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
요즘 길거리 버스나 영화관 광고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영화를 홍보하는데 배우보다 감독의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부산행> 천만 돌파의 힘은 컸다. 정작 <염력> 개봉을 즈음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연상호(40) 감독은 “그저 천운이 따랐을 뿐”이라며 <부산행> 이후 달라진 것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고 했다.
“와이프가 남편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기가 쉬워졌대요. 예전엔 ‘성인용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소개했는데, 야한 만화 만드는 줄 알아서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대요. 이젠 ‘<부산행> 감독’이란 한마디면 된다더군요. 하하하. 이게 첫 번째 달라진 점?” 두 번째는 뭐냐고 물었다. “<염력>같이 만들기 어려운 영화를 할 수 있게 된 거요.”
맞다. <염력>은 사실 굉장히 ‘모험적인’ 영화다. ‘염력’을 갖게 된 평범한 가장 석헌(류승룡)이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딸 루미(심은경)를 구하기 위해 그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다소 황당한 판타지적 외피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용산참사’가 떠오르는 철거 현장을 통해 ‘도시 근대화의 그림자’를 고발하는 사회성이 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제가 96학번인데, 당시 창작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화두 중 한 가지가 ‘도시개발’이었어요.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다큐 <상계동 올림픽>을 보고 자란 세대잖아요. 정치 이데올로기와 별 상관이 없으면서도 가장 합의가 안 되는 문제가 바로 ‘도시개발’이죠. 꼭 한번 다뤄보고 싶었어요.”
사실 연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염력>이 낯설지 않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 <창>(2012), <사이비>(2013), <서울역>(2016) 등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사회적 화두를 던졌다. “<염력>이 <부산행>에 견줘 훨씬 더 연상호다운 영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평가도 엇갈려요. 어떤 분은 ‘연상호답지 않게 결말이 따뜻하다’고 하시거든요. 흔히 감독의 ‘인장’이라 불리는 것이 생기는 게 두려워요. <돼지의 왕>이 칸 영화제에 초청된 뒤 자꾸 ‘나만의 어떤 특징’에 매몰되려 했어요. 문득 깨달았죠. 체계나 틀을 스스로 만드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종횡무진하는 그는 “짜파게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짜파게티 개발자는 처음에 짜장면 맛 라면을 만들겠단 포부를 가졌을 거예요. 근데 짜장면 맛이 아닌 거죠. 그럼 실패한 건가요? 아니죠. 맛이 있거든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맛인 짜파게티는 결국 많은 사랑을 받게 됐죠. 전 짜파게티가 좋아요. 그런 태도로 영화를 대하려 해요. 하하하.”
배우들은 그의 “몹쓸(몹시 쓸모 있는) 코믹 연기 지도”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원래 웃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염력>은 왜 꼭 코미디여야 했을까? “채플린 영화에서 보듯 사실 코미디는 원래 사회적 장르예요. 그래서 만들기 힘든데 한편으론 평가절하당하죠. <부산행> 성공 뒤 ‘가오 잡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그걸 버리려면 코미디를 해야겠다 생각했죠. 일종의 숙명처럼.”
감독은 <염력>을 통해 ‘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거대자본과 공권력의 힘, 그에 맞서 연대하는 소시민의 힘, 그리고 조력하는 초능력.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 했다. “결말은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란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니가 들으면 불쾌하겠지만, 난 별일 없이 산다, 사는 게 재밌고 매일이 신난다.’ 비록 패배했어도 행복하게 사는 개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 감독은 최근 그래픽 노블 <얼굴>도 펴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야기다. 갑자기 발견된 어머니의 유골에 얽힌 진실을 찾는 아들의 이야기다. 1970년대 산업화를 배경으로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는 시선 속에서 억압받고 잊힌 한 여인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여운이라 부르기엔 독하고 기괴한, 연상호 특유의 뒷맛을 음미했다”는 <송곳> 최규석 작가의 평가처럼 <얼굴>이야말로 진짜 연상호다운 작품이다. “다들 재밌다면서도 영화로 만들자고 하면 갸우뚱하는 작품이었어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세상에 내놓고 싶은 욕심이 커서 그래픽 노블의 형식을 택한 거죠. 그래서 이 작품을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아직 2쇄 찍는단 연락 안 오는 걸 보니, 역시 ‘나 홀로 소장용’인가요? 하하하.”
그는 차기작으로 ‘호러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냥 호러는 재미없단다. “호러는 다른 장르와 융합하기 좋아요. 전 멜로와 호러를 섞어보고 싶은데…. <염력>이 너무 망하면 못 만들겠죠? ‘적당히’ 잘돼야 할 텐데. 하하하.”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