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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마이클 니콜스 감독 <클로저>

등록 2005-01-31 19:08수정 2005-01-31 19:08



미련하게…허전하게…묻지마! 진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애인의 정절을 의심해서 다투는 커플의 대화 중에 빠지지 않는 대사는 이런 거다. “어떤 대답을 듣기를 원해?” “진실을 말해.” 이런 경우 진실은, 열리는 순간 결코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상처들을 쏟아내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진실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진실’의 진실은 무엇인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새영화 <클로저>는 각기 다른 색깔의 ‘진실’을 갈망하는 네 남녀를 통해 사랑의 쓰디 쓴 진실에 다가간다.

신문의 부고란 담당 기자인 댄(주드 로)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의 진실을 믿는 사람이다. 출근길에 부딪힌 스무살의 앳된 여성 알리스(나탈리 포트만)와 사랑에 빠진 그는 함께 살면서 둘의 에로틱한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그는 소설책 표지의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알리스와의 사랑을 곁에 놓은 채 안나에게도 집요하게 다가간다. 댄의 구애를 ‘바람기’로 부정하는 안나는 피부과 의사인 래리(클라이브 오언)와 만나 결혼까지 하지만 댄과의 관계는 점점 뜨거워진다. 둘의 부정을 알아차린 래리는 ‘진실’을 캐묻는다. 둘이 잤는지, 언제 어떻게 했는지 물으며 진실을 알게 된 그의 분노는 상대방에 대한 집착과 폭력적인 소유욕으로 이어진다.

사랑의 가치를 갉아먹는 네 남녀 네가치 색 진실게임
결국 정절을 의심하는 것이 자신을 후벼파는 부메랑인것을…

네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두 남자는 엇갈려 만나게 되는 두 여자에게 ‘진실’을 추궁한다. 댄은 래리를 떠나 자신에게 온 안나에게, 그리고 헤어졌다가 돌아온 알리스에게 래리와 잤는가를 계속해서 묻는다. 결국 상대방의 정절에 대한 진실을 후벼 파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후벼파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만 그는 멈추지 못한다.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마음의 움직임에 놓여있는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진실에 눈멀기는 래리도 마찬가지다. 유약한 댄보다 마초적일 뿐 자기 생각 범위 밖의 진실을 볼 의지나 능력이 없다. 두 남자는 결국 진실로부터 배신당하기를 자초한다.

두 남자의 그릇된 욕망에 안나는 타협하고, 알리스는 뛰쳐나간다. 영화 속에서 공허한 진실게임에 말려들지 않는 유일한 인물은 알리스다. 두 남자처럼 진실을 상대방의 정절에 대한 시험대로 여기지 않는 그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무가치해지는 지점에서 미련없이 떠난다. <클로저>는 사랑의 가치를 갉아먹고 변질시키는 의심과 질투에 밀착하는 영화다. 진실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애정마저 포기하는 두 남자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진실은 인간의 유약함과 어리석음이다. 더 슬픈 진실은 결국 이 어리석음이 역설적으로 평범한 인간이 사랑에 집착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만큼이나 ‘안티’로맨스 영화도 쏟아져 나오는 지금 <클로저>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네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성적·감정적 긴장감의 앙상블은 황금비율처럼 정교하다. 특히 스트립 댄서를 연기하면서도 네명 가운데 유일하게 사랑의 ‘정신적 영역’을 파고드는 나탈리 포트만은 이제 성인배우로 스크린에 연착륙한 것처럼 보인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노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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