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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긴박감 넘치는 두뇌 대결 ‘테크노 스릴러’

등록 2005-12-08 17:26수정 2005-12-08 17:51

핵폭발의 후폭풍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었던 <썸 오브 올 피어스>의 한 장면 ⓒ 파라마운트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핵폭발의 후폭풍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었던 <썸 오브 올 피어스>의 한 장면 ⓒ 파라마운트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적과 영화 장르에 걸쳐 '테크노 스릴러(Techno Thriller)'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된다. 어감은 확실히 멋있는 용어지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더라도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용어의 뜻을 잘 모르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테크노 스릴러'는 한편으로 직역에 의해 '전문가 소설'이라고도 한다. 소설가들이 소설 속에서 소재와 배경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시작하면서부터 꽃피우게 된 '테크노 스릴러'는 미국의 소설가 톰 클랜시와 존 그리샴 그리고 로빈 쿡, 마이클 클라이튼, 스티븐 킹의 출현에 의해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한다.

CIA 출신으로 알려진 톰 클랜시는 군사와 첩보 분야에서, 변호사 출신인 존 그리샴은 법정 소설로, 의사 출신인 로빈 쿡과 마이클 클라이튼은 의학 분야에서 '전문가다운' 지식 수준을 자랑하며, 각각의 자신의 분야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역량을 발휘한다. 즉, '테크노 스릴러'란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 혹은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가진 작가들이 그 특정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릴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테크노 스릴러'의 장르적 특징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그 전문 분야와 관련된 가상의 사건을 만든 뒤, 주인공과 상대 악역이 벌이는 사냥 게임에 독자나 관객을 끌어들여, 사냥 게임 속에서 유발되는 두뇌 대결과 그 긴박한 스릴을 즐기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톰 클랜시의 경우 시효가 지난 CIA의 3급 정보가 인용되는 경우도 있어, 그의 소설이 출시되면 CIA나 NSA(미 국가보안국) 등의 첩보요원들이 먼저 애독한다는 농담같은 이야기도 있다.


과거에 비해 수준이 향상된 독자나 관객이 소설가든, 영화감독이든, '전문적인' 작가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이런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이 할리우드에서도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소설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들을 음미하며, 우리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밀리터리 스릴러(Military Thriller)의 창시자, 톰 클랜시

현재 곳곳의 PC방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는 온라인 슈팅 게임 <레인보우 식스>의 원작자로도 알려진 톰 클랜시는 그의 소설이 자주 영화화되고, 게임화되면서 미식축구 구단을 인수해 구단주로도 활동했을 정도로 소설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았다.

그런 그의 소설 중 최초로 영화화됐던 소설은 <붉은 10월>이었다.<붉은 10월>은 미국으로 망명하는 소련 잠수함의 함장과 부함장, 그리고 톰 클랜시의 소설 주인공인 '잭 라이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소설이다. 숀 코네리는 잠수함 함장을 연기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머리를 심었다는 후문이 있다. 훗날 해리슨 포드로 변경되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잭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해리슨 포드부터 기억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초의 '잭 라이언'은 알렉 볼드윈이었다.

돌아 보면, '잭 라이언'은 '제임스 본드'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형 첩보요원으로 볼 수도 있다.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제임스 본드'와는 달리 '잭 라이언'은 가족간의 사랑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미국형 인물로서, '잭 라이언'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임스 본드'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제임스 본드' 못지 않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물론 두 캐릭터는 해군 출신(잭 라이언은 해병대 출신)으로서, 훗날 자신의 조국의 첩보기관에 투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통 영화에서는 CIA의 분석관 겸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등장하는 잭 라이언이지만, 원작에서의 그의 직함은 CIA의 부국장이다. 톰 클랜시의 소설 중 가장 흥미로운 소설은 바로 < OP센터 >인데, 이 소설은 바로 한국을 무대로 쓰여진 소설이다. '안녕하세요' 등의 기본적인 한국어까지 등장해 화제가 된 이 소설은 소설 자체로 봤을 때는 톰 클랜시의 소설들 가운데 비교적 평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 놀라운 스릴만큼은 여전했던 묘미가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등장하는 한국인 대부분의 성이 김씨였다는 것.

< OP센터 >는 지금까지 영화화된 그의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TV영화로만 제작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끔씩 시효가 지난 정보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톰 클랜시답게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우리가 보았을 때는 놀라울 수 밖에 없는 CIA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특히 <패트리어트 게임>의 경우, 이 영화가 제작된 시기는 1992년이지만, 영화 속에서 위성을 통해 테러단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보분석실 관련 장면 등을 봤을 때, 미 첩보기관의 기술 수준을 알 수 있는 간접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참고로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통해 묘사된 미국의 NSA는 현재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최신식 컴퓨터 관련 프로그램을 이미 20여 년 전부터 운용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톰 클랜시 소설 중 가장 최근에 영화화된 <썸 오브 올 피어스>는 이례적으로 젊은 '잭 라이언'을 등장시키며, 주인공도 해리슨 포드에서 벤 에플렉으로 변경해 화제가 되었다. 실감나는 핵폭발 장면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9.11 테러 이후 테러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된 영화로 평가된다.

