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프로젝트> 취재 장면. 와디즈 갈무리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3번째 영화 연출작 <임권택 프로젝트> 촬영을 마치고 제작기를 <한겨레>에 보내왔다.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임권택 프로젝트>는 펀딩사이트 와디즈(www.wadiz.kr/Campaign/Details/11571)에서 후반작업 비용 마련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아마도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임권택 감독님을 처음 뵌 것은 1986년 둘째 주 화요일 그때에는 남산에 있었던 영화진흥공사(현재 영화진흥위원회의 이전 명칭) 바로 옆 커피숍 난다랑에서였다. 아직 <씨받이>가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기 전의 일이다. 나는 아직 어렸고 책으로 영화를 이해하면서 이미 84번째 영화를 찍고 있는 이 거인의 영화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권의 책을 인터뷰로 꾸민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설명드렸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게 얼마나 어불성설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내 두들겨 맞다시피 했다. 서구의 영화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 사람의 영화를 내가 설명할 수 있다면 한국영화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가져볼 수 있겠다는 어렴풋한 결심이 선 것도 이때의 일이다.
하지만 말처럼 그건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사람의 영화를 쫓아가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심을 했다. 차라리 영화 현장에 가서 촬영 내내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내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당시 <씨네21> 편집장이었던) 허문영씨였다. 보고서 형식으로 취재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취화선> 촬영 현장에 162회차 촬영 중에 96회차를 머물렀다. 그건 늦여름에 시작해서 그해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입춘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방문이었다. 그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의 비밀은 완성된 영화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앙드레 바쟁의 그 유명한 명제. 영화는 과정 속의 예술이라는 사실. 임권택의 영화에서 그게 무언지는 지금도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를 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글로 붙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영화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어떤 과정. 저는 영화를 한편 찍고 당신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내 방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빠져나왔다.
첫 영화를 찍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에 임권택 감독님은 세 편을 더 찍으셨다. 그런 다음에야 카메라를 들고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 영화를 훔치러 왔습니다” 감독님이 막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다 가져가시오, 난 문을 열어놓았소.”
감독님의 102번째 영화 <화장>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걸 따라붙었다. 물론 촬영을 시작했다고 해서 금방 그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종종 헛것을 붙잡았고 때로 잡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새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따금 나를 완전히 멈춰 세울 때가 있었다. 암 투병을 하던 아내를 화장하고 마음에 품었던 여인 추은주도 떠나보낸 다음 기르던 개를 안락사시킨 오십 중년의 오정석(안성기)은 어느 이른 봄날 오후 텅 빈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이때 이 장면을 압구정 뒷길 대로에서 찍었다. 수없는 사람들.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는 차들. 연출부들은 이 큰길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망연자실해했다. “어디까지 통제할까요?” 임권택 감독님은 맑은 하늘을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냥 내버려둬요. 원래 세상은 사람 사는 일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 대로변에 나온 거예요.” 저 무심함. 그저 결단이랄 수밖에 없는 선택. 이때 나는 배운다. 영화에서 모든 장면은 세상을 살아본 그 사람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나는 그걸 찍었다. 그리고 오늘 그걸 편집하고 있다.
정성일 감독·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