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든 슬럼버>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강동원과 친구로 등장하는 윤계상.
일본판 <골든 슬럼버> 주인공 역의 사카이 마사토(오른쪽)는 택배기사로 등장한다.
이사카 고타로의 일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골든 슬럼버>(감독 노동석)의 한국판이 14일 개봉한다. 일본판은 앞서 2010년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개봉한 바 있다.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판과 한국판 영화는 골조는 같지만 인테리어가 다른 집처럼 서로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관객으로서는 ‘비교하는 재미’를 만끽할 기회다.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사회비판의 메시지까지 담은 영화 <골든 슬럼버>의 일본판과 한국판을 비교해 본다.
■ 줄거리 소소한 차이를 제외하면 일본판과 한국판의 플롯은 거의 비슷하다. 위험에 처한 아이돌 가수를 구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택배 기사 건우(일본판은 아오야기)가 하루아침에 테러범으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건우(강동원)는 몇 년 만에 연락이 온 고교 동창(일본판은 대학 동창) 무열(윤계상)을 만난다. “보험을 들어달라”(일본판은 “낚시를 함께 가자”)는 연락인 줄로만 알았지만, 무열은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건우의 눈앞에서 바로 폭탄이 터진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유력 차기 대선후보(일본판은 신임 총리)가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것. 하루아침에 테러범으로 몰린 건우는 그를 쫓는 경찰과 국가정보원을 피해 도망, 또 도망친다.
한국판 <골든 슬럼버>는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차량 폭발이 발생하는 등 일본판보다 액션 스케일이 크다.
■ 조력자 우선 일본판과 한국판의 첫번째 차이는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다. 일본판에서는 대학 동창 외에 많은 사람이 아오야기를 돕는다. 전국에 수배가 내려진 의문의 연쇄살인마도, 병원에서 만난 묘한 노인도, 대학 때 알바를 했던 폭죽공장 사장도, 심지어 어설픈 경찰까지 뚜렷한 이유 없이 그를 돕는다. 반면 한국판에서는 고교 동창들 외에 조력자는 단 한 사람 ‘국정원 전직 요원’ 민씨(김의성)다. 민씨는 처음엔 무열과의 의리를 지키려 건우를 구하지만, 선량하다 못해 바보 같은 건우의 참모습을 알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그를 돕는다.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고 해결하는 것을 돕는 데 전직 요원만큼 적당한 인물은 없다.
일본판이 아오야기를 돕는 동창으로 한때 연인이었던 히구치만을 주요하게 내세운 것에 견줘 한국판은 선영(한효주), 금철(김성균), 동규(김대명)에게 역할을 고루 분배한다. 그리고 일본판보다 ‘우정’이라는 키워드에 더 집중한다. 이들 3인방은 인간에 대한 건우의 믿음을 흔들리게도 했다가 되찾게도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 볼거리 한국판은 일본판보다 스릴러로서의 장치가 훨씬 더 많다. 두 버전 모두 ‘음모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국판은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의 부패를 음모의 주요 고리로 더 분명히 각인시킨다. 이 때문에 실제로 논란이 되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영화와 맞물리며 현실감과 긴장감을 더한다. 극 중 민씨가 국정원 황 국장(유재명)에게 보낸 “특수활동비도 알고 있다”는 메시지 등은 현실을 등에 업으려는 깨알 설정이다.
액션신과 추격신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일본판에 견줘 한국판은 광화문과 주차장 폭파 장면, 100t의 물을 쏟아부은 배수로 도주 장면 등 스케일을 훨씬 더 키웠다. 수백만대의 시시티브이를 동원한 국정원의 추격을 피해 광화문, 신촌, 강남의 골목골목을 뛰고 달리는 강동원의 도주 장면도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민씨 역을 맡은 김의성이 “두달 정도 액션스쿨에 다녔다. 제작진은 <007> 시리즈의 대니얼 크레이그처럼 멋있기를 원했지만,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너스레를 떤 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액션신도 나름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국판 <골든 슬럼버>는 주인공 강동원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일본판보다 우정을 더 강조했다.
■ 음악 <골든 슬럼버>는 비틀스의 명곡 제목으로, ‘황금빛 단잠’, 즉 가장 평온한 시절이나 순간을 의미한다. 한·일 두 버전 모두 영화의 메인 테마곡으로 이 음악을 사용한다. 일본판에서는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이 “원스 데어 워즈 어 웨이 투 겟 백 홈워드”(예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이 있었지)라는 소절을 부른다. 한국판에선 강동원이 이 소절을 부르는 장면이 없어 아쉽다. 두 버전 모두 이 노래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는 중요한 매개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감성으로 작용한다.
영화에 음악이 녹아드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한국판이다. 일본판이 아오야기와 친구들이 대학 시절 뜬금없는 ‘청소년식문화연구회’라는 동아리 회원으로 그려진 것에 견줘 한국판은 ‘고교밴드’ 멤버로 설정된다. 밴드의 재결성을 계속해서 꿈꿔온 건우가 새로 오픈하려는 가게의 이름이 바로 ‘골든 슬럼버’다. 한국판에서는 ‘골든 슬럼버’ 외에도 신해철의 ‘그대에게’, ‘힘을 내’ 등이 삽입곡으로 쓰였다.
■ 결말 일본판과 한국판의 결정적 차이는 ‘결말’이다. 일본판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단 “아무리 구차한 모습이라도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면서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결론에 다다르는 것과 달리 한국판은 생존과 진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한다. 물론 치밀하고 꼼꼼한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본다면 한국판 해피엔딩을 더 맘에 들어 할 관객이 많겠다. 게다가 무려 ‘강동원’이 아닌가. ‘음모론적 서사 속 평범한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견줘 지나치게 잘생긴 강동원이지만, ‘공공재’에 해당하는 그가 생존도 하고 우정도 지키는 행복을 되찾는 데 딴지를 걸 사람은 아마 없을 터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