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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늙은 ‘데커드’ 말고 상상력을 보여줘, 2049년이라며

등록 2017-10-11 16:56수정 2017-10-11 20:25

‘블레이드 러너 2049’ 리뷰

1982년 태어난 디스토피아 세계관
깔끔하고 아름답게 다듬었으나
원작에 발목잡혀 ‘여전히 정체불명’

2017년에 만든 SF영화라기엔
빈곤한 미래 사유, 극중 30년도 무색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얼마나 이상한 영화인지 지적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엄청난 흥행 실패작이었고 비평적 성과도 별로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에스에프(SF)로 보았을 때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는 수상쩍기 그지없다. 리플리컨트는 도대체 무엇인가. 로봇인가, 사이보그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21세기 초에 번성하고 있다는 외계 식민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해리슨 포드가 연기하는 데커드는 블레이드 러너란 멋들어진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무능하고 하는 일이 없는가. <블레이드 러너>가 저주받은 걸작 취급을 받으면서 이런 불평은 조금씩 스러져갔지만 그렇다고 이 수상쩍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단지 이것은 옛날 에스에프 영화의 고풍스러움 속에 묻혀 일종의 매력이 되었을 뿐이다.

2017년에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이 영화의 속편을 만들며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2049년을 반영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하지만 1982년에 말 그대로 엉겁결에 만들어진 이 정체불명의 세계에 얼마나 의지해야 할 것인가? 아니, 리들리 스콧은 애당초부터 왜 속편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것인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렇게 보았을 때 일종의 서커스처럼 보인다. 일단 영화는 1982년에 태어난 레트로 에스에프 설정을 비교적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조심스럽게 확장하고 세부묘사를 더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우리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곳이다. 일단 아무도 모바일로 인터넷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소 무책임하게 방치되었던 원작 영화의 요소들은 깔끔하게 다듬어졌고 잘 정리되었으며 종종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무척 아름다운데, 종종 <블레이드 러너>의 테마를 갖고 만든 멀티미디어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원작을 넘어서는 속편이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부터 이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그렇게 쉽게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정확한 계획 없이 어쩌다 만들어진 영화이며 매력과 장점은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여기엔 작가주의의 잣대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왜 리들리 스콧이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의 프랜차이즈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훌륭한 두 영화를 감독했지만 이들 작품의 세계관엔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비교를 해본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원작보다 더 말이 되는 에스에프 영화지만 그래도 2017년에 나온 에스에프 영화치고는 갑갑한 구석이 많다. 원작에 발목 잡혀 2017년의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생각을 영화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예를 들어 주인공의 가상현실 여자친구로 나오는 조이 캐릭터를 보자. 자동적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가 떠오르며 겹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인간 남자와 인간 여성형 인공지능의 연애 이야기인 척 시작하다 인공지능 캐릭터를 훌쩍 특이점 저편으로 넘기고, 지금까지의 연애가 모두 인간 남자의 망상에 불과했고 인공지능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는 것을 폭로하는 <그녀>와 달리 조이의 캐릭터는 1950년대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의 여자친구와 같은 기능에 머문다. 후반부에 이러한 허망함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21세기의 에스에프적 사유치고는 빈곤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에스에프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많이들 착각하는 것과는 달리 에스에프의 기능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된다. 하지만 좋은 에스에프는 대부분 동시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가장 전위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은 빌뇌브의 영화를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들게 하는 데에 일조했지만 에스에프적 사고와 도전에 충분한 자유를 주지는 못했다. 후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르팬인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정직하지 못함에 갑갑함을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듀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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