지닌다.

(한동원) 결정적 장면의 주창자로서 오랜만에 결정적 장면체를 구사하여 적어보자면,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국영화 <곡성>의 “뭣이 중헌디”와 “없는 게 증거”가 2016년 최고의 결정적 장면이었던 것이다!라 사자후를 막 토하려는 순간, 막판 등장한 서양영화 <라라랜드>가 <곡성>의 새마을 야상자락을 붙잡고 마니, 지옥 같은 최악의 교통체증에서 최고의 환상을 퍼올리던 <라라랜드>의 인트로야말로 진정 올해 최고의 결정적 장면이었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움 및 상상력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있지 않음을 보여 준.

(황진미) <곡성>의 마지막 동굴장면. 가톨릭부제가 동굴의 일본인을 찾아가 그의 존재를 묻자, “너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라고 되묻는다. 이는 예수의 화법이다. 그는 아예 누가복음의 구절을 읊으며 자신의 성흔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점점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바로 나다”라는 예수의 말을 한다. 예수가 확신의 증표로서 한 말을 가장 믿을 수 없는 사태에서 뚜렷한 악마의 형상을 한 자에 의해 조롱의 의미로 인용함으로써, 지독한 신성모독을 행한다. 영화는 예수가 알려준 확신의 증표가 상대가 유령인지 예수인지 악마인지 판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작용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현혹되는 인간의 존재를 그리면서, 믿음의 근간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가장 통렬한 역설을 감행한다. 인간은 인식론적 한계로 전체를 이해할 수도 없고, 존재론적인 한계로 무엇인가를 끝까지 믿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가장 익숙한 종교적 메타포를 통해 극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장면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영화의 풍경을 바꾸어놓은 2016년 결정적인 한국 영화는?

(강유정) <부산행> 한국 관객들은 허구에 대해 꽤 엄격하다. 환상이나 욕망을 반영한다고 해도 꽤나 사실적인 이야기에 사실적인 해결 방식의 판타지를 원하는 것이다. <내부자들>이나 <암살>의 결말 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산행>은 애당초, 좀비라는 아예 현실성과 사실성을 뛰어 넘어선 낯선 개연성에서 출발하는, 철저한 장르 영화이자 허구이다. 그런데, 이런 완전한 허구에 천만이상의 관객이 호응했다는 것은 한국 영화의 외연이 일순간 확장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부산행>에서 좀비의 돌격 장면이야말로 한국영화의 결정적 변곡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봉석) <비밀은 없다> 올해 한국에서는 여성이 이슈의 중심이었다. 저 위가 아니다. 주변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연홍은 남편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헌신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싸워서 찾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비밀은 없다>는 전형적인 스릴러로 시작하여 한 여성, 인간의 시선으로 귀결된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길을 만들어서 가고야 마는 여성이 이곳에 있다.

(김소희) 그 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곡성>은 한국영화 속에 사회현상학적인 증상을 새겨 넣었다. 그것은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그 어떤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동시에 어떤 것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은 이상한 공백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관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방식은 오직 침묵뿐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
<우리 손자 베스트>
(김영진) <우리 손자 베스트>. 일베 청년과 어버이 연합의 할아버지의 우정을 다룬 영화로 우리 사회의 암덩어리를 따듯하게 응시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푸는 소재를 찾는 영화들에 비해 꺼리고 회피하는 것을 용기있게 다뤘다. 바로 옆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봐야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영화다.

(듀나) 세 편. <아가씨>, <비밀은 없다>, <연애담>. 모두 여성 그리고 퀴어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다. 뒤의 두 편은 여성 감독 작품. 셋 다 거의 병적으로 여성 테마와 여성 창작자를 소외시키고 있던 한국 영화계에 도전하는 상징적인 작품들이다. <아가씨>와 같은 퀴어 영화가 박찬욱의 명성을 업고 태평스럽게 박스오피스 히트를 한 것도 재미있는 현상.

