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이미영 감독
“방탄소년단 말고도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더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초토화 작전>(Scorched Earth)을 만들고 있는 이미영 감독 말이다. ‘초토화 작전’은 한국전쟁 때 미 공군의 한반도 폭격 프로젝트를 가리킨다. 한국전쟁 중 미 폭격기가 한반도에 투하한 폭탄은 63만5천톤에 이른다. 여기에 3만2557톤의 네이팜탄은 포함되지 않는다. 2차 대전 중 미군이 태평양 전쟁 구역에 투하한 폭탄(50만3천톤)보다 많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책에 폭격으로 평양을 비롯한 북한 22개 주요 도시 중 18개 도시의 최소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썼다. 올해 말 완성을 목표로 하는 이 작품은 최근 리영희재단의 우수 다큐 지원 대상작으로도 선정됐다. 지난 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먼지 사북을 묻다-1980년 사북의 봄>(2002). 이 감독이 17년 전 만든 기록 영화다. 1980년 4월 강원 정선군 사북읍 일대에서 일어난 광원들의 생존권 투쟁의 진실을 좇는 작품이다. 영화를 만든 뒤에는 2년 동안 사북 광원들과 함께 나라 곳곳을 다니며 상영회를 했다. 그리고 2005년 사북항쟁의 두 주역이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둔 1997년 겨울 사북으로 들어가 2004년까지 머물렀다. 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선 2001년엔 이미 사북의 유명인사가 돼 항쟁 참가자들을 별 어려움 없이 카메라 앞에 세울 수 있었다.
지금 그는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2005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몬트리올 콘코디아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았다. 5년 전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결혼해 핼리팩스에서 살고 있다. 2009년부터 6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다큐 제작 강의를 했고 지금은 핼리팩스의 한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왜 초토화 작전인가? “2년 전 김정은과 트럼프가 막말 싸움을 했잖아요. 그 뉴스가 <시엔엔>에 온종일 나오더군요. 미국은 지식인들도 한국 역사를 잘 몰라요. 베트남전은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광주’를 떠올릴 만큼 각인돼 있지만 한국전은 몰라요. 그들에게 북한 핵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한국전쟁을 알리고 싶어요.”
‘6·25’ 미 공군 사상 최대 폭격 프로젝트
‘초토화 작전’ 리영희재단 지원작 선정
“조종사들 민간인 알면서도 무차별 폭격” 90년대 중반 학생운동 거쳐 영화로
2002년 ‘80년 사북항쟁’ 다큐로 알려
캐나다 유학갔다 2014년 결혼해 ‘정착’ 영화는 전쟁 때 폭격을 실행한 미 공군 조종사의 시선을 따라갈 참이다. 여기에 민간인 피해자의 목소리도 들어간다. 자료 수집을 위해 지난 3월 미 국립문서보관청도 찾았단다. “폭격 관련 자료가 너무 많아 산더미에서 지푸라기 찾는 심정이었죠. 미 공군의 한국전 출격 횟수가 100만번 정도 돼요. 출격 때마다 폭탄 20발과 네이팜탄 8발을 장착했죠. 이걸 쏟아붓는 게 조종사의 임무였어요. 그때 미 공군에는 촬영 전담팀이 따로 있어 영상 자료도 너무 많아요.” 폭격 보고서엔 조종사와 통제관들이 나눈 대화가 자세히 나온다. “조종사들이 통제관의 폭격 지시를 받고 민간인인지 군인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사례가 많아요. 이럴 때는 대개 폭격을 해요. 민간인인지 알고도 폭격합니다. 한국전 초기엔 미군 근처 15m 이내로 접근하면 무조건 폭격하도록 했거든요.” 영화 제작에 미국의 전쟁사 전문가 존 대럴 셔우드가 1996년 낸 ‘공군 조종사 인터뷰집’(한국어 제목 <전투 조종사>)과 한국전쟁 중 북한을 찾은 17개 나라 여성들이 작성한 ‘민간인 피해자 인터뷰집’이 큰 도움이 됐단다. “전쟁 기간을 고려했을 때 한국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 폭격입니다. 이 영화로 미국인들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들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민주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국토를 초토화한다면 어떻겠냐고요.’ 당시 미국은 핵 공격도 준비했어요. 초토화 작전은 핵 공격의 대체재였죠. 세계 여론을 나쁘게 만들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북한을 초토화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거죠.”