변호사 출신의 탁월한 법정소설 전문가, 존 그리샴


<런어웨이>의 한 장면.  극중 진 핵크만은 ‘배심원 컨설턴트‘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 20세기 폭스 코리아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런어웨이>의 한 장면. 극중 진 핵크만은 ‘배심원 컨설턴트‘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 20세기 폭스 코리아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최초로 영화화된 소설은 톰 크루즈 주연의 1988년작인 <야망의 함정>이지만,대중적으로 가장 유행했던 영화가 됐던 그의 원작 소설은 바로 <의뢰인>이다. 그의 소설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배심원 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의 법정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특징인데, 존 그리샴이 변호사답게 그린, 다양한 계기로 일어나는 각종 소송으로부터 비롯되는 매력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특히 그의 소설 <결정적 배심원>을 원작으로 영화화된 <런어웨이>는 '배심원 컨설턴트'라는 이색적인 직업이 등장하는 것이 재미있다.

존 그리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특징은 분위기가 대단히 다양하다는 것. <야망의 함정>이나 <의뢰인>이 긴박한 분위기가 특징이었다면, <펠리칸 브리프>는 묵직하며, <레인메이커>는 애틋하면서도 곳곳에서 유머가 넘친다. <타임 투 킬>과 <런어웨이>는 긴박한 분위기와 절실함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이 또다른 특징. 그리고 오는 12월 9일에 개봉하는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존 그리샴이 최초로 도전하는 순수 문학 장르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도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단돈 1달러에 변호사 선임 계약을 하고 소년을 돕는 <의뢰인>의 시고니 위버나 <런어웨이>의 변호사인 더스틴 호프만, 그리고 <야망의 함정>의 톰 크루즈와 <레인메이커>의 맷 데이먼은 모두 다른 환경에서 의뢰인을 돕는 제각기 다른 개성이 돋보이는 캐릭터지만, 모두 미국인 특유의 가족적인 사랑을 잊지 않는 인물들이라는 것. 긴장감 넘치는 스릴과 미국인이 좋아할 전형적인 주제가 잘 조화된 그의 소설은 영화화가 이루어져도 그 조화로부터 시작되는 매력은 대단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들은 각각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알트만, 시드니 폴락 등의 명장들이 연출을 맡았고, 조엘 슈마허와 게리 플레더는 두 작품 이상을 연출했던 경험이 있다.

마이클 클라이튼, 나는 영화 연출도 내 손으로 한다.

마이클 클라이튼 원작의 대표적 영화로 통하는  ⓒ MCA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마이클 클라이튼 원작의 대표적 영화로 통하는 ⓒ MCA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그는 의사 출신이지만, 같은 직업 출신인 로빈 쿡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로빈 쿡의 소설은 대부분 TV영화로만 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극장용 영화로 제작된 영화는 1977년작인 <코마>밖에 없지만, 마이클 클라이튼은 출간하는 즉시, 영화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영화가 먼저 만들어지는 일도 있다.

정통 의학 소설에 집중하는 로빈 쿡과는 달리 마이클 클라이튼은 유전공학과 정신의학, 정통 스릴러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소설이 완성된다. 그 중에서 <미져리>와 <쥬라기 공원>은 제목만 들어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영화이자 소설로 통한다. 워낙에 많은 영화화가 이루어졌던만큼,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완성된 영화라 할지라도 간혹 혹평에 시달리는 영화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대중적인 재미를 확실하게 책임졌거나 의미있는 영화들이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간혹 제작 등의 형태로만 영화 작업에 참여했던 존 그리샴이나 영화화에 간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 톰 클랜시와는 달리 마이클 클라이튼은 제작은 물론이고, 감독으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숀 코네리의 팬이라면 대부분이 감상했던 1979년작 <대열차 강도>는 물론이고, 존 맥티어난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했던 <13번째 전사>, 앞서 언급했듯이 유일하게 극장용 영화로 완성된 로빈 쿡 원작의 <코마>의 연출은 모두 그가 맡은 것이다.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 중에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독자들은 소설만으로도 그의 팬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영화 감독으로서의 그의 재능도 평범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도 대단히 정렬적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활동은 할리우드에서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좋은 예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테크노 스릴러는? 우리나라에서도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의 움직임은 과거와는 달리 소설과 영화, 양쪽 분야 모두 예전보다는 많이 활발해졌다. 먼저 <동해>, <데프콘>, <남북> 등의 소설을 통해 한국형 밀리터리 소설의 선구자가 된 김경진의 전쟁 소설은 대단한 붐을 일으키며,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에 발맞추어 잠수함 영화 <유령>이 개봉됐던 적도 있다.

하지만 김경진의 소설은 그 방대한 양과 스케일을 감안했을 때, 아직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영화화되기는 힘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쟁 영화의 기초는 약 15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제 막 터전을 닦았을 뿐이다. 물론 '테크노 스릴러'라고 반드시 밀리터리 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최근의 한국 영화는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보이고 있지만, 아쉽게도 '장르화'가 되는 발전 단계는 거치지 못하고 있다. 특정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 수준의 작가들이 영화작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드문 것도 그 이유 중 한 가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소재를 단순히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각에 갇힌 일부 영화들에게서도 문제가 엿보인다. 소재를 궁극적으로 살리면서 발전시키는 감각을 가진 영화인들이 아쉽게도 많지 않다는 점에서 시작되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영화 관객들은 할리우드는 물론이고, 유럽이나 일본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외국의 영화도 다수 감상하며, 영화를 보는 감각을 키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관객들도 전문적인 수준의 각본이 돋보이는 우리나라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으며, 특정 마니아들의 구미도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미국의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이 할리우드에서 차지하고 있는 제법 큰 비중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소재의 장르화와 다양한 장르의 공존, 이것이야말로 우리 영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한국 영화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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