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 데카당스’
아이(니카이도 미호)는 도쿄의 출장 전문 에스엠(가학피학적 성관계) 클럽에서 일하는 이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를 찾는 고객들은 땅바닥을 기게 하면서 굴욕감을 주며 흥분하는 야쿠자 두목이거나, 시간(屍奸)에 대한 욕망을 대리만족하려는 졸부이거나 자신의 목을 졸라달라고 애원하는 젊은 남자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직장생활을 하듯 아무런 감정의 흔들림없이 그들을 상대하는 아이지만 얼마 전 헤어진 유부남 스도에 그리움은 아이의 마음을 옥죈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자신의 소설 <토파즈>를 영화로 만든 <도쿄 데카당스>는 주인공 아이가 찾아가는 고객들을 한명씩 보여주는 전반과 스도의 집을 찾아가는 후반으로 나뉘어진다. 엽기적으로 보일 만큼 불편하고 기괴한 욕망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나열하는 영화의 전반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거품경제로 번드르르하게 가꿔진 겉모습 뒤로 일그러지고 곪아가는 일본의 현대사회다. 아이가 크고 화려하며 깨끗한 호텔의 로비와 복도를 지나 들어간 방은 어두운 동굴 같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방 안에 들어온 남자들이 그 꺼풀을 벗고 나면 밖에서는 차마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아이에게 요구한다. 그 판타지를 지폐와 교환한 다음 남자들은 다시 단정한 차림으로 정돈된 세계로 돌아간다. 그 세계 안에서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지만 카메라가 잡는 도쿄의 전경은 텅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교적 이해가 쉬운 전반부에 비해 아이가 전 애인 스도를 찾아가는 후반부는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다. 도시 외곽의 부유한 동네로 간 아이는 점점 넋이 나가고, 우연히 만난 스도의 부인은 정신이상자로 한때 유명 가수였던 자신의 세계 안에 유폐돼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세계 밖에서 순연한 사랑의 존재를 기대하던 아이의 믿음은 스도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여지 없이 박살난다. 그러나 상실과 이별의 여행을 떠나는 아이를 잡는 카메라의 시선에는 아무런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맨 마지막에 냉정을 되찾고 다시 돈을 벌러 나서는 아이에게서 특별한 감정이나 심리변화가 잡히지 않는다. 92년 작품으로 무라카미 류의 네번째 연출작이지만 노골적인 에스엠의 표현 외에 소설과 다른 영화적 재미를 찾기는 힘들다. 한국에서 무려 다섯번의 수입추천 불허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뒤 6분을 삭제한 다음 18살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2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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