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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 홍승완 감독 “세상을 바꾸는 건 진심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

등록 2019-05-15 14:07수정 2019-05-15 14:11

오랫동안 갈고닦은 시나리오로 데뷔
11년 전 실제 국민참여재판에서 착안
일반 시민들이 판사의 매너리즘 깨며
진정한 법 정신의 의미 일깨워
“왜 좋은 건 늘 엘리트 몫인지 묻고 싶었다”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나이도, 직업도, 경험도 다양한 8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법정에 모인다. 개인 파산 위기에 몰린 청년 사업가, 늦깎이 법대 1학년생, 60대 요양보호사, 일당에 목마른 무명배우, 중학생 딸을 둔 강남 엄마, 까칠한 대기업 비서실장, 20대 취업준비생, 30년 경력의 염습사….

만 20살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뽑혀 역사적인 첫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 앞에 놓은 것은 친어머니를 망치로 내려친 뒤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뜨려 살해한 패륜사건. 그런데 이게 웬일? 이미 죄를 자백했다던 남자가 갑자기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다. 난생 처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만 하는 배심원들은 혼란에 빠지고, 원칙주의자인 재판장 김준겸(문소리)은 신속하게 재판을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유죄냐 무죄냐’는 닦달하는 질문에 “싫어요!”를 외치며 판을 뒤엎은 8번 배심원 권남우(박형식)의 돌발행동에 재판은 예상치 못한 소동에 휘말린다.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15일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은 ‘법알못’이지만 ‘상식’에 근거한 의문을 제기하는 배심원들이 관성에 젖은 재판부의 매너리즘을 깨고 ‘진정한 법 정신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영화다. 개봉을 앞둔 지난 13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승완 감독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서툴지만 진심을 다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라는 믿음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홍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배심원들>은 지난 2008년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살인사건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에도 국민참여재판의 가치와 의미를 세상에 알린 중요한 판결이었단다. “스토리에 숨을 불어넣으려면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의 세부사항은 각색을 해야 했는데, 법리적 충돌이 없도록 구성하기 위해 50여건의 유사 사건을 살펴보고, 540여건의 판결문을 참조하는 등 사전조사를 많이 했죠.” 국민참여재판의 틀을 만들었던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도움이 컸다. “김 전 판사님께 자문을 구한 것은 물론, 그분의 로스쿨 강의를 청강하기도 했어요. 영화 속 ‘법은 함부로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만든 기준’이라는 문소리씨의 대사는 바로 김 전 판사님이 로스쿨 강의 첫 시간에 하신 말씀이었어요. 듣는 순간 너무도 신선하더라고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된 셈이죠.”

홍승완 감독.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홍승완 감독.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본래 산업공학을 전공한 홍 감독은 학보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영화에 빠졌다. 그리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남아도는 시간에 비디오에 심취”하게 되면서 막연하게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 “진정한 사춘기가 대학 때 왔어요. 학보사 생활하면서 전공엔 관심 없고 학사경고 맞고…. 영화를 하기 위해 졸업 후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다시 입학했죠.”

학보사 친구로 만난 아내와 결혼한 뒤 “아내의 피를 빨고 등을 쳐먹으며” 시나리오에 매달렸다고 고백하며 웃는 홍 감독. 그 결과물이 바로 <배심원들>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배심원들> 시나리오는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영상위원회, 부산영상위원회 등 각종 공모전에 잇달아 당선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묵은지처럼 잘 숙성된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는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초벌 시나리오와 영화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재판장이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주목받은 이정미 헌법재판관,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대법관 등을 보며 재판장이 여성이면 영화 속에서 좀 더 다양한 결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죠. 지적이면서도 예민하고 그 안에 부드러운 리더십이 공존하는 캐릭터를 상상했는데, 다행히 대체 불가능한 ‘캐스팅 1순위’ 문소리씨가 흔쾌히 승낙했어요.”

홍승완 감독.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홍승완 감독.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심원들>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엘리트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지성에 더 무게를 둔다. 재판 거래, 판사 블랙리스트, 사상 첫 대법원장 구속 등 사법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현실과 맞물려 영화가 주는 울림이 더 크다.

“기존 법정영화는 대부분 의로운 검사나 변호사가 멋지게 진실을 밝히잖아요?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도 엘리트,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엘리트, 왜 좋은 건 다 엘리트가 하죠? 현실에 빗대 영화를 해석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떤 관객이 ‘나의 소신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작지만 큰 사람이란 것을 일깨워준 영화’라는 한 줄 평을 남겼던데, 얼마나 감사하던지.”

데뷔작인 만큼 스코어에 대한 걱정과 기대도 클 법하다. “영화 속 ‘처음이라 잘하고 싶었어요’라는 대사로 답을 대신하면 될까요? 마음을 비우고 기대 중입니다. 모순적이라고요? 하하하. 원래 제가 모순적인 걸 좋아해요. <배심원들>이 ‘가볍지만 진중한 이야기’인 것처럼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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