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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2017년과 ‘좋은 이별’을

등록 2017-12-25 18:23수정 2017-12-25 21:41

-이기주의 칼럼 ‘어바웃 타임’-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어바웃 타임>은 시간을 미끄러지듯이 타고 과거로 돌아가 현실을 바꾼다는,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다. 평범하다 못해 어딘지 어리숙해 보이는 청년 팀(도널 글리슨)은 스물한 살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집안의 비밀을 듣게 된다. 시간여행 능력이 Y염색체를 통해 부계 유전된다는 것.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데 특별한 장치나 술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과거를 떠올리면 자유롭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능력이 생기면 혹자는 근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려 하거나 재산 증식을 시도할 테지만,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이른바 ‘모태솔로’인 팀은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대학 졸업 후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메리(레이철 매캐덤스)라는 여인을 만나 첫눈에 반한 팀은 시간여행을 통해 그녀의 취향과 세계관 등을 손쉽게 파악한다.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결혼 후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그러나 행복도 잠시. 팀이 시간여행을 하며 과거에 개입할 때마다 현재가 뒤엉켜버린다. 과거를 바로잡을수록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미묘하게 틀어지고 가족과 이웃은 불운을 겪는다. 출퇴근길에 편의점 들르듯 빈번하게 시간여행을 감행하던 팀은 혼돈에 휩싸인다. 결국 무수히 많은 시간여행을 거듭한 끝에 팀은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인생은 매일매일 사는 동안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뿐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어바웃 타임>은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영화임이 분명하지만, 실은 삶과 시간에 대해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묻는다. 후회 없는 삶이 과연 존재할까? 영화의 주인공 팀처럼 과거로 돌아가 인생의 테이프를 되감는다고 해서 현재가 무조건 행복해질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아닐까?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문득 달력을 올려다보았다. 열흘쯤 뒤면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타고 종로의 보신각 종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진다. 방송사 아나운서는 “2017년이 저물어 갑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조금 허무하군요” 같은 흔하디흔한 멘트로 방송을 시작할 테고, 심야 라디오에선 “해가 저무는 끝자락에선 지난 일 년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죠” 하는 씁쓸할 목소리가 어김없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제 2017년을 떠나보내야 한다. 무언가를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후회를 동반한다. 삶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 따위를 세월이란 강물에 떠내려보내는 일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가 과거가 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은 후회로 물든다. 후회는 서둘러 사라지는 법이 없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은 채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후회의 활동 반경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희망과 긍정의 싹이 아예 잘려나간다. 후회는 현재에 엉겨붙고 미래를 뭉개버린다.

무릇 인생 여정에선 스쳐 지나가는 것을 잘 사라지게 해야 새로운 것을 잘 시작할 수 있고, 무언가를 마음에 온전히 간직하려면 온전히 떠나보내야 한다. 일 년이란 시간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와 추억으로 쌓이는 시점에서 철저한 자기반성도 좋지만, 과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12월을 비관주의로 물들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린 새해를 잘 맞이하기 전에 올해와 잘 작별해야 하는지 모른다. 2017년을 잘 떠나보내자.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보듬자. 이 정도면 애썼다고, 그럭저럭 잘 버텼다고, 힘겨운 순간도 많았지만 무너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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