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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매너가 사람을 만들까?

등록 2017-09-30 14:46수정 2017-09-30 17:31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킹스맨: 골든 서클’

전편서 가난한 주인공의
‘흙수저’ 판타지 선사해
관객 시선 사로잡았다면
2편은 화려한 캐스팅 눈길

그러나 미국의 카우보이를
주 배경으로, 특유의 ‘영국’
스타일은 자취 감추고
‘김’ 빠진 스토리만 남아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 주인공 에그시는 영국의 ‘킹스맨' 본거지가 파괴되자 미국의 ‘스테이츠맨’에 일신을 위탁하게 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 주인공 에그시는 영국의 ‘킹스맨' 본거지가 파괴되자 미국의 ‘스테이츠맨’에 일신을 위탁하게 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킹스맨>의 1편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개봉 당시, 유독 세계적으로 튀었던 한국에서의 흥행 성공을 두고 배우 새뮤얼 L. 잭슨의 ‘불패설’부터 ‘영국 패션 대세설’까지 아우르는 각종 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다고 평가되던 것은, ‘금수저’판 한가운데에서 이루는 ‘흙수저’ 주인공의 성공 판타지에서 비롯됐다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기’ 이론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개봉하는 <킹스맨: 골든 서클>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큰 난제를 안고 출발하는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턴)를 깔보고 집단에서 따돌렸던 킹스맨 사관학교의 금수저 도련님들은 일찌감치 중도 탈락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비록 혼란의 와중에 비공인으로 된 것이긴 하다만, 아무튼 그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킹스맨 요원이 됐다. 그리고 세계를 구했다. 헐렁헐렁 동네청년 패션에서 잠수복만큼이나 물샐틈없는 럭셔리 스타일의 딱 떨어지는 비주얼도 갖추게 됐다. 심지어 그의 여자친구는 다름 아닌 스웨덴의 공주 마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이제 ‘금수저 이긴 흙수저’라는 미션을 수행할 근거 자체가 사라졌다. 이거야말로 에그시와 킹스맨 주최 측에게는 킹스맨의 비밀본부를 일제히 날려버린 유도미사일보다도 훨씬 무시무시한 위기가 아니겠는가.

맥 빠진 줄거리, 화려한 캐스팅

이 위기의식을 반영하듯, 2편인 <킹스맨: 골든 서클>은 갖가지 새로운 무기를 준비한다. 그중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스테이츠맨’이라는 미국 버전 킹스맨의 도입이다. 이 판을 만들기 위해 2편은 에그시와 그의 조력자 ‘멀린’(마크 스트롱)이 굳이 자신의 조직을 놔두고 대서양을 건너가야 하는 알리바이부터 설정하고 들어간다. 이미 예고편 등을 통해 공개된 바대로, 영국 내 킹스맨 본거지를 미사일로 날려버림으로써 이들을 사회적 고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에그시와 멀린은 대서양 너머 미국 남부의 위스키 양조업체가 만든 비밀조직인 ‘스테이츠맨’으로 건너가 이들과 공동작업(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일신을 의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각종 설정과 조크를 등장시킬 기회로 십분 활용된다. 예를 들어 요원들의 이름을 ‘테킬라’, ‘진저에일’, ‘샴페인’, ‘위스키’로 하는 주류업 작명철학을 도입한다든가, 킹스맨을 돕는 스테이츠맨 측 요원인 ‘위스키’(페드로 파스칼)의 주력 무기를 카우보이 올가미로 설정한다든지 말이다. 킹스맨과는 대조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데님과 가죽으로 무장된 카우보이풍 패션은 말할 것도 없겠다.

물론 그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그 크기는 계란 기준 메추리알 정도다. 열대우림에 뜻하지 않게 은둔하며 전세계에 시한폭탄형 마약을 공급하는 마약여왕(이 악의 축 설정은 배우 페드로 파스칼의 캐스팅에서도 엿보이듯 티브이 시리즈 <나르코스>를 다분히 떠올리게 한다)과 킹스맨의 대결이라는 2편의 줄거리에서, 순전히 이야기의 전개라는 측면만 생각한다면 ‘스테이츠맨’이라는 요소가 굳이 도입되어야 할 필연성은 희박하다. 이것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배우 줄리앤 무어, 제프 브리지스, 채닝 테이텀, 핼리 베리, 페드로 파스칼 등의 거의 올스타전급의 화려한 캐스팅이 점점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즉 2편은 킹스맨 본부를 날려버리는 강수와, 그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화려한 캐스팅으로 채움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하고 있으나, 줄리앤 무어와 페드로 파스칼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상당히 희박했던 관계로, 화려한 캐스팅이 빛을 바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이 엄혹한 시장조건하에서, 어쨌거나 이목을 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새로운 캐스팅 중 성공적인 대목도 있다. 어찌 보면 주요 캐스팅 중 유일하게 미국 배우도 전문 배우도 아닌 엘턴 존을 이용한 각종 개그야말로 2편이 날린 타구 중 가장 큰 득점을 올린 적시타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의 ‘엘턴 존=친구’ 장면(스포일러 우려로 상세한 묘사는 생략)은 2편을 통틀어 가장 웃겼던 장면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1편의 재탕이라는 느낌을 피한다는 면에서는 (영국 신사 아닌) 미국 카우보이풍 비밀무기들도 나름의 존재 근거가 있다 하겠다. 예컨대 힙 플라스크(휴대용 위스키병)를 가장한 특수폭탄은 어딘지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 계통인가 영국 계통인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결국 이런 <007> 또는 <미션 임파서블>풍 비밀병기의 핵심은 현실성과 첨단성 사이의 밸런스일 것이다. 물론 ‘기억삭제 침’ 같은 것은 좀 너무 나갔다는 느낌 없지 않았다만, 1편의 무기들(우산 방패 겸 총, 라이터 폭탄, 만년필 독약, 칼날 구두 등등)은 나름 옛 <007>의 아날로그적 구수함을 최근 테크놀로지와 적절히 배합했다. 하지만 2편에서 등장한 비밀무기는 현실성:첨단성 비율은 거의 3:7 또는 2:8 정도로 상당히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

