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뚜렷하게 엇갈리는 영화들
요즘 극장은 취향의 전쟁터다. 지난해 <아수라>에 이어 올해는 <더 킹>과 <조작된 도시> 등을 놓고 한 영화에 대해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영화들은 흥행을 떠나 풍성한 토론을 남긴다. 만듦새에 대한 평가 못지않게 취향과 개인적 체험의 차이도 영화 평의 엇갈림을 낳는 주요 요인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들 중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루시드 드림>과 <23 아이덴티티>를 둔 찬반 평가를 전한다. 둘 다 22일 개봉.
#루시드 드림
‘안물안궁’의 좋은 예
<루시드 드림>은 개연성 없는 이야기를 끌고 올 때 마련하는 장치인 ‘설득의 문턱’이 없다. 대호(고수)는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유괴당한 뒤 3년간 행방을 추적하다가 꿈으로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루시드 드림을 치료에 활용하는 소현(강혜정)은 다짜고짜 찾아온 그를 연구소의 침대로 안내한다. 기자 출신인 대호는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고 연구자인 소현은 치료가 아닌 수사라는 것에 저항감이 없다.
설득할 근거가 애초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호의 방법은 3년 전 기억으로 돌아가 당시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되새김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각몽’이라는 이야기의 대전제가 무너진다. 그는 ‘꿈’이 아니라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다시 한번 설득력 문턱을 슬그머니 넘는다. 어떻게 수많은 기억 중 ‘검색’도 없이 ‘바로 그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관객은 어리둥절한데 등장인물은 맞춤하게 얼굴을 기억해냄으로써 수사는 착착 진행된다.
차곡차곡 쌓아야 할 설득력은 없앤 반면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행동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아?” 극중 경찰인 설경구가 얘기하는 순간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외치고 싶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참신한 캐릭터들의 등장
<루시드 드림>은 <인셉션> 복제품인가? 그럴 수도 있다. 타임슬립, 의식 조작 등의 공상과학 영화가 갖춰야 할 논리적 완결성이나 개연성을 포기하고 ‘한국적 서사’에만 충실했는가? 맞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한국 영화가 받았던 것이다.
<시간이탈자>는 왜 시간을 이탈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극장이탈자’라는 별명을 안게 됐다. <루시드 드림>에선 유괴된 어린아이가 강력한 미끼가 된다. 이 미션에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평이 크게 나뉜다.
게다가 캐릭터들은 ‘덜’ 한국적이다. “네 자식만 살면 내 자식은 어쩌라고.” 유괴범이 아들을 찾으려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가진 태도를 보여준다. 대호는 ‘기레기’일 수도 있고, 정의로운 기자일 수도 있다. 영화는 끝까지 이 점을 밝히지 않았다. 유괴범도 사회적으론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분법적 옳고 그름을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려는 야심은 주요 등장인물인 3가지 유형의 아버지들뿐 아니라 박인환 등이 연기하는 노인 조폭 등의 조연에서도 보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23 아이덴티티
한번도 무섭지 않았다
23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케빈(제임스 매커보이)은 여고생 3명을 납치, 감금한다. 그러나 이미 그 다중인격자가 초현실적 존재임을 암시하는 <숨바꼭질> 같은 영화가 나온 게 12년 전이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나 납치와 감금 모두 스릴러물에서 너무 익숙하고 흔해빠진 주제가 되었기 때문에 영화제작자들은 다른 방법을 도모한다. 지난해 개봉한 <룸>은 폐쇄되고 고립된 세계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만으로도 스릴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가해자인 납치범의 현실인식은 마땅히 그릇됐다는 고정관념을 뒤집기도 했다.
<23 아이덴티티>에선 무엇이 새로운가? 친절하거나 난폭한 케빈의 여러 인격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여고생들의 운명은 자주 흔들리지만, 이 상황이 인간사냥이라는 것을 깨닫고 침착하게 케빈을 주시하는 여주인공 케이시(아니아 테일러조이)의 운명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영화는 여러번 케빈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와 케빈의 손에 죽을 수도 있는 케이시의 시선을 일치시킨다. 또 방이 많은 지하실은 현실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케빈의 머릿속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뿐, 감독은 이번에도 뭔가 보여줄 듯하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남은주 기자
샤말란과 함께라면
일찍이 <식스 센스>로 반전과 서스펜스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2015년 <더 비지트>로 두번째 영화 인생을 시작한 참이다. 감독의 모든 새 영화는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장르에서 포스트 9·11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온 그의 행로 위에서 해석돼야 한다.
<23 아이덴티티>는 숨겨진 24번째 인격 비스트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는 중반부에 수수께끼 놀이를 포기한다. 납치된 케이시의 생존 여부가 밝혀지는 순간까지 그럴싸한 반전도 없다. 마지막에 <언브레이커블>의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이 등장할 때에야 이 영화의 숨은 의미가 밝혀진다. <23 아이덴티티>의 다중 인격 서사는 상처받은 타자가 영웅 또는 악당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소묘다. 케빈의 24번째 인격과 케이시의 성장이 <언브레이커블>의 세계관으로 수렴한 것이다.
샤말란의 영화니까 상상할 수 있는 의미가 또 있다. <23 아이덴티티>는 미국에서 1월20일에 개봉했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23 아이덴티티>의 원제는 분열을 뜻하는 ‘스플릿’(Split)이다. 감독은 분열된 미국이 깨운 존재가 야수이며 17년 전 영웅인 데이비드 던을 통해 깨부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고 외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학후(영화평론가)
<루시드 드림>. 뉴 제공
<루시드 드림>. 뉴 제공
<23 아이덴티티>. 유피아이코리아 제공
<23 아이덴티티>. 유피아이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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