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니아 연대기’
‘절대 반지’(<반지의 제왕>)가 종말을 고한 뒤 <해리 포터>만으로 판타지 영화에 대한 허기를 채울 수 없었던 관객들이라면, 지금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첫편,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과 함께 서구 판타지 소설의 쌍벽을 이루는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영화화했고, <반지의 제왕>의 딘 라이트가 비주얼 이펙트 수퍼바이저를 맡아 세계 최고의 특수효과 제작사들과 공동으로 작업했다는 점을 포함해 기대의 근거는 ‘일단’ 충분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영국. 페번시가의 어린 네 남매 피터(윌리엄 모슬리), 수잔(안나 포플웰), 에드먼드(스캔더 킨즈), 루시(조지 헨리)는 나치의 공습을 피해 시골 별장으로 간다. 그리고 막내 루시가 찾아낸 마법의 옷장을 통해 신화와 상상 속의 주인공과 말하는 동물들이 함께 사는 땅 나니아로 들어선다. 하지만 나니아는 하얀 마녀 제이디스(틸다 스윈튼)의 마법에 의해 ‘영원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네 남매는 고귀한 사자 아슬란의 인도로 마녀의 주문을 깨는 싸움에 앞장선다.
원작을 집필할 당시 C.S. 루이스의 지론은 “5살 때 읽었던 책을 50살에 읽어도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나이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눈높이를 5살 쪽에 가깝게 맞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작에 충실한 영화 <나니아 연대기>도 어른보다는 어린이들에게 더 즐거운 판타지 영화가 됐다. 어린 네 남매가 주인공이 되어 마녀를 물리친다는 설정이며, 단선적인 선과 악의 대결, 우애의 강조 같은 메시지 등이 어린이들에게 ‘착하고 용감한 어린이 되기’의 꿈을 심어주는 데 충실하다.
<나니아 연대기>가 어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라면, 특수효과로 탄생한 판타지 공간 나니아와 신화와 상상 속의 생명체들이다.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와 사람 상체와 염소 다리를 가진 목신 툼누스까지 실존하는 생명체로 느껴질 만큼 정교한 특수효과는 흠 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절정인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나듯, 2만여종의 캐릭터들이 떼로 등장해도 스케일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당하기보다는 다종다기한 캐릭터들이 주는 아기자기함에 잔재미를 느끼게 된다. 미동도 없이 단호하고 잔인한 마녀 역할을 200% 소화한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무게’를 보태지만 역부족이다.
몇몇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니아 연대기>는 신학자이기도 했던 C.S. 루이스가 구축한 기독교적인 은유로 가득한 영화라는 점에서 다른 판타지 영화와는 달리 기독교계의 큰 환대를 받고 있다. 에드먼드의 배신, 그를 위한 아슬란의 희생과 죽음, 부활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낳는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를 ‘안 보고’ 넘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29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