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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30 11:10 수정 : 2019.07.30 19:52

‘보이콧 재팬’ 불지르는 8월 영화 두편

1920년 독립군 투쟁 다룬 ‘봉오동전투’
유해진·류준열·조우진 대세배우 열연
‘애국심 고취’하는 대사·스토리 폭발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 다큐
일본 만행 폭로뒤 27년 삶 조명
슬픔 넘어 투쟁과 실천에 초점

“사지도 말고, 먹지도 말고, 가지도 말자”는 ‘보이콧 재팬’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8월 스크린에도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가 연이어 걸린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상업 영화부터 소규모 독립 다큐멘터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 조처를 내리면서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반일 정서’가 광복절을 낀 성수기 여름 영화시장의 판도까지 바꿀지 주목된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 “어제의 농부가 오늘은 독립군”…<봉오동 전투>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순 없다. 올여름 텐트폴 영화 중 하나인 <봉오동 전투>(8월7일 개봉)는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투인 ‘봉오동 전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용의자>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유해진·류준열·조우진 등 대세 배우들이 합류했다. 1760만명을 끌어모으며 한국 박스오피스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인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이 제작에 나선 것도 화제다.

때는 1919년 3·1운동 이후 한중 접경지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한층 강화된 시기. 이듬해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대한군무도독부가 연합해 만주 봉오동에 집결,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한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경추격대를 앞세워 독립군 토벌 작전에 나선다. 독립군은 압도적인 전력의 일본군에 맞서기 위해 봉오동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펼치기로 한다. 영화는 이 역사적 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대신 일본군을 봉오동까지 유인한 이름없는 독립군들을 중심에 둔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칼잡이 황해철(유해진),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황해철의 오른팔이자 저격수인 마병구(조우진) 등은 목숨을 걸고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는 정규 훈련조차 받지 못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펼치는 사투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일본군의 목을 추풍낙엽처럼 베어내는 황해철의 칼 솜씨, 혼자 수십명의 일본군을 유인해 내는 이장하의 빠른 발, 이 둘의 뒤를 받쳐주는 조우진의 백발백중 사격술은 무고한 양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일본군과 대비되며 십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특히 배우들의 몸에 보디캠을 달아 촬영한 원신연 감독의 연출력은 액션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

초반 일본군 초소를 급습한 황해철이 벽에 붉은 피로 ‘대한독립만세’를 써내려가는 장면을 시작으로 <봉오동 전투>는 시종일관 애국심을 자극하는 대사와 장면들로 넘쳐난다. “어제의 농사꾼이 오늘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라는 직설적 대사는 현재 상황과도 오버랩되며 “국민 모두가 독립군”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각 지방에서 모인 독립군이 “감자”라는 한 단어를 팔도사투리로 표현하는 장면 역시 영화의 이런 지향점을 명확히 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실’에 근거하기에 플롯의 새로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일본군을 봉오동까지 유인하는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비슷한 전투 장면이 반복돼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극적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삽입한 과장된 전투 장면도 다소 어색하고 촌스럽다. 다만 중간중간 조우진과 유해진이 합을 맞춘 티키타카(빠르게 주고받는 대화)가 자아내는 웃음은 가점 요소다. 봉오동 일대를 재현하기 위해 15개월 공들여 찾았다는 촬영지의 장대함, 러닝타임 내내 쉴 틈 없이 뛰고 달린 배우들의 열연도 탄성을 자아낸다.

다큐멘터리 <김복동>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의 삶…<김복동>

“나이는 구십 넷, 이름은 김복동.” 다큐멘터리 <김복동>(8월8일 개봉)은 지난 19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걸어온 발자취를 차분하게 되짚는 작품이다.

영화는 김복동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인권운동가, 평화활동가의 측면에서 재조명한다. 처음으로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던 육성 녹음부터 미국·유럽 등 전 세계를 순회하며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강연을 펼쳤던 모습,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과 재일 조선고교생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는 장면, 아픈 몸을 이끌고 죽기 직전까지 수요시위를 이끌던 모습 등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과 슬픔을 넘은 존경과 우러름이 샘솟는다. 영화는 또한 고노 담화를 번복하고 사죄 없이 망언을 일삼는 아베 정부, 지난 2015년 피해자 의사를 무시한 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서명한 박근혜 정부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 싸움이 왜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인지를 밝힌다.

인상적인 것은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으로 끝까지 싸움의 의지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의 투쟁 뿐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거나 동료 피해자 할머니와 활동가, 손녀뻘인 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2011년부터 지근거리에서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 미디어몽구(김정환)의 활동은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다큐멘터리 <김복동>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언제까지 피해자 타령과 사죄 타령만 할 거냐”는,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온기를 돌게 하는 것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거리에 나선 나이 어린 학생들의 끝없는 동참이다. “내 힘닿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 거야. 여러분도 함께 싸워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외침에 응답한 미래 세대의 호응은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이제 단 21명. 점차 줄어가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숫자는 왜 이 문제에 대한 우리 모두의 동참이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먹먹함을 더하는 것은 재능기부로 참여한 배우 한지민의 담담한 내레이션과 영화의 마지막에 깔리는 김복동 헌정곡 ‘꽃’을 부른 가수 윤미래의 목소리다.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 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 그땐 행복 할래요/ 고단했던 날들/ 이제 잠시 쉬어요/ 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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