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상상력과 파격적인 성적 코드를 버무린 작품 세계로 ‘영화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신작을 들고 찾아왔다. 유럽이 겪은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극단적 영상미로 그려낸 전작 <프란츠>가 ‘새로운 오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28일 개봉하는 <두 개의 사랑>은 <스위밍 풀>(2003)이나 <인 더 하우스>(2012)로 대표되는 ‘원래의 오종’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준다. 오종 감독의 팬에게는 찬사를 받겠지만, 그를 잘 모르는 관객에겐 다소 문턱이 높은 작품으로 느껴질 것도 같다.
클로에(마린 바크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과 우울에 시달린다. 심리적 문제라는 판단에 정신분석 상담의 폴(제레미 레니에)을 찾아간다. 상담이 진행되며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털어놓았을 뿐인데 복통은 씻은 듯 사라진다. 그리고 둘은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평화로운 일상도 잠시뿐. 폴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클로에는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는 폴에 대해 불안해하고 복통과 불안증은 재발한다. 클로에는 폴을 속이고 그의 쌍둥이 형이자 또 다른 상담의인 루이를 만난다. 폴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루이에게도 걷잡을 수 없이 끌리는 클로에는 금기를 넘어서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된다.
영화 <두 개의 사랑>은 클로에가 복통의 원인을 찾아 나감과 동시에 폴과 루이라는 쌍둥이 형제의 과거를 추적해 나가는 일종의 심리 스릴러다. 처음엔 그저 의학적 치료를 매개로 한, 다소 ‘막장’ 분위기의 사랑과 육체적 탐닉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은 표면적인 ‘관계’ 속에 숨겨진 클로에의 ‘내면’에 주목하게 된다.
폴은 다정하고 사려 깊다. 둘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만 폴의 사랑은 클로에를 완치시키지 못한다. 루이는 거만하고 거칠다. 클로에는 겉으론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속으론 그의 육체와 폭력성에 끌린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폴이 클로에의 의식 세계를 대변하고, 불안정하고 가학적인 루이는 무의식적 욕망을 대변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은 환상과 실재를 오가는 클로에의 불안정한 심리의 투영일 뿐일까? 관객은 묘한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종 감독은 낯선 시선과 여러 장치로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대표적으로 루이의 상담실로 가는 길목에 설치된 ‘미러 스페이스’는 산산이 조각나고 분열된 클로에의 자아를 상징한다. 카메라가 자꾸만 두가지의 상반된 분할 화면을 통해 클로에를 비추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노린 장치다.
감독은 어느 순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을 가로막는다. 그저 하나씩 하나씩 이미지와 상징을 던져주며, 그 안에 흩어져 있는 ‘코드’를 따라 클로에의 심리를 엿보게 한다. 영화는 그런 이유로 불친절하다. 노골적인 성기 묘사나 퀴어적인 장면 탓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클로에는 왜 쌍둥이에게 끌리는가’, ‘클로에는 왜 복통을 느끼는가’…. 의문만 점층적으로 쌓아가던 관객은 결국 예상치 못한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이는 지독히 파괴적이지만 독창적인 연출력에 감탄할 것이고, 어떤 이는 충격을 넘어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 <쌍둥이의 삶>을 원작으로 하지만, 영화는 오종만의 독특하고 섬세한 낙관이 새겨져 전혀 다른 빛깔을 낸다.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아름답고 정교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청소년 관람 불가.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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