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영화제에선 가상현실 영화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 영화의전당의 ‘VR 시네마 IN BIFF’에서 관객들이 가상현실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제공
“으아악~!!!”
좀비 떼의 습격을 받은 부산행 케이티엑스(KTX) 열차 안에 사람들의 사체가 마구 널브러져 있다. 발끝에 시체를 피하느라, 열차 밖으로 빠져나갈 길을 찾느라 정신없이 시선을 돌리는 찰라, 갑자기 몸을 기억자로 니은자로 연이어 꺾어대는 좀비가 눈앞에 그 창백하고 섬뜩한 얼굴을 훅~ 들이민다. 또다시 짧은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으악!!” 나도 모르게 두 손에 쥘 무기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어디 야구방망이나 하다못해 우산이라도 하나 없을까? 아차~!! 이건 현실이 아니지? 눈을 뜨면 꿈처럼 깨어날까 눈도 감았다 떠본다. 그 순간 ‘끝’을 알리는 표시가 뜬다. 3분30초. 무섭긴 했지만, 시간이 짧아 아쉽다.
이제 영화를 ‘관람이 아닌 체험’하는 시대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각종 브이알(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영화가 소개돼 관객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영화의전당 1층 비프힐에 마련된 체험공간 ‘VR 시네마 IN BIFF’에서는 40편의 브이알 영화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화제 부대행사로 벡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필름마켓 행사장 안에는 투자배급사 뉴(NEW)의 글로벌 판권유통 사업부 ‘콘텐츠판다’가 싱가포르 특수효과영상 제작사 비비드쓰리와 함께 제작한 <부산행 VR> 체험존도 마련했다. 한국영화가 브이알과 만나 크로스미디어 콘텐츠로 생산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공개된 <부산행 VR>은 데모 버전이다. 실제 올해 말 시판될 VR은 좀비가 나타난 부산역 내부인 ZONE 1, 좀비 습격을 받게 되는 역과 열차 내부인 ZONE 2,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좀비와 대결을 펼치는 ZONE 3 등으로 기획됐다. 부산 아시안필름마켓(6~9일)에서는 부스의 공간적 한계 등으로 인해 ZONE 2의 데모 버전만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콘텐츠판다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해외에서 먼저 출시돼 영화관이나 체험공간 등에 판매될 시판 버전은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몸에 각종 장비를 착용하고 격투신까지 체험할 수 있다”며 “게임과 영화의 크로스오버 장르를 통해 영화의 지식재산권(IP)의 가치를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규모가 커진 ‘VR 시네마 IN BIFF’도 관객들에겐 인기 체험공간이다. 10분 남짓의 단편영화 4편을 묶어 40분 안팎의 시간 동안 VR 영화를 체험할 수 있는 ‘VR무비관’과 5~27분 정도의 영상을 체험하는 ‘VR체험관’, 관객이 상영작을 자유롭게 선택해 관람할 수 있는 ‘VR 무비 라이브관’ 등 3개 관이 12일까지 운영된다. 특히 VR 체험관은 선착순이라 최대 2시간까지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VR무비관’은 멀티플렉스와 달리 음향시설이 미비한 편이라 관람을 위해서는 헤드셋에 이어 이어셋까지 착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360도 회전의자에 앉아 고개 대신 의자를 움직이며 관람할 수 있는 점은 장점이다. 공포영화 <마신자>, <마리앙투아네트>, <아이들의 놀이>, <방>까지 묶음3(러닝타임 40분)을 체험해봤다. VR 영화의 효과가 가장 극대화되는 장르는 공포물이었다. 360도 어디에서 무서운 존재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긴장감이 극에 달했고, 거리감 없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유혈낭자한 장면에 소름이 끼쳤다. 귀신이 시체를 썰고, 욕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 등에서는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옆자리 외국인은 연신 ‘오마이 갓’을 외쳤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함께 영화제를 찾은 이주영(21)씨는 “음향시설이 더 짱짱한 극장에서 보면 기절할 만큼 무서울 것 같다. 뭔가 영화의 세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VR체험관’에서는 인터렉티브 체험이 가능한 작품의 인기가 많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VR 최고 경험상’을 수상한 채수응 감독의 <버디 VR>체험에 나섰다. 헤드셋 외에 스틱형 컨트롤러를 양손에 쥐고 괴팍한 소녀를 피해 생쥐 친구를 돕는 모험물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스토리의 전개가 일부 달라진다는 점이다. 체험 도중 생쥐가 내민 종이에 이름을 써 친구가 되는 초기 장면에서 컨트롤러가 갑자기 꺼지는 오류가 났는데, 생쥐는 슬픈 표정으로 뒤돌아 가고 체험은 끝이 났다. 다음번 체험에서는 이름을 썼고 생쥐와 친구가 돼 드럼도 치고 풍선도 던지는 등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7일 벡스코에서 열린 브이알 컨퍼런스에 참석한 채수응 감독은 “미셸 레일핵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영화가 시간을 조작할 수 있게 했다면, VR은 공간을 조작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라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단순한 체험을 넘어 교감과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효과에 방점을 찍은 점이 <버디 VR>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VR 최고 경험상’을 수상한 채수응 감독의 <버디 VR>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유수의 영화제들은 앞다퉈 VR 영화를 발굴하고 소개하고 있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가 VR 부문을 신설했고, 선댄스, 테살로니키, 시체스 등에서도 VR영화를 상영한다. 국내에서는 부산 외에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VR 영화를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이달 안으로 잠실월드타워점에 VR전문상영관도 개관할 예정이다. 부산영화제와 함께 ‘VR 시네마 IN BIFF’를 공동주관한 바른손 관계자는 “<신과함께>를 만든 덱스터와 뉴(NEW) 등 영화계에서도 VR에 적극적인 편”이라며 “헤드기어 등 장비의 개발과 발전이 수반된다면 몇 년 안에 VR영화 쪽에서도 킬링 콘텐츠 생산이 가시화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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