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됐던 <고스트바둑왕>, 홋타 유미&오바타 다케시 저, 전 23권 ⓒ KBS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출간, 그리고 그보다 더 후대에 있었던 낭만주의의 유행은 곧 세련된 악의 등장을 불러왔다. 그리고 악이 이렇듯 세련된 멋쟁이로 변화하면서 같은 움직임을 보이게 된 캐릭터는 바로 '귀신', 내지는 '영혼'이다. 원한이나 복수의 열망 속에서 실력을 행사하며 위험한 존재로 인식됐던 '영혼'은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한 변화의 움직임을 보인다.주인공에게 더없이 친숙한 캐릭터로, 혹은 악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대단히 매력적인 유혹을 통해 주인공을 악의 세계로 인도하는 캐릭터로, '영혼'은 현대에 접어들면서 '전설의 고향'을 떠나 조금 더 넓은 가치관을 갖게 된다. 영화 <사랑과 영혼>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호러 영화의 경향을 뒤집고, '영혼'도 애틋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영화로 기억된다. 그리고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와 그 영화를 조금 더 쉽게 리메이크한 <시티 오브 엔젤> 등의 영화가 '영혼'의 사랑과 세상에 대한 성찰에 중점을 두었다면, 만화는 '영혼'이 자신을 인식한 인간에게 변화의 시발점을 제공한다는 모티브를 갖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심지어는 특정한 사물을 바탕으로 '영혼'을 만나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진 만화들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 물건'을 집게 되어 '영혼'을 만나게 된 그들, 그들이 맞게 된 변화는 어떤 변화였는지도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스트 바둑왕> '영혼'을 통해 접하게 된 진지한 바둑의 세계
'바둑의 명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귀여운 매력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영혼'을 다루고 있는 만화다. 할아버지 댁에서 우연히 오래된 바둑판을 접하게 된 소년 '신도우 히카루'는 그 바둑판을 계기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온 헤이안 시대의 바둑의 명인 '사이'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물론 '사이'는 오직 '히카루'의 눈에만 보인다.'사이'와의 만남을 계기로 '히카루'는 그동안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바둑의 길을 걷게 된다. 바둑의 세계도 무림의 세계와 비슷하다. 수많은 고수들이 히카루를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뿐인 정상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그 두뇌싸움에는 본격적인 바둑의 길을 걸으려는 어린 기사들 간의 기싸움은 물론이고, 이미 톱의 반열에 선 노장들만의 암투, 그리고 '장강의 뒷물결'로 볼 수 있는 어린 기사들에게 절대 호락호락하게 정상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노장과 신예의 대결이 뜨겁게 살아숨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묵직한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진 작가의 깔끔한 이야기전개가 돋보인다.그 분위기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은 영혼인 '사이'다. 분명히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헷갈릴 정도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인 '사이'는 신비스러움과 귀여움을 한몸에 간직한 독특한 분위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고스트 바둑왕>은 비록 바둑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오히려 바둑의 기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틈틈히 게재하고 있다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재미. 이미 대단한 인기를 꾸준히 누리고 있는 만화지만, 특별한 매력을 가진 영혼 '사이'를 다시 한번 주목하면서 바라본다면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영혼의 안내자> 이승을 맴도는 '영혼'의 다양한 사연을 이야기하다
메이지 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 '히지리'는 '그 물건'을 집기 전만 해도 '붉은 머리(혼혈아)'라는 이유로 동네에서 온갖 천대는 다 받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목도리'가 그에게는 운명적인 물건이 된다. 목도리에서 나온 영혼은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판관이자, 저승의 명관이었던 '다카무라 공'. '히지리'는 우연히 발견한 '목도리'를 계기로 '다카무라'의 후임 명관이 되어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을 망계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필이면 그가 지내고 있는 절도 '다카무라'를 모시는 절이었으니, 어쩌면 이것은 감춰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영혼의 안내자>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간절한 사연들을 다양하게 다루면서 벚꽃이 만발하는 일본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그림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일본에서 가장 강렬한 변화의 시대였던 메이지 시대를 다루고 있는만큼 유신지사와 신선조 간의 끝나지 않은 대결이 은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도 뜻밖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물론 일본의 근대사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 역시 돋보인다.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맑은 심성을 갖고 있으며, 명관의 일을 방해하려는 정체불명의 악마의 방해공작도 빼놓는다면 섭섭해할 것이다. 게다가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마지막 권의 반전까지 감안하면, <영혼의 안내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한 필수요소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혼의 본질과 사랑의 본질, 그리고 막 피어오르는 10대들의 사랑에 대해 돌아볼 계기를 만들고 싶은 독자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만화로서, 권수 역시 총 7권으로 부담스럽지 않다는 사실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데스노트> 운명적으로 얻게 된 '사신의 노트', 정의를 이야기하다
