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림 형제’
마법에 대한 매혹과 이성에 대한 믿음이 공존하던 또는 서로 힘을 겨루던 19세기 초 프랑스. 윌 그림(맷 데이먼)과 제이크 그림(히스 레저) 형제는 순박한 농부와 시골 아낙들을 떨게 만드는 괴물과 유령을 만들어내고 또 그것들을 퇴치하는 일을 하면서 돈벌이를 한다. 이들의 가짜 퇴마사 노릇은 프랑스 정부에게 꼬리를 밟힌다. 형제는 ‘귀신들린’ 숲 마르바덴에서 사라진 11명의 소녀들을 구해내지 않으면 사기죄로 화형을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한다.
<브라질> <12 몽키즈>의 테리 길리엄 감독은 7년만에 내놓은 <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에서 기괴하고 어두우며 잔인하기까지한 유럽 전래동화의 판타지 세계로 들어간다. <빨간 두건>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등의 작품을 썼던 독일의 동화 작가인 그림 형제는 이 영화의 모델이자 주인공으로, 형제가 겪는 모험이 하나의 동화로 완성된다. 영화 속의 형 윌이 귀신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근대인인 반면, 동생 제이크는 마법과 정령의 힘을 믿는 중세적 인간이다. 드라마 초반 제이크는 형으로부터 덜 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지만 마르바덴 숲의 심장인 거울공주의 성으로 가까이 갈수록 형제는 초현실적인 위협과 함정으로 빠져들고 제이크의 ‘믿음’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 감독의 애정이 윌보다 제이크에 치우쳐있듯 <그림형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어둠과 신비로움으로 가득찬 중세적인 세계이다. 두 형제가 끌려가는 고문실과 500살 된 거울공주(모니카 벨루치)가 사는 뾰족탑, 비틀어진 가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숲의 풍경은 외국 박물관에서 열어볼 수 있는 오래된 동화책의 삽화처럼 으시시하면서도 기이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그 매력이 테리 길리엄이라는 개성있는 감독의 주가를 더 올려주는 것은 아니다. <반지의 제왕> 등으로 신화적인 이야기와 감각적인 볼거리의 눈높이가 올라간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주는 비주얼이 새롭게 느껴지기 힘든데다 그저 위험한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기 급급한 두 형제의 여정은 평범한 할리우드 모험담보다 나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올랐다. 17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에이엠시네마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