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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오상윤·이춘백 “우린 영화계 언더독, 한국의 픽사 만드는 게 꿈”

등록 2019-01-15 05:00

애니메이션 ‘언더독’ 감독 인터뷰

220만 동원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7년 만에 유기견 모험 다룬 신작
국내 투자 외면·한한령 후폭풍에
크라우드 펀딩·열정 페이로 제작

감동적인 시나리오에 감각적 그림
개 농장·로드킬 현실 그대로 담고
도경수·박철민·강석 목소리 보태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어느 일요일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버려진 시츄를 본 게 시작이었어요. 지저분하게 엉긴 털, 뭉그러진 한쪽 눈의 그 아이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보고 잠이 확 달아나더라고요. 저 아이도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던 반려견이었을 텐데…. 그러다 유기견에 대한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이 없다는 데 생각이 닿았어요. 사실 유기견은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제잖아요.”

한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언더독>의 개봉(16일)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오성윤(56) 감독은 영화의 첫 구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동연출을 맡은 이춘백(55) 감독이 말을 받았다. “그런데, 그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는 데 6년이 넘게 걸릴지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하. 참,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죠.”

영화 <언더독>은 주인에게 버려진 강아지 뭉치(도경수)가 떠돌이 개 짱아(박철민)와 개코(강석), 들개 밤이(박소담) 등과 함께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개를 학대하고 유기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 주체적 자아를 가진 생명체로서 변해가는 개들의 성장담까지 두루 녹여냈다.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애니의 역사를 새로 쓴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이후 두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언더독>을 연출한 이춘백(왼쪽), 오성윤 감독. 뉴(NEW) 제공
<언더독>을 연출한 이춘백(왼쪽), 오성윤 감독. 뉴(NEW) 제공
“<언더독>은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낮은 약자를 뜻하잖아요? 사실 애니메이션 장르가 한국 영화계에서는 ‘언더독’입니다. 영화 속 개들뿐 아니라 저희 같은 약자들이 힘을 합쳐 무언가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뜻에서 지은 제목이죠.” 두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 뒤에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이 숨어있다. 어렵게 받은 중국 투자가 사드로 인한 한한령으로 무산되고, 국내 투자자에게 수차례 외면을 받은 끝에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해 겨우 세상에 나왔다. “슬프고 외로웠어요. 감독을 비롯해 스태프 모두가 ‘열정페이’로 일해야 하니까. 다음 작업은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었으면 싶네요.”(이춘백)

베스트셀러 원작이 있었던 <마당…>과 달리 <언더독>의 시나리오는 100% 오성윤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개인적 사연도 많이 녹아있다. “뭉치는 예전에 죽은 우리 집 몰티즈 이름이에요. 영화 속에선 아파트에서 도저히 키울 수 없어서 버려진다는 현실적 설정을 더하기 위해 보더콜리 종으로 그렸죠. 대신 작품 속 방울이를 몰티즈로 구상했어요. 치와와인 아리와 까리는 예전 스튜디오 옥상에 누군가 버리고 간 개 한 쌍을 모티브로 했고요.” 이춘백 감독이 한마디 보탰다. “사실 영화 속 짱아 말대로 뭉치는 ‘영혼 없는 이름’이죠. 하하하. 중국어로 하면 ‘멍치’인데, 똑똑하고 귀여운 개 이름이래요. 중국에서는 <멍치 유람기>로 개봉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주최하는 ‘실크로드 영화제’에서 베스트 애니메이션상을 차지한 <언더독>은 현재 중국 현지 배급사와 정식 개봉을 준비 중이다. 한한령 해제 전에 이룬 성과라 중국 개봉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언더독>을 연출한 이춘백(왼쪽), 오성윤 감독. 뉴(NEW) 제공
<언더독>을 연출한 이춘백(왼쪽), 오성윤 감독. 뉴(NEW) 제공
영화 속에는 개농장·로드킬 등 적나라한 현실이 담겨있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엔 너무 잔혹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유기견이 당하는 일반적 상황을 그려야죠. 팩트인데…. 쇼핑몰 애견코너의 개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왔는지, 한 생명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큰 책임감이 필요한지 다 같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오성윤)

<언더독>은 목소리 연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짱아 역의 박철민씨는 캐릭터를 만들기 전 사전 캐스팅을 했어요. <마당…> 때처럼 영화 속 유머를 담당해 달라고 부탁드렸죠. 도경수씨는 영화 <카트>를 보며 그 눈빛과 목소리가 너무 맘에 들었어요. 무엇보다 개코 역의 강석씨가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아요. 군견 출신이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영화의 현실적 분위기를 살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어요.”(오성윤)

버려진 개들은 인간이 없는 이상향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그곳은 비무장지대(DMZ)로 설정된다. “남북 대립의 상징이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평화롭고 고요한 공간이잖아요. 작업 전에 몇 번 답사를 갔을 때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속세의 모든 음이 소거된.”(이춘백) 하지만 인간과 화해의 가능성을 닫아두진 않았다. “짱아가 커밍아웃 하잖아요?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고. 다들 떠나도 누군가는 인간의 곁에 남을 수 있다는 선택지를 열어 두고 싶었어요.”(오성윤)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영화 <언더독>의 한 장면. 뉴(NEW) 제공
<언더독>이 세상에 나오는 데 6~7년이 걸렸지만 다음 작품을 위한 두 감독의 발걸음은 훨씬 더 빨라지고 있다. “DMZ로 간 뭉치 일행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증에 빨리 <언더독2>를 만들고 싶어요.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너는 내 동생>도 진행 중이고요. 도시에 사는 소녀가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을 만나면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이춘백), “한 작품 끝나면 함께 보조를 맞췄던 훌륭한 스태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지금 구조로는 한국 애니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어요. 조금 부담이 되더라도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진행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언더독>이 꼭 성공해 픽사나 지브리같이 멋진 스튜디오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오성윤)

언더독의 파생어엔 ‘언더독 효과’라는 말도 있다. 사람들이 약자에 심리적 애착을 갖고 응원하는 현상을 말한다. 손맛이 살아있는 회화적 그림이 일품인 <언더독>의 작품성에 ‘언더독 효과’까지 곁들여진다면 한국의 픽사나 지브리도 꼭 먼 꿈만은 아닐 터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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