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몇 해 전 기억이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안주가 떨어질 즈음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나 요즘 혼자 흘리는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 너희는 가족 몰래 펑펑 울 때 없냐?” 그러자 건하게 취한 친구 녀석이 불쑥 이런 말을 토해냈다. “울어? 혼자? 어른 됐네. 어른이 됐어. 어른이 별거냐.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어른이지….”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녀석이 뇌까린 짧은 문장이 허공을 맴돌다가 동석한 이들의 가슴에 꽂힌 듯했다.
‘어른’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제임스 서버의 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을 원작으로 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다 큰 어른의 성장기다.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소싯적엔 닭 볏처럼 가운데 머리카락만 세우는 일명 ‘모히칸 머리’를 하고 주니어 스케이트보드 대회를 주름잡기도 했지만, 지금은 변화보다 안정된 삶을 추구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샐러리맨이다. 라이프 잡지사의 사진부에서 16년째 일하는 그는 시쳇말로 멍 때리기의 달인이다. 터무니없는 공상을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출근길에 기차를 놓치기 일쑤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월터가 42살 생일을 맞이한 어느 날,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경영진이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보낸 필름 한장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숀은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며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세계 곳곳을 유랑하는 노마드적인 인물. 숀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는 월터는 직접 그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용기를 낸다.
마음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밀쳐낸 월터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 숀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그린란드로 향한다. 이때 월터의 눈빛은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무언가 거창한 걸 이뤄내는 순간보다 그저 한번 해보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올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린 그런 과정과 순간들 덕분에 삶을 이어나가는 건지 모른다. 상상 속에서만 표류하던 월터는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과 마주한다. 그러면서 차츰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짚는다. 월터의 상상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른의 자격에 대해 곱씹었다. 어른이 무엇일까?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낙관과 비관을 되풀이하면서 현실에 무뎌지는 것인가. 꿈과 현실의 괴리를 하나둘 메워나가는 과정인가. 이런 물음에 휩싸일 무렵, 사석에서 사소하지만 꽤 중요한 질문을 받았다. “저기요. 이기주 작가, 전 글쓰기가 두렵고 힘들던데요. 당신은 왜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요?”라는 의문문이 내 가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순, 목구멍을 격하게 치받고 올라오는 문장이 있었다. 난 그걸 건져 올려 또박또박 발음했다. “저 역시 글을 쓰는 일이 두렵고 힘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글을 안 쓰고 살아가면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린 두려움이라는 장벽을 스스로 쌓은 채 세상을 향한 문을 종종 걸어 잠근다. 인간은 ‘두려움의 감옥’에 갇힌 노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두려움을 완벽히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두려움보다 소중한 것으로 마음의 밑바닥을 채워가면서 두려움의 농도를 조금 묽게 만드는 게 아닐까. 두려움을 극복하진 못하더라도 두려움을 묽게 희석하는 것.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월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기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