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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 너희가 ‘킹콩’ 을 아느냐?

등록 2005-12-15 14:31수정 2005-12-15 14:31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의 \'킹콩\'과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 ⓒ UIP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의 \'킹콩\'과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 ⓒ UIP
1933년에 제작된 흑백 버전 <킹콩>은 '충격'이라는 감상 이상은 생각하기 힘든 진정한 걸작이었다. 미니어처 기법을 이용했다는 그 특수촬영은 지금 보아도 그 유연한 몸놀림과 군더더기없는 화면이 단연 돋보인다. 괴수영화에 일가견이 있다는 마니아들 치고 이 영화를 극찬하지 않는 마니아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킹콩>은 걸작의 단계를 넘어 모든 영화인이 한번쯤은 리메이크를 꿈꿔보는 첫 순위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의 심형래 감독이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스타감독의 위치를 굳힌 피터 잭슨 감독 역시 그런 영화인들이었다.결국 심형래 감독의 야심작인 <디-워>에 앞서 피터 잭슨 감독이 먼저 일을 저질렀다. 다른 영화인이라면 '꿈만 꾸고' 막상 실천하기는 대단히 힘들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리메이크판 <킹콩>의 연출을 드디어 마무리한 것이다. 1933년작의 압도적인 재미와 경악은 나름대로 히트를 거두었던 존 길러민 감독의 1976년판 <킹콩>마저도 빛을 잃게 만들 정도였는데, 피터 잭슨 감독이 가장 연출하고 싶었던 영화라던 이 <킹콩>이 전작의 경이로운 아성에 도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킹콩'이 1시간 뒤에 출연해도 재미는 변함이 없다

1933년판 <킹콩>의 상영시간은 총 1시간 40분 가량이었고, 1976년판은 2시간 10분 가량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내용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1933년판 <킹콩>의 상영시간이 더욱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1976년판 <킹콩>이 1933년판 <킹콩>에 묻힐 수 밖에 없던 이유도 별다른 개성의 추가없이 무리하게 30분 이상을 늘려잡았다는 것이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피터 잭슨 감독은 2시간 10분조차도 다소 지루했던 이 영화를 무려 3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을 선택하는 엄청난 도전을 시도한다. 간단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를 어떤 방법으로 3시간을 꽉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선택하기 이전에 대단히 많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피터 잭슨'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내 기대는 주효했다. 확실히 영화의 주인공 '킹콩'은 영화의 시작 이후 1시간이나 지난 뒤에 등장한다. 하지만 피터 잭슨 감독은 주인공의 출현을 고대하는 관객의 기대 심리를 이용해, 여러 가지 소재를 통해 압도적일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등장에 대한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과거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1930년대 당시의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의 모습, 그리고 그 시대에 맞는 어조로 드러나는 철저한 고증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킹콩'의 등장이라는 기대로부터 비롯되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면을 보이고 있으며, 피터 잭슨 감독에게 한때 '스플래터 호러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영화였던 <데드 얼라이브>의 초반부에서 보았던 낯익은 장면들이 '해골섬'을 무대로 더욱 섬세하게 펼쳐진다. 이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더이상 피터 잭슨이라고 할 수 없었다. 피터 잭슨은 3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킹콩>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역시 '킹콩'의 압도적인 모습과 더불어 그로부터 비롯되는 '해골섬'의 다양한 생물들과 인간, 그리고 '킹콩'이 벌이는 삼자대결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환상적인 그래픽 활극은 스크린으로부터 한순간이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보다 더 풍부한 표정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킹콩'은 전작보다 매력이 있으면 있었지, 전작들의 명성을 깎는 킹콩은 아니었다. 압도적이다. <고질라>로 참혹한 실패를 겪었던 롤랜도 에머리히 감독이 이런 방식으로 연출했더라면, <고질라>가 재앙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기에만 집착한다고 스펙터클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크기와 내면이 동시에 엿보여야 진정한 명작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 인간에 가까워진 '킹콩'은 관객에게 더 많은 매력을 안긴다.