현재 5권까지 발간 ⓒ 대원씨아이 만화를 보면서 이 정도의 박진감과 스릴을 갖춘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데스노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장선상에 있는 만화로 보고 싶다. <데스노트>는 권력과 창조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주된 바탕이다.얼굴도 잘 생긴데다가 천재적인 두뇌를 갖춘 '야가미 라이토'. 모든 재능을 두루 갖춘만큼 그는 삶이 그저 지루할 뿐이다. 그 시간,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계의 '류크' 역시 무료함으로 찌들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류크'는 결국 그 '무료함'을 이유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명부인 '데스노트' 2권을 인간계에 떨어뜨린다.그것을 얻은 이는 '라이토'였다. '라이토'는 그 노트에 사람의 이름과 사망 사유를 적으면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또다른 욕망을 키운다. 사회악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며, 그 세상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꿈에는 언제나 방해물이 존재한다. 경찰은 세상의 온갖 흉악범들이 지속적으로 '심장마비'로 죽어가자, 이 알 수 없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역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명탐정 'L'을 고용한다. 그런 'L'이 경찰 간부의 아들인 '라이토'에게 본능적인 직감을 느끼면서 '라이토'와 'L', 10대 후반의 두 소년 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두뇌 대결이 시작된다.<데스노트>는 <고스트바둑왕>의 작가인 오바타 다케시의 만화로서, <고스트바둑왕>에서 엿보였던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철저하게 배제한 채, 묵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로 사뭇 다른 무게를 느끼게 한다. '데스노트'와 관련된 사신계의 복잡한 규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만화는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예측은 커녕 한시 앞도 미리 알 수 없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스릴러 영화 이상가는 긴장감이 느껴진다.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와 주인공들을 감싸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절묘하게 조화돼 있다는 것도 또다른 특징. 인간의 두뇌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도 될 수 있지만, '정의'라는 피상적인 개념이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될 수 있다. 히틀러같은 세기의 독재자 역시 '라이토'처럼, 보통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허망하기 이를데 없는 '정의'에 대한 관념과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의 유혹을 통해 피의 역사를 쓴 것은 아닐까? 어쨌든 한일 양국의 많은 독자들의 성원 속에서 '라이토'와 'L'은 지금도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과연 어떤 '정의'가 승리할까? 그것은 오직 작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영혼'과 '사신'은 불확실한 '운명'을 설명하는 또다른 매개체아직 존재 유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영혼'이지만, 어쨌든 '영혼'은 선과 악의 양면적인 이미지를 초월하며, 보다 더 다양한 개성을 안고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여진다. 어쩌면 이 만화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영혼'은 '운명'이라는 이름의 인생의 불확실성과 다양한 변화를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딱히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뚜렷한 변화나 특별한 계기를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영혼'과 '운명'은 모두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그 특유의 매력과 다양한 상상력의 시초가 된다.물론 앞으로도 더 많은 '영혼'과 '운명'이 영화와 서적, 그리고 만화를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미처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데스노트>가 통한다는 생각에 소개를 생략했던 만화 <오메가 트라이브> 역시 특별한 계기를 통해 만나게 된 '영혼(?)'을 통해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결국 선이든, 악이든 '영혼'은 '운명'이라는 이름과 함께 인간의 곁에 살아숨쉬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때로는 인간의 관념을 비웃고, 때로는 인간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영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적잖이 커보인다. '21그램'이라는 적은 무게를 가졌다고 알려진 '영혼'은 상황에 따라 21톤 이상가는 무게로 인간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셈이다. '21그램의 영혼'이 앞으로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우리를 웃고 울릴지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와 만화를 주목해봐야 할 듯싶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야세 쇼우코의 만화 <영혼의 안내자>, 전7권 ⓒ 학산문화사
메이지 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 '히지리'는 '그 물건'을 집기 전만 해도 '붉은 머리(혼혈아)'라는 이유로 동네에서 온갖 천대는 다 받고 다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목도리'가 그에게는 운명적인 물건이 된다. 목도리에서 나온 영혼은 헤이안 시대의 유명한 판관이자, 저승의 명관이었던 '다카무라 공'. '히지리'는 우연히 발견한 '목도리'를 계기로 '다카무라'의 후임 명관이 되어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을 망계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필이면 그가 지내고 있는 절도 '다카무라'를 모시는 절이었으니, 어쩌면 이것은 감춰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영혼의 안내자>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간절한 사연들을 다양하게 다루면서 벚꽃이 만발하는 일본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그림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일본에서 가장 강렬한 변화의 시대였던 메이지 시대를 다루고 있는만큼 유신지사와 신선조 간의 끝나지 않은 대결이 은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도 뜻밖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물론 일본의 근대사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 역시 돋보인다.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맑은 심성을 갖고 있으며, 명관의 일을 방해하려는 정체불명의 악마의 방해공작도 빼놓는다면 섭섭해할 것이다. 게다가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마지막 권의 반전까지 감안하면, <영혼의 안내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한 필수요소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혼의 본질과 사랑의 본질, 그리고 막 피어오르는 10대들의 사랑에 대해 돌아볼 계기를 만들고 싶은 독자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만화로서, 권수 역시 총 7권으로 부담스럽지 않다는 사실도 추천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데스노트> 운명적으로 얻게 된 '사신의 노트', 정의를 이야기하다
오바 츠구미&오바타 다케시의 만화 <데스노트>, 현재 5권까지 발간 ⓒ 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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