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팬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가장 신선하면서도 가장 고전적인 마블 영화.’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블랙 팬서>(14일 개봉)는 이런 ‘형용모순’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최초의 흑인 히어로물인데다 아프리카 문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마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 할 법하다. 반면 그간 마블이 히어로 탄생 과정을 그려내던 서사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과연 이 형용모순은 <블랙 팬서>의 흥행에 독이 될까, 약이 될까?
<블랙 팬서>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처음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블랙 팬서’의 솔로 무비다. 우주 최강 금속 비브라늄의 유일한 생산국 와칸다의 새로운 왕이 된 티찰라(채드윅 보즈먼). 왕국을 수호할 막중한 책임을 안은 티찰라 앞에 비브라늄을 노리는 무기상 율리시스 클로(앤디 서키스)가 나타난다. 약탈한 비브라늄을 팔아넘기려는 클로를 쫓아 부산으로 간 티찰라 일행은 시아이에이(CIA) 대테러센터 요원 에버렛 로스(마틴 프리먼)와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클로보다 더 큰 위협인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가 티찰라의 왕권에 도전하면서 와칸다의 운명을 뒤흔든다.
영화 <블랙 팬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가장 두드러지는 관람 포인트는 흑인 감독 라이언 쿠글러가 막강 흑인 배우 군단을 이끌고 마블에 새롭게 입혀낸 ‘블랙의 향연’이다. 아프리카 문화(흑인 문화)가 가득 배어 나오는 명장면은 낯설면서도 매력적이다. 티찰라가 왕위에 도전하는 경쟁자들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 블랙 팬서로 재탄생하기 위해 하트 허브를 마시고 선조들과 영적으로 교감하는 장면 등이 특히 흥미롭다. 경쾌한 비트의 힙합 음악과 함께 중간중간 삽입되는 아프리카 특유의 추임새도 흥을 돋운다.
시아이에이 요원 로스와 악당 클로를 제외하고 모두가 흑인인 배우들은 압도적 연기력을 앞세워 몰입을 끌어낸다. 특히 여성 캐릭터의 선전이 반갑다. 비브라늄 슈트를 개발할 만큼 유능한 기술을 지닌 티찰라의 동생 슈리(러티샤 라이트), 여성 호위대 ‘도라 밀라제’의 대표이자 강력한 여전사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티찰라의 연인이면서도 왕비 자리보단 주체성 지키기에 집중하는 나키아(루피타 뇽오) 등은 강렬한 외모만큼이나 빛나는 캐릭터다.
영화 <블랙 팬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속 와칸다는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최첨단 기술을 영위하면서도 이를 비밀에 부치기 위해 아프리카 최고 빈민국의 외피를 쓰고 있는 ‘독특한 국가’다. 갈등구조 역시 외부가 아닌 왕좌와 왕국의 향방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다. 한편에선 ‘마블판 햄릿’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알고 보면 <블랙 팬서>는 그간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 마블 솔로 무비의 고전적 서사 라인을 그대로 따른다. 갈등과 고난을 통해 자아를 찾고 결국 세계 평화를 수호할 임무를 깨닫는 과정은 수차례 반복돼 새로울 것이 없다.
티찰라가 숙적 킬몽거와 대결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조금은 싱겁다. 솔로 무비로서의 완결성은 가지지만, 마블 히어로의 총체이자 궁극의 모델인 <인피니티 워>로 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역할도 약하다. 마블 최초의 블랙 히어로 탄생을 자축할 좀 더 거창한 ‘무엇’은 무리한 기대였을까.
영화 <블랙 팬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사실 <블랙 팬서>는 마블 영화 중 가장 정치성이 강한 영화다. 영화 속 갈등은 ‘평화 유지’냐 ‘무장 투쟁’이냐에서 비롯된다. 흑인 해방을 둘러싼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의 ‘방법론적 차이’가 연상되는 지점이다. 인종 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미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이런 맥락에 익숙지 않은 한국 팬에겐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블랙 팬서>의 주요 배경인 부산의 모습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자갈치시장, 광안리 등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싱 장면 등 20분에 달하는 분량을 부산에 할애했다. ‘나키아가 이미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어 친숙하다’는 설정으로 배경의 개연성을 부여한 점도 신선하다. “아줌마”, “고마워요”, “여기요” 등 ‘짧은 한국말 팬 서비스’도 어색하지만 반갑다.
아, 쿠키 영상은 이번에도 두 개다. 소울 스톤의 행방에 대한 떡밥을 기대했다면 접길. 그래도 (모두가 짐작했던) ‘그리운 얼굴’의 귀환이 기다린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