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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구로사와 기요시 “겁쟁이가 공포물을 잘 만든다”

등록 2017-02-28 09:54수정 2017-02-28 10:03

공포영화 거장 내한…봉준호 감독과 행사
“일상에서 쭈뼛한 상상이 진짜 무서운 것”
데뷔 34년 동안 장르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
한국에도 팬이 많은 공포영화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제공
한국에도 팬이 많은 공포영화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제공

지난 20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구로사와 기요시(62) 감독의 마스터클래스는 한국 팬들로 가득 찼다. <큐어> <회로> <밝은 미래> 등으로 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구로사와 감독이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마스터클래스에서 “살아 있는 감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돌아가신 감독 중 가장 존경하는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의 영화 <보스턴 교살자>를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하자 객석에선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스터클래스 다음날 감독을 만나 그의 영화세계와 최근 작업에 대해 들었다.

“어떤 것이든 내 작품에 대해서는 애착과 불만이 있기 마련인데 단 한 편만 고르라면 <복수-운명의 방문자>(1997)다. 내게는 작가주의 영화와 오락물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하지 않고 한 작품 안에서 이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영화다. 그 이듬해 <큐어>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게 됐는데, 복수 시리즈를 통해 비약적인 과정을 밟았기 때문이다.” 1983년 <간다천 음란전쟁>으로 시작해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산책하는 침략자>까지 30여편에 이르는 작품을 쉬지 않고 만들어온 감독은 한 영화를 통해 다음 영화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을 강조했다. 감독은 <인간합격>(1999), <회로>(2000), <밝은 미래>(2003), <도쿄 소나타>(2008) 등으로 칸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여러 번 초청돼 수상하며 공포영화에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인정받는 드문 길을 걸어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은판 위의 여인>은 프랑스에서 일본 감독이 만든 공포영화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포에 대한 그 수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농담처럼 “무서운 영화를 보면 보통사람보다 조금 더 무서워하는 편이다. 겁이 많은 사람이야말로 무서운 영화를 잘 찍을 수 있다. 밤에는 무서우니까 편집을 잘 안 한다”며 웃었다. 또 “일상에서 가끔 쭈뼛해지는 상상을 한다. 이런 멀쩡하고 평범한 테이블 밑에서 누군가가 나를 쳐다본다면 어떨까? 무서울 리 없는 장소에서 무서운 것을 맞닥뜨리는 것이 최고의 공포”라고 덧붙였는데 이는 그의 공포영화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해 개봉한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은 도쿄 교외에 사는 부부가 살인마에게 희생되는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감독은 “평범한 곳에 뭔가 나쁜 것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이야말로 무섭다”고 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왼쪽)과 봉준호 감독.  서울아트시네마 제공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왼쪽)과 봉준호 감독. 서울아트시네마 제공

올해 한국 개봉 예정인 <은판 위의 여인>은 광기와 집착의 사진가(올리비에 구르메)와 아버지 요구대로 모델 노릇을 하는 딸(콩스탕스 루소), 그리고 이 집에서 조수로 일하게 된 청년(타하르 라힘)의 이야기다. “서양 유령들은 대개 처음부터 죽은 상태지만, 일본 괴담에선 죽어 유령이 된 여자가 살아 있는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 이 영화는 서양 유령과 일본의 괴담이 공존한다. 옛날엔 동서양의 호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일본 호러 이후 공포 코드가 세계 공통이 됐다고 본다”는 감독은 19세기 서양 수채화 같은 장면이 이어지는 일본식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데뷔한 지 34년이 된 감독이 부단히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입증이며, 오랜 시간 가족의 서사에서 공포를 말해온 기요시 특유의 가치관과 심미관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장르를 보여주기도 하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도 한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산책하는 침략자>는 나약하고 평범한 외계인이 주인공인 코믹한 공상과학영화다. 아직 일본에서도 개봉 전이지만 4월부터 같은 소재의 외전 격인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고도 했다.

줄곧 가족 문제를 다뤄온 감독이 <크리피…>와 <은판…>에선 아버지와 딸에, <산책…>에선 개인에 집중하는 것은 주제 의식 변화가 아닐까? 감독의 답은 이렇다. “제 영화 대부분 가족은 결국 부서지게 되는데 애초부터 가족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지점이 거기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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