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폴란드의 수녀원. 수녀들이 찬송가를 부르는데 격렬한 진통 소리가 들린다. 찬송을 마친 이레나 수녀는 수녀원을 몰래 빠져나온다. 이레나 수녀가 거리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의사한테 데려다줘. 러시아 사람도 안 되고 폴란드 사람도 안 돼”다. 수녀는 적십자 병원을 찾고 프랑스 의사 마틸드와 수녀원으로 향한다. 마틸드(루 드 라주)는 수녀원에서 진통 중인 수녀를 제왕절개해 아이를 분만하고 후처치를 위해 다음날 온다. 마틸드는 임신한 수녀가 한명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아뉴스 데이>는 프랑스 여의사 마들렌 폴리아크의 노트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전쟁 중 파리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했던 폴리아크는 전쟁 뒤 폴란드로 왔다. 적십자 병원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여성 구급대원들과 프랑스 군인들의 송환 임무를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리아크는 1946년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그가 남긴 수녀원 관련 노트가 조카에 의해 70년 뒤 공개되었고 세계는 경악했다.
2차 대전을 앞뒤로 폴란드는 주변 국가의 침탈에 시달렸다. 전쟁 초반에는 독일과의 전쟁으로, 나중에는 독일군을 쫓아 반격해온 소련군의 진공으로 바르샤바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전쟁에서 여성은 가장 큰 피해자였다. 수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원장 수녀(아가타 쿨레샤)는 마틸드에게 진료를 요청하면서 말한다. “처음엔 독일군에게 당했고 그 뒤엔 러시아(소련)군까지 왔죠. 그들은 며칠씩 머물렀어요.”
“임신을 했지만 순결 선언을 지켜야 하”는 수녀에게 그 치욕은 종교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수녀들은 “24시간을 고통으로 지내다가 한순간 희망을 보면서” 하느님에게 묻는다.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하느님은 왜 ‘주의 어린양’(아뉴스 데이)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일까, 고통받는 이들에겐 구원이 주어질까, 아니면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지옥에 가는 걸까.
배우 출신 감독 안 퐁텐은 프랑스와 폴란드의 여성 배우들을 조율해가며 수도원과 눈으로 뒤덮인 풍경에 숨은 잔인함을 고요하게 비춘다. 무신론자인 의사 마틸드는 수녀들을 도우면서, 여성으로서 겪는 전쟁의 폭력성을 마리아 수녀(아가타 부제크)와의 대화와 기도를 통해 견딘다. 신은 어디 있는지 궁금한 그곳에서 ‘신의 어린양’을 지탱하는 것은 여성들 사이의 연대다. 3월30일 개봉.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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