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각)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김민희가 은곰상 트로피를 들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의 연기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김민희는 18일(현지시각) “홍상수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이날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도 김민희는 홍 감독의 양복 재킷을 입고 등장했고, “아침마다 너무 좋은 글을 받는 것은 여배우로서는 굉장히 기쁘고 신나는 일이다. 감독의 요구를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최근 실제 삶에서 처한 상황과 무척 닮았다. 김민희는 영화 속에서 유부남을 사랑하는 배우 ‘영희’를 연기한다. 다만 영화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고 헤어져 있는 상황이다. 영화는 두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영희가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아는 언니(서영화 분)를 방문해 속내를 이야기하는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귀국해 강릉에서 지인들을 만나며 나누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영희는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한다. 현재 감독과 배우의 실제 심경을 듣는 것 같다.
지난 16일 첫 시사회 뒤 기자회견에서 김민희는 “주인공은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자기의 감정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고 있다. 가짜인지 환상인지 현실이 각박하고 추운 또 다른 현실이 아닌지, 진짜 사랑이 있다면 어떤 태도로 수용하게 되는지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꿈속에서 여자가 얻어낸 지혜가 신비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영화 속 인물을 설명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서사를 끌고 가는 이번 영화는 김민희의 전작 <아가씨>와 비슷한 점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 여성주의적 목소리가 커진 사회 분위기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김민희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추세이고, 그런 것들이 영화에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이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 폐막식 레트카펫 행사에 함께 입장하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잡지와 광고 모델로 먼저 이름을 알린 김민희는 1999년 드라마 <학교 2>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데뷔했다. 초기엔 연기력 논란이 있었지만, 2012년 변영주 감독의 <화차>에서의 열연으로 진정한 배우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는 막대한 부를 상속받은 아가씨 히데코 역을 맡아 호연하면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고, 이번 수상으로 더욱 성장한 연기력을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 한국 배우가 칸·베니스(베네치아)·베를린 등 3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07년 칸영화제에서 전도연이 <밀양>으로 수상한 지 10년 만이다.
이번 김민희의 수상은 홍상수 감독과의 개인사와 겹쳐져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김민희는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년 개봉)를 촬영하며 홍 감독과 사랑에 빠졌고, 지난해 6월 이 사실이 공개되며 비난에 휩싸였다. 홍 감독은 현재 부인과 이혼 소송 중이다. 두 사람은 논란에 휩싸인 이후 처음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공개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16일 첫 시사회 뒤 기자회견에서 ‘자전적 영화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홍 감독은 “어느 감독이나 자신의 영화에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내 작품도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나도 내 이야기를 많이 넣지만 내 이야기와 정말 같아지려는 찰나에 방향을 튼다. 비행기가 착륙하려던 순간 다시 떠서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감독은 또 “우리는 가까운 사이여서, 대사도 김민희 배우의 의견을 묻는 편이다. 대사에는 내가 관찰한 측면과 김민희씨의 의견도 섞여 있기 때문에 어떤 게 내 생각이고, 어떤 게 김민희씨의 생각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김민희의 수상 뒤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자신에게도 질문이 들어오자 “이 회견은 그녀(김민희)의 자리”라며 답변을 사양하기도 했다.
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 금곰상을 받은 밀레나 카노네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민희, 황금곰상을 받은 헝가리 감독 이디코 에녜디, 심사위원장인 폴 버호벤 감독(사진 왼쪽부터)이 18일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이 영화로 세 번째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홍 감독에 대한 외국 기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타츠>의 헬무트 메르커 기자는 “보통 영화들과 스토리 구조가 달라서 흥미로웠다”고 했다. 베를린 방송 <에르베베>(RBB)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홍 감독의 영화가 이뤄냈던 것을 모두 통합하고 있다. 그런데 홍 감독의 ‘최고 영화’(Best of Hong)보다 더 훌륭하다. 김민희 배우 덕분이기도 하다”고 극찬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