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영화 ‘재심’ 폭행조사 이뤄진 ‘지하 취조실’ 찾아가봤다

등록 2017-02-23 14:19수정 2017-02-24 01:05

영화 <재심>.  오퍼스픽처스 제공
영화 <재심>. 오퍼스픽처스 제공
<재심> 사건 보도 기자가 밝힌 영화 속 실제 상황
명성모텔 실제 공간 구 익산경찰서 지하 취조실 찾아
최군 “누구나 저 같은 상황이면 더한 자백도 했을 것”
수사기관의 강압에 따른 자백과 그에 근거한 유죄 판결, 이를 뒤집고 진실을 드러내려는 변호사의 분투를 다룬 영화 <재심>이 한국 사회 형사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환기시키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관람 체험을 안기고 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 과정을 직접 취재했던 사건 담당 기자가 당시 취재 상황과 현장을 돌이켜보며 영화와 현실의 연관성과 간극에 대해 짚어보았다.

영화 <재심>은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사실 때문에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피살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15살의 최군은 이를 신고했다가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16년 만인 지난해 11월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임이 밝혀졌다. 최군은 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했을까? 형사들은 정말로 그렇게 무리해서 범인을 만들었을까? 재심을 결심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도통 이치에 맞지 않는 영화 속 사건들은 실제 벌어진 일이었다.

영화 <재심>의 모델인 최군이 실제 구타당하며 조사받았던 구 익산경찰서 지하 취조실. 허재현 기자
영화 <재심>의 모델인 최군이 실제 구타당하며 조사받았던 구 익산경찰서 지하 취조실. 허재현 기자
“긍까… 그 상황을 안 겪어보면 이해를 못해요. 누구나 저 같은 상황에 닥치면 자백이 아니라 더한 행동도 할걸요. 지하실이 있어요. 형사계에. 진짜 무서웠어요. 여기서 누구 하나가 맞아 죽어도 모를 그런 곳이에요. 거기 방에 들어가면 공포심부터 생겨요.” 2015년 7월 최군을 처음 만나 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했느냐 물었을 때 그의 답은 이랬다.

그길로 최군이 조사받았다는 ‘그 방’을 찾았다. 영화 <재심>에선 명성모텔이라는 곳의 한 작은 방이지만, 실제론 모텔엔 하룻밤 있었고 본격적인 구타가 시작된 곳은 구 익산경찰서 건물 지하실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예전의 지방 경찰서엔 형사계가 이렇게 지하에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벌어진 그날처럼 보슬비가 내렸다. 오후였지만 이미 해가 진 것처럼 어둑어둑했다. 익산경찰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 당시엔 건물이 폐허처럼 방치돼 있었다.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거미줄을 끊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니 형사계 사무실을 알리는 낡은 표지판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어둡고 습기 찬 공기들이 피부에 눅눅하게 달라붙으니 갑자기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나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멎을 듯했다.

지하 형사계에는 외부의 볕이 통하는 창문 하나가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빗소리와 어둠을 헤치고 찾은 작은 방. 최군이 조사를 받고 몽둥이로 쉴 새 없이 맞고 뒹굴었다던 곳과 구조가 비슷해 보이는 방을 찾았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다. 이런 곳이라서 무려 사람을 죽였다는 허위자백까지 하게 됐구나.’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외부에 전달될 것 같지 않은 그런 지하의 작은 방이었다. 이곳에서 15살 청소년이 몽둥이로 얻어맞고 자백해야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협박을 받는다면 일단 인정하고 나중에 바깥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실제 최군 엄마는 아들을 면회할 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형사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자꾸 이러시면 면회도 금지된다”는 겁박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배우 김해숙이 연기한 최군 엄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갖은 수를 쓰지만 내가 만날 당시엔 무기력하게 아무런 항의를 못했던 것에 한탄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좌절스러웠다.

취재를 더 해보니, 익산에는 경찰서로 연행돼 지하에서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야 풀려났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여럿 더 있었다. 법을 모르고 변호사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은 21세기에도 어처구니없게 이런 일을 실제로 많이 당한다. 허위자백을 연구한 국내외 자료들을 살펴보면 영화에서나 보던 전기고문 따위가 없어도 며칠간의 몽둥이질이나 공포심만으로도 사람들은 스스로 억울한 누명을 쓴다. 그리고 많은 허위자백은 법원에서도 걸러지지 않는다. <한겨레21>과 <한겨레>가 최군 사건을 앞장서서 열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와 실제가 다른 점도 있다. 2015년 7월 만났을 때 최군은 10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나와 결혼을 해서 아기 아빠가 돼 있었다. 최군 부인은 아주 똑똑해 보였으며 마치 그가 다시는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잘 도와주라며 하늘이 붙여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원래 최군은 기자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터뷰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최군을 부인이 설득했다. 조금이라도 더 알려서 재심을 받아보자고.

영화 <재심>. 오퍼스픽처스 제공
영화 <재심>. 오퍼스픽처스 제공

재심 전문 변호사로 영화 <재심>의 모델이 된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해 8월12일 수원 원천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재심 전문 변호사로 영화 <재심>의 모델이 된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해 8월12일 수원 원천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영화와 가장 다른 실제 인물은 정우가 연기한 박준영 변호사다. 지방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변호사가 된 것, 그리고 최군과 가족을 희망으로 이끈 것은 똑같지만, 돈만 밝히고 큰 사건만 노리다가 최군을 만나 마음이 바뀐 사람은 아니다. 최군 변호를 맡기 몇달 전에 전부터 알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 변호사 사무실 접으렵니다. 교도관들이 계속 편지를 보내와요. 어디 교도소 가보면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고 제발 좀 만나달래요.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다 만나러 다녀야 할 거 같아요. 범죄자들을 교화하는 교도관들이 ‘얘는 억울하니 꼭 도와달라’고 하는 거면 진짜 억울한 사람들인 거예요. 어떤 변호사도 이런 사람들을 찾아오지 않는대요.” 저렇게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공익 변호만 했다가 어찌 살 거냐는 걱정에 ‘화답’이라도 하듯 박 변호사는 얼마 안 가 파산했다.

영화 <재심>이 개봉하자 최군은 자신이 맞는 장면을 보며 그날의 기억에 몸부림쳤다. 박 변호사는 어머니와 최군은 영화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주었다. 최군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재현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최군과 가족들, 그들을 연기한 배우들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