(이용철) <부산행>. 한국영화의 장르는 의외로 단순하다. 여성 드라마와 로맨틱코미디가 과거의 승자였다면 요즘엔 남성 액션과 스릴러가 대세다. <부산행>은 그런 한국영화 장르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았다. 일단 장르의 너비를 확장하는데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게 깊이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다. 연상호 같은 뛰어난 재주꾼이 계속 등장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전찬일) <동주> & <귀향> : 이 두 영화의 감독인 이준익과 조정래는 예상치 못했던 흥행 성공을 통해, 영화산업의 지고의 목표인 돈보다 인간적 가치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웅변했다. 그로써 그들은 세계의 질서를 좌지우지해온 신자유주의에 통쾌한 한방을 먹였다.

(정민아) <비밀은 없다> 여느 모성 복수극을 뛰어넘어, 딸의 생사를 추적하는 가운데 자신 스스로를 알게되는 과정을 그리는 진정한 여성 성장담 영화.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닌, 생각하고 행동하는 진짜 어른이 되려는 길에서 전복적이고 해방적인 틈새를 읽어낼 수 있다. 멍청하거나 미치거나 해야 유지되는 현대 가족주의의 허망함을 대담하게 폭로한다.

(한동원) <아가씨>, <곡성>, <비밀은 없다>, <우리들>, 그리고 <미씽>까지 기라성 같았던 한국영화들의 면면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부산행>을 2016년의 결정적 한국영화로 꼽으니, 그 이유는 당 영화에 붙은 천만영화 마크 때문도 아니요, 노골적 헬조선적 메타포 때문도 아니라, 당 영화가 한국영화의 오랜 화두 중 하나였던 헐리우드 장르물 국산화에 있어 하나의 결산이자 분기점이라 사료되기 때문이다.

(황진미) <아수라>는 조명, 촬영, 장면구성 등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스타일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탁월한 느와르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염세적인 세계관과 파국적 결말은 오히려 근원적인 현실인식을 일깨운다. 영화는 절대악인 민선시장의 존재와 누구에게도 일말의 양심을 기대할 수 없는 처참한 지옥도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패’라는 최종심급을 가리킨다. 악인들이 모두 죽는 파국적인 결말은 두렵지만 새로운 국면의 가능성을 지닌다. 즉 지옥이 망한 뒤에야, 새로운 입헌적 질서를 맞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영화의 정치성은 대단히 급진적이다. <아수라>는 특이점이 온 한국사회에 대한 예지몽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 이후에 한국 사회를 그린 영화를 만들면서, 영웅적인 개인이 어떤 정의를 실현하는 서사를 생각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아수라>를 통해 훨씬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지옥의 형상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2016년의 한국영화에 대한 총평.

(강유정) 화려하고, 다양한 영화들이 골고루 사랑받았던 한 해였다. <곡성>, <아가씨>, <부산행>, <밀정> 등 다양한 색깔의 감독이 다양한 개성과 장기를 선보였던 웰메이드 상업 영화들의 한 해로 기억될 듯 싶다.

(김봉석) 나쁘지 않았다. 메이저 영화들은 다소 따분했지만 세상이 워낙 어지러워 그 기운들이 스며들어 기묘한 리얼리티를 보여준 영화들이 많았다. 그리고 <비밀은 없다>나 <곡성>처럼 메이저 틈에서도 비집고 나오는 에너지 넘치는 영화들이 활약을 했다. <최악의 하루>와 <우리들> 등 저예산 영화도 점점 다양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이 문화의 융성을 부추기는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김소희) 한국영화에 한해 말하자면 기존의 상업 영화라는 잣대에 균열을 내는 논쟁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중 선뜻 지지할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 여성혐오 논쟁이 불거진 가운데 상대적으로 여성영화인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이들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두었다는 것만으로, 여성 영화감독이라는 이유로 응원받지 않아도 될 날을 기다린다.

