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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청년들 -일본 드라마

등록 2019-04-26 19:24수정 2019-04-26 19:2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주휴 4일로 부탁합니다’
도시락 체인 회사에 다니는 청년 다카하시 나오토(오카야마 아마네)는 건강 문제로 휴직한 상사를 대신해 점장 대리로 일하게 된다. 말이 좋아 대리지, 기존에 하던 일에 사무 처리까지 도맡는 통에 다카하시는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어느 날, 회사에 아오키 하나(이토요 마리에)가 파트타임 직원으로 들어온다. 면접 때 ‘주휴 4일’(1주일에 3일만 근무)을 강조해 다카하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아오키. 중년 직원이 많은 회사에서 동갑내기인 다카하시와 아오키는 일하는 틈틈이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지난달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방영된 <주휴 4일로 부탁합니다>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과로사회’ 일본의 초상을 그린 드라마다. 배경은 작은 도시락 회사, 주요 인물은 둘뿐인 45분 분량의 짧은 이야기지만, 곳곳에 장시간 노동 문제와 피로한 사회의 그늘이 배어 있다. ‘몸이 망가져서 쉬고 있다’는 점장 이야기부터 의미심장하다. 회사는 그 빈자리를 다른 점장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직원을 ‘대리’로 삼아 추가 근무로 메우고, 그 직원의 자리는 다시 파트타임 노동으로 채운다.

피로에 시달리는 다카하시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앞날에 대한 불안과 생계 걱정으로 차마 사표를 내지 못한다. 함께 사는 아버지(엔도 겐이치)의 훈계도 그를 주눅 들게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거나 “사람은 일로 성장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는 과로를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의 대변자다. 그런 아버지 아래서, 묵묵히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없던 다카하시가 아오키에게 끌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주휴 4일로 먹고살 수 있느냐”는 물음에, “먹기 위해 주휴 4일로 했다”고 답하는 아오키. 정사원으로 일했던 전 직장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잔업을 했다는 과거를 듣고 나면, 그 답이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온다.

드라마에는 과로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과로 자살’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가령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업을 하다 늦게 퇴근하던 다카하시가 다리 위에 멍하니 서 있는 장면과 이를 자살 시도로 오해한 아오키가 말리는 장면은 가볍게 지나가지만, 이어지는 “생명의 전화” 이야기는 이것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오키 역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기에 그를 눈여겨본 것이다. 장시간 노동의 피로와 스트레스, 다른 삶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우울증과 무기력증, 이로 인한 과로 자살의 문제는 일본 거품경제 붕괴 이후 조금씩 공론화되다가 몇 해 전부터 더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 <주휴 4일로 부탁합니다>가 이런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다른 삶’의 용기란 기껏해야 유급 휴가를 쓰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용기다. 당장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 이미 다른 삶의 가능성이 축소될 대로 축소된 현실에서 그 ‘소확행’이야말로 이들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일지도 모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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