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기묘한 10대 커플의 동상이몽 로맨스

등록 2018-02-02 19:37수정 2018-02-02 19:42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 믿는 소년이 있다. 17살 제임스(알렉스 로더)는 8살 때부터 ‘늘 아버지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고 9살 때 자신의 손을 자해했으며, 15살 때 이웃집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였다. 동물 살해 뒤 이제 ‘더 큰 것’을 죽여보기로 결심한 제임스 앞에 전학생 앨리사(제시카 바든)가 나타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제임스와 달리 앨리사는 늘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일어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소녀다. 첫눈에 서로가 남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알아챈 둘은 ‘재수 없는 마을’을 떠나 충동적인 탈주를 감행한다.

지난해 영국 <채널4>에서 처음 방영된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살인충동을 지닌 소년과 파괴충동을 지닌 소녀의 만남을 다룬 드라마다. 찰스 포스먼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각색한 이 작품은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 직후 평단과 대중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극본, 연출, 연기 등 소위 3박자가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력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다. 초반부는 얼핏 전형적으로 보이는 괴짜 아웃사이더의 틴에이지 로맨스처럼 출발한다. 제임스와 앨리사는 성향은 달라도 가정과 사회에서 겉도는 외로운 십대다. 앨리사를 첫 살인 대상으로 점찍고도 시종일관 휘둘리는 제임스와 그를 마음대로 이용하면서도 애정을 갈구하는 앨리사의 동상이몽 로맨스는 영국 청소년드라마 특유의 음울함과 낭만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는 건 본격적인 로드무비가 전개되면서부터다. 유쾌한 가출로 시작한 여행은 뜻밖의 살인사건을 거치며 아서 펜의 <보니 앤 클라이드>와 테런스 맬릭의 <황무지>에 가까운 범죄탈주극으로 변화한다. 도주 행각이 철저히 자기방어적이며 기성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리들리 스콧의 <델마와 루이스>와도 닮았다. 하지만 앨리사와 제임스가 여정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풍경은 결국 십대들의 이야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애틋한 비애와 성장의 진리다. 17살 제임스의 첫 내레이션과 결말에서 막 18살이 된 그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비교해보면 이 여정이 둘에게 어떤 경험으로 자리잡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감동은 그들과 동행한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되돌아와 눈물을 참기가 어렵다.

십대들의 황량한 내면을 시각화한 영상미와 여러 장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낯선 공간에 단둘만 남겨놓은 듯한 미니멀리즘 스타일은 고독과 단절을 표현하면서도 로맨틱한 정서를 더하는 동시에 이들의 여정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기성사회의 위협을 강조한다. 3회의 무단침입 댄스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주인이 부재하는 집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눈을 감은 채 함께 춤을 추는 둘의 모습과 수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집,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듯한 집주인의 사진 때문에 중단된 섹스는 낭만적인 로맨스와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며 복합적 정서를 연출하는 작품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작 한 달이 지났지만 올해 최고의 드라마 중 한 편으로 놓아도 무방할 듯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