그는 고려대 독문과를 다니며 학생운동을 했다. 학생운동 쇠퇴의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1996년 ‘연세대 사태’ 때 고려대 사회과학 동아리 회장이던 그도 수천 명 학생과 함께 경찰에 연행됐다. 그는 구속을 면했지만 당시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평화와 통일을 외친 학생 수십 명을 기소했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탄광촌에서 다큐 영화를 찍는다는 철학과 선배의 게시물을 보고 사북으로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해 대학 다닐 때도 늘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만든 사북 영화를 보면, 서울 제기동 시장의 한 상인이 인터뷰를 하고 있던 이 감독을 간첩이라고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북항쟁을 이끈 이들도 간첩으로 몰렸다. “연세대 사태는 군축과 평화 목소리를 낸 학생들을 국보법으로 탄압한 사건이죠. 이는 기득권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지금도 강력히 작동해요. 더 무서운 것은 젊은 친구들도 동조하고 있다는 거죠.”
그는 잊히고 묻힌 역사에 관심이 많다. “내가 누구인가, 왜 연세대에서 탄압받았나를 생각하면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이번 영화 전에 사실 ‘연안파’를 다룬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연안파는 중국 연안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해방 후 입북한 조선의용군 출신의 정치집단을 말한다. “반제 정권을 만들려고 한 사람들이었죠. (북에서 숙청을 당해) 목소리도 없이 사라졌어요. 연안파에는 너무나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있어요. 특히 허정숙과 김두봉에 관심이 많아요. 이들의 삶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 북한 정부의 탄생과 분단 과정 그리고 지금의 한반도 모습을 전하고 싶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이미영 감독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가 만드는 <초토화 작전>을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이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영화 제작에 미국과 캐나다 영화인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요.”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초토화 작전’ 리영희재단 지원작 선정
“조종사들 민간인 알면서도 무차별 폭격” 90년대 중반 학생운동 거쳐 영화로
2002년 ‘80년 사북항쟁’ 다큐로 알려
캐나다 유학갔다 2014년 결혼해 ‘정착’ 영화는 전쟁 때 폭격을 실행한 미 공군 조종사의 시선을 따라갈 참이다. 여기에 민간인 피해자의 목소리도 들어간다. 자료 수집을 위해 지난 3월 미 국립문서보관청도 찾았단다. “폭격 관련 자료가 너무 많아 산더미에서 지푸라기 찾는 심정이었죠. 미 공군의 한국전 출격 횟수가 100만번 정도 돼요. 출격 때마다 폭탄 20발과 네이팜탄 8발을 장착했죠. 이걸 쏟아붓는 게 조종사의 임무였어요. 그때 미 공군에는 촬영 전담팀이 따로 있어 영상 자료도 너무 많아요.” 폭격 보고서엔 조종사와 통제관들이 나눈 대화가 자세히 나온다. “조종사들이 통제관의 폭격 지시를 받고 민간인인지 군인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사례가 많아요. 이럴 때는 대개 폭격을 해요. 민간인인지 알고도 폭격합니다. 한국전 초기엔 미군 근처 15m 이내로 접근하면 무조건 폭격하도록 했거든요.” 영화 제작에 미국의 전쟁사 전문가 존 대럴 셔우드가 1996년 낸 ‘공군 조종사 인터뷰집’(한국어 제목 <전투 조종사>)과 한국전쟁 중 북한을 찾은 17개 나라 여성들이 작성한 ‘민간인 피해자 인터뷰집’이 큰 도움이 됐단다. “전쟁 기간을 고려했을 때 한국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 폭격입니다. 이 영화로 미국인들에게 묻고 싶어요. ‘당신들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민주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국토를 초토화한다면 어떻겠냐고요.’ 당시 미국은 핵 공격도 준비했어요. 초토화 작전은 핵 공격의 대체재였죠. 세계 여론을 나쁘게 만들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북한을 초토화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거죠.”
이미영 감독은 자신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전교조 교사’와의 만남이었다고 했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전교조 소속이었어요.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영화도 같이 봤고요.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분입니다.” 김경호 선임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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