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 인간은 나약하다. ⓒ UIP
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 인간은 나약하다. ⓒ UIP

눈물샘을 자극하는 '킹콩'의 애틋한 사랑


1933년판 <킹콩>의 로맨스는 '킹콩'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까웠고, 여주인공 '페이 레이'의 모습은 그 짝사랑을 미처 짐작하지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1933년판 <킹콩>은 오히려 이런 점이 '킹콩'의 사랑을 더욱 애절하게 느끼게 하는 효과를 만든다. 1976년판 <킹콩>은 여배우 '제시카 랭'과 '킹콩'의 로맨스를 보다 직접적으로 그려 또다른 장점을 만들었지만, '제시카 랭'에게 '킹콩의 애인'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큰 숙제를 만드는 부담도 되었다. '전형성'에 대한 선택이 어긋나면, 이런 부정적인 면이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 서른을 넘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오미 왓츠' 역시 이 부담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 로맨스가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연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녀만의 풍부한 표정도 이 로맨스의 빛이 확실하게 발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지만, '킹콩'의 풍부한 표정과 절박한 괴성은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에게조차도 애절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킹콩'이 인간에 가까운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픽 화면이 아무리 박진감이 넘치고 화려했다 한들, 두 주연의 확실한 연기와 환상의 호흡이 아니었다면, 피터 잭슨의 필사적인 노력의 결정체인 그래픽 화면은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픽 화면은 어디까지나 '종'일 뿐이다.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배우의 연기와 호흡이다. '나오미 왓츠'는 피터 잭슨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장면도 그 애절함이 오히려 1933년판을 능가하는 뚝심을 보이고 있다. 환상적인 카메라의 움직임과 두 캐릭터의 찰떡 궁합이 이 영화를 전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최고의 영화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3시간의 부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일라이트 중 한 장면. 티라노와 킹콩의 대결. ⓒ UIP
하일라이트 중 한 장면. 티라노와 킹콩의 대결. ⓒ UIP

장담하건데, 이 영화의 3시간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영시간이 보통 1시간 40분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현대 영화의 경향으로 비춰봤을 때, '3시간'이 관객에게 주는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용이 알찬 3시간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깊이있는 영화를 무리하게 짧게 연출하다 실패한 영화들도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이 뚝심있는 3시간은 그보다 훨씬 알찬 시간이 될 수 있다. 길어도 이렇게만 길다면, 시간이 길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피터 잭슨의 <킹콩>은 단점을 찾을래도 찾기가 힘든 영화다.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두 캐릭터의 애절한 사랑의 뒤에 숨겨진 자연과 인간의 이질적인 관계나 진정한 사랑과 우정의 의미 등, <킹콩>은 관객에게 많은 여운과 감동을 안기고 있다. 수준 이하의 영화들이 판치고 있는 최근의 할리우드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충분한 영화로 볼 수 있겠다. 그 대단하다는 '해리 포터'도 한국에서는 벌써부터 '킹콩'에 밀리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괴수'의 대결은 아무래도 '괴수'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렇듯 <킹콩>에 대해 흠을 잡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끼다 보니,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대한 궁금증도 만만치 않게 커진다. <킹콩>이 먼저 개봉했고, 너무나도 압도적인 재미를 선보인만큼, <킹콩>은 아무래도 심형래 감독에게 어느 정도는 부담이 될 영화로 보인다. 대한민국 전체가 성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영화인 <용가리>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심형래 감독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 역시 피터 잭슨 못지 않은 뚝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이라는 점에서 그 기대는 여전하다. '킹콩'과 '발키르(디-워의 괴수)'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 올 겨울, 영화 관객들은 즐겁기만 하다. '킹콩'이 이미 위력적인 모습으로 관객을 설레게 만들었으니, '발키르'는 더욱 압도적인 이미지와 깊이있는 이야기로 그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으면 한다. 피터 잭슨 감독이 <킹콩>을 아무리 압도적인 영화로 만들어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거는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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