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월의 일기’
범인을 끝까지 감춘 채 공포감을 누적시키면서 절정 국면을 끄는 스릴러의 전통 양식이나 살인 행각이 ‘어떻게’, ‘얼마나’ 잔인하게 벌어지는지에 대한 영화의 관심은 그리 커보이질 않는다. 범인은 30여분만(전체 103분)에 일찌감치 드러난다.
영화는 다부지게 ‘왜’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살인의 이유가 공포를 자아내는 핵인 탓인데, 진단은커녕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은 사회 병리 현상인 ‘학원 왕따’를 다루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액션 영화를 장기로 삼아온 신은경과 가수 에릭이 ‘에릭’을 떼고 문정혁으로 데뷔,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먼저 눈길을 끌었던 <6월의 일기>가 1일 개봉한다. 스릴러의 장르적 관습을 꽤나 버리고 남은 자리 상당을, 일말의 면역력도 키우지 못한 사회적 소재를 과감히 선택, 세공한 서사로 메우는 건 값져 보인다.
질척비척거리며 쫓기듯 육교로 올라선 중학생이 결국 칼에 맞아 숨진다. 이윽고 같은 반 또 다른 모범생은 자살한 채 발견된다. 휴일과 근무일을 엄격히 구분하며 “안정된 공무원”이 되고자 경찰을 선택한 신세대 형사 동욱(문정혁)에겐 별개의 사건이지만, 은근 섬세한 왈가닥 여형사 자영(신은경)에겐 동일한 지능 범죄다. 아닌게 아니라 이들 모두의 뱃속에서 발견된 캡슐 안엔 종이 쪽지가 담겨있는데, 바로 살인자가 살인을 예고한 일기 쪽지다. 곧 일기는 이들 학생들에게 원한을 가진 이가 오래 전 작성한 살생부였던 셈.
필적으로 용의자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한 달 전 뺑소니 사고로 숨진 같은 반 진모. 미궁의 골이 깊어지는 듯하지만, 형사의 눈을 좇아 관객들도 이내 진모의 엄마이자 한때 자영과 절친했던 고교 동창 윤희(김윤진)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진모를 왕따시키는 교실의 풍경은 지극히 작위적이지만 충분히 처절하다. 살인은 이미 그 곳에서 시작됐다. 영화는 나의 자식, 조카, 동생이 그 곳에 있어선 안 된다는 원형적 공포감을 적절히 활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이들의 순서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자영과 윤희가 학창 시절 경험했던 ‘무관심’의 원죄를 자영과 단둘이 사는 조카 준하와 진모의 관계에 오버랩시키는 등의 시나리오 상 허점이나 억지를 상쇄하진 못하고, 영화가 겉으로 내세운 ‘형사 스릴러’와는 달리 실제론 ‘코믹 액션 스릴러’를 일관성 없이 입맛대로 좇은 데서 관객의 호흡은 적잖이 끊기고 만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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