(김영진) 성수기 흥행 영화는 재미 없었다. 표준화 규격화되어가는 면에서 산업적으로 안정감 있다고 보여지겠지만 평자의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다. 개성 있는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주춤한 것 같아서 아쉽다. 독립영화들은 꼬마상업영화 같다. 다큐멘터리들의 약진이 돋보인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주어져야 할 질문이다. <곡성>은 동의하지 않지만 나홍진이 개성 있는 감독임은 충분히 증명했다.

(듀나) 여자들. 여자들을 빼면 2016년 한국영화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여성 캐릭터들을 노골적으로 지워나갔던 알탕영화들의 행진. 이에 대한 여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영화의 도전. 점점 의식회되어 가는 여성 영화인들의 발언. 지금까지 묵인되어왔던 영화 내 성폭력에 맞서는 움직임. 여러 모로 끔찍하면서도 전환점이 될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던 해.

(이용철) 상업영화들이 꾸준히 흥행 성공작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제작과 배급, 상영을 한 손에 쥔 몇몇 기업들이 주고받듯이 흥행작을 나눠 갖는 행태는 아무리 비판해도 모자라지 않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나온 한국영화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도 드물었던 게 눈에 띈다.

<우리들>
<우리들>
(정민아) 결정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처럼 사회반영성과 징후적 예지력이 빛나는 장르영화가 대거 등장하였는가 하면, 예술적 도전으로 무장하여 보편적인 고민을 던지는 비주류영화도 풍성했다. <내부자들> <부산행> <곡성> <밀정> <비밀은 없다>와 <동주> <우리들> <4등> <죽여주는 여자> 등 훌륭한 장르영화와 훌륭한 비주류영화가 있었다. 한국영화는 지난해 키워드인 복고, 아버지, 가족에서 올해에는 일제강점기, 여성, 사회비판 등의 키워드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외국영화의 경우, 슈퍼히어로 영화의 젠더, 인종, 문화적 진화를 한 편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슈퍼모더니즘 시대에 더 척박하진 양극화 상황을 빚대는 인디영화들이 구축한 또 다른 한 편을 즐겁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전찬일) 날로 악화되고 있는 영화산업의 독과점, 양극화로 인한 빈익빈부익부의 심화 등 와중에도 영화를 향한 한국 관객들의 관심·애정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새삼 드러난 유의미한 한해였다. 이러저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4년 연속 연 관람객 수 2억 명을 돌파했으며, 그 중 한국영화는 1억 관객 이상을 동원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강타했던 11월에도 관객 수와 매출액 감소치가 17%와 13%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탄탄한 위상을 역설적으로 증거 한다. 장르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던바, 제작비 조달 및 스크린 확보 등 숱한 고난을 뚫고 완성돼 선보인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자백>은 2016년 한국 다양성 영화 1위와 4위를 차지했으며, <터널>과 <판도라> 등은 사회(고발)성 짙은 한국형 재난 영화의 어떤 잠재력을 입증했다.

(한동원) 올해 영화계의 키워드들을 꼽아보자면 <아가씨>, <곡성>으로 증명된 한국영화의 상업적 작가주의의 가능성, 마블과 DC로 상징되는 덕후 무비 유니버스의 건재와 확장, 이른바 메이저 영화사들이 구축한 독점체제의 여전한 건재, 그리고 세상이 워낙에 세상이었던 만큼 끝 모르도록 이어졌던 헬조선 고발-비판-풍자 영화들의 양산 및 그 영화들 중 일부가 보인 매너리즘 또는 퇴행의 징후 정도가 될 것인데. 하지만 진정 결정적인 키워드는 영화판의 밖에서 등장, 그 어떤 초거대블록버스터보다도 강하게 한국 영화계를 강타하였으니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으리. 모든 픽션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압도하는 이 현실. 지금 영화계 최고의 적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이 비단 영화계만의 적인 것도 아니겠다만.

(황진미) <곡성>이 열어젖힌 주술적 세계관, <아수라>가 보여준 민주주의의 실패는 한국사회가 품고 있던 비밀을 누설하였다.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한계와 공동체가 직면한 총체적인 파국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한 곳이다. 아무것도 믿지 말고 모든 것이 파괴된 지점에서, 즉 영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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