영화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본드카를 재현한 ‘킹스카’의 변신까지는 나름 구수하고 재미있다. 레이저 커팅이 가능한 전자 올가미까지는 뭐, 좋다. 그러나 특정 신체부위를 통해 삽입되는 나노 추적기 같은 장비부터 밸런스는 무너지고 긴장감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악의 축 ‘포피’가 데리고 있는 로봇개와 로봇경호원은 1편 ‘가젤’(소피아 부텔라)의 위협감을 전혀 재현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테크놀로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할 이런 과도한 첨단의 오류는 ‘해리/갤러해드’(콜린 퍼스)의 부활 장면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의학/기술 담당 ‘진저에일 요원’(핼리 베리)의 시지(CG) 곁들인 간단한 설명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알파젤’이라는 이름의 그 기적의 최첨단 나노 의학장비는, 용광로에 몸 던져 불꽃으로 산화해 갔던 리플리를 기어이 유전자 복제로 부활시킨 영화 <에일리언 4>의 과도한 최첨단의 오류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이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사용되어 이야기의 긴장감을 비약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 추세라면 훗날 3편에서는 폭탄으로 조각난 신체부위도 전부 맞춰주는 첨단나노기적 ‘오메가젤’이 등장해 에그시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활시킬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킹스맨>의 과학적 설정을 가지고 이렇게 정색하고 따지는 것만큼 웃긴 것도 없겠다. 어차피 이 영화가 과학 다큐도 아닌 마당에 그냥 영화라서 그런 거라 이해하고 넘어가주는 것이 올바른 <킹스맨> 관람 매너가 아니겠는가. 매너가 관객을 만든다. 사실 해리가 부활한 것의 핵심은 그가 1편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매력도 되살아났느냐에 대한 것이다. 2편이 보여주는 결정적인 아쉬움은 아마도 이 대목이겠다. 1편이 에그시의 ‘용 되기’였다면, 2편은 해리의 ‘나비 되기’다.(※이하 스포일러) 즉 2편은 이미 용 되어버린 에그시로 인해 생긴 성공 판타지의 공백을, 총격으로 인해 초기 공장출하 상태로 ‘리셋’되어버린 해리의 원상복귀 과정으로 대체하고 있다.

구관이 명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이 그다지 흥미롭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는 데 있다. ‘애벌레’ 상태의 해리를 거의 실질적으로 감금하고 있던 스테이츠맨 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1편의 절도 있는 액션파워를 거의 한 몸에 구현하고 있던 해리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김빠지는 오조준 액션을 보여주는 것은 관람 통쾌미 제고 면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았다 하겠다. 특히나 1편의 팬들을 위해 어김없이 준비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장면의 재현도 어딘지 김빠진 탄산수 같았던 것은 (한국 관객에게는 특히나) 큰 손실이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해리의 원상복구는 해리의 부활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니만큼, 그다지 설득력 있지도 않은 ‘역경극복-나비탄생’의 과정 같은 것은 일찌감치 밀쳐두고 그를 재빨리 원상복구시키는 편이 나을 뻔했다. 그랬다면 나름 결정적인 단서를 육감으로 간파해내는 해리라는 상당히 무리하고도 어이없는 설정이나, 막판 감동 압출을 위해 ‘멀린’이 감수해야 했던 그 뜬금없는 처분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좀 뜬금없는 여담이긴 하다만, 1편 중반쯤에 머리 부위 폭발로 사망하는 ‘아널드 교수’ 역의 배우가 마크 해밀(<스타워즈> 에피소드 4·5·6에서의 루크 스카이워커)이었다는 걸 처음부터 알아챈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구관이 명관인 듯, 아마도 1편보다 2편이 더 재미있었다고 얘기할 관객 수보다는 많지 않을까 하는 것으로 연휴맞이 감별에 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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