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의 결혼원정기’
경상북도 예천에서 농사를 짓는 서른 여덟살 홍만택(정재영)은 여태 미혼이다. 가진 것 없는 농촌 총각인데다가,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랑 눈도 못마주칠 만큼 쑥맥인데 장가가 왠 말. 만택의 할아버지는 몽정으로 젖은 속옷을 몰래 빨아입다 들킨 손주가 불쌍한 나머지, 손주에게 우즈베키스탄행 ‘결혼 원정’을 권한다. 그 길에 만택의 ‘불알 친구’이자, 실속없는 바람둥이 농촌 택시기사 희철(유준상)이 동행한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했던 황병국 감독의 데뷔작 <나의 결혼원정기>는 한국방송의 <다큐멘터리 인간 극장―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영화다. 다큐멘터리 속의 농촌현실이 그렇듯, 국경을 넘어야만 배필을 찾을 수 있는 영화 속 만택과 희철의 상황도 서글프고 고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의 결혼원정기>는 이 서글픈 현실 위에, 국경을 뛰어넘는 남녀들의 만남이라는 설정에 의레 기대하게 되는 낭만을 덧입혔다. 만택은 야무지고 당차지만 도망중인 탈북자 출신 통역원 리라(수애)와, 희철은 착하고 순수한 고려인 출신 첫 맞선녀 알로나(신은경)와 아슬아슬 애틋한 사랑을 시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데다 온 국민이 공감하는 사회 문제를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 수준은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이기도 한 만큼 자칫 긴장이 떨어지고 지루해질 수도 있다. <나의 결혼원정기>는 낭만적 사랑과 더불어, 지나치게 어리숙한 만택과 역시 지나치게 유들유들한 희철이라는 두 캐릭터가 빚어내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지루함을 떨쳐낸다. 여기에 수애의 침착하고 안정적인 연기까지 보태져 균형을 잡으면서, 우습지만 가볍지 않은 휴먼드라마로 거듭났다. 23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튜브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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