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크린에는 유난히 10대 배우들의 활약이 뜨겁다. 독립영화에 한 획을 그을 작품으로 꼽히는 <우리집>과 <벌새> 역시 모두 10대가 주연을 맡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애매한 나이”라고 했다.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성인 배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릴 나이도 아니니까. 하지만 2000년대에 태어난 이 ‘신예’들은 치열하고 솔직하게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며 충무로의 새 시대를 예고한다.
영화 ‘벌새’의 주연을 연기한 올해 고1의 박지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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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치는 거 처음 해봤어요.“ “식상하지만 길거리 캐스팅이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길을 가다 ‘연기 좀 배워볼래?’라는 제안을 받았죠.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연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한 번 해보자 싶었어요.” 난생처음 하는 인터뷰라면서도 머뭇거리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22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카페에서 마주한 <벌새>(김보라 감독·29일 개봉)의 주연배우 박지후(16)는 영화 속 조용한 ‘은희’와 달리 경쾌하고 명랑했다. “중1 때 첫 단편 <나만 없는 집>을 찍는데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이후 오디션 사이트를 뒤지다 <벌새>를 알게 됐는데, 너무 간절하게 욕심이 나는 거예요. 오디션 때 문을 나서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감독님, 저는 볼매(볼수록 매력)예요’라고 한마디를 던졌죠. 나중에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당돌하고 순수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면이 좋았다’고.” 그렇게 잡은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았다. <벌새>를 세계 유수의 영화제 25관왕에 올렸으며, 제18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에서는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벌새>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은희’라는 한 소녀의 개인적 서사에 시적인 감성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제가 2003년생이라(웃음) 그 시대를 잘 알진 못하죠. 하지만 사춘기를 겪는 혼란스러운 10대의 감정은 비슷할 거라 생각했어요. 은희가 말이 많은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에 눈빛과 감정선에 집중했어요.” 유튜브로 성수대교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그 시대를 겪은 부모님에게 물어보며 준비했지만, 어리둥절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삐삐 치는 거랑 카세트테이프 녹음하는 건 처음 해봤어요. 극 중 담임이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가자’는 구호를 외치게 하는 장면, 날라리 이름 적어 내라고 하는 장면 등에선 빵 터지기도 했죠. 요즘 중고생은 스트레스 풀러 코인 노래방 가는 게 일상인데. 푸하하.”
<벌새>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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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주연 맡은 중학생 배우 김나연.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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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챗 소품도 직접 만들었죠.” 6살, 엄마 손에 이끌려 연기학원에 등록한 건 순전히 “낯가림이 심한 성격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누가 “예쁘네~”라는 칭찬만 건네도 수저를 들 수 없었다. 연기학원 선생님에게 인사를 먼저 하기까지 딱 6개월이 걸렸다. “근데 이상하죠? 친구들이 광고 모델도 하고 영화 오디션도 보니까 막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엄마는 ‘네 성격에 무슨 연기냐’고 말렸거든요. 재미있더라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도.” 올해 독립영화 최고 기대작 중 한 편인 <우리집>(윤가은 감독)에서 주인공 ‘하나’ 역을 맡은 14살 김나연은 수줍어하면서도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를 해나갔다. 지난 20일 <한겨레>에서 만난 김나연은 엄마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며 “영화를 찍을 땐 6학년이었지만 이젠 중학생이 됐으니 더는 아이가 아니니까”라고 했다. <우리집>은 부모님의 불화로 전전긍긍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하나와 잦은 이사가 지긋지긋한 유미(김시아)와 동생 유진(주예림)이 우연히 만나 여름방학 동안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드라마나 단편영화에서 작은 배역을 맡은 적은 있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건 <우리집>이 처음이에요. 오디션 과정이 3개월이나 걸렸는데, 보통 오디션과 달랐어요. 상황극과 즉흥극 위주였거든요. 감독님께서 제가 집중력이 좋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대요. 음, 6학년치곤 키(162㎝)가 좀 커서 살짝 고민했다고는 하시던데. 히히.”
영화 <우리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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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성유빈 등 눈도장
어린배우 배려 ‘촬영수칙’도 등장
영화 <보희와 녹양>의 주연 배우 김주아(왼쪽)와 안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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