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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 옷장 속의 추억 ‘나니아 연대기’

등록 2005-12-27 13:38수정 2005-12-27 13:38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글쎄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에 옷장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다른가 보다. 비록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괴물을 다룬 탓에 끊임없는 악평 속에서 잊혀졌다지만, 지난 여름에 개봉한 <부기맨>도 옷장에 관한 판타지를 다룬 영화이며, 오는 12월29일에 개봉하는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하 <나니아 연대기>) 역시 옷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몸집이 작은 어린이이기 때문에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곳, 살포시 문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다면, 정체 모를 긴장감과 더불어 많은 상상을 즐길 수 있는 곳, 황홀한 상상이든, 악몽같은 상상이든, 옷장은 때때로 어린이만의 낙원이 된다. 원작자 C.S. 루이스가 동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잡은 시대배경도 이 옷장 속의 판타지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나니아 연대기>의 배경이 되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초기의,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해 비시 정부가 들어설 무렵의 영국은 독일 공군의 공습 속에서 외로운 저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꿈과 희망을 키우기보다 일찍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배우고,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다운 꿈을 키울 여력이 없는 시절, 그런 시절의 판타지라면 책을 읽는 독자에게나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나 더 실감나게 와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암울한 전쟁의 공포로부터 한적한 시골로 도피한 네 남매는 저택의 옷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그곳은 신비의 나라 '나니아'였다.<나니아 연대기>는 말했지. "해리 포터는 잊어라!"

리암 니슨이 목소리를 맡은 사자 \'에슬란\'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리암 니슨이 목소리를 맡은 사자 \'에슬란\'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4편인 <불의 잔>을 본 여운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보여준 실감나는 스릴과 캐릭터들이 갖는 다양한 개성에서 비롯되는 치밀한 스토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원작자인 J.K 롤링도 자신의 작품이 <나니아 연대기>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으며, <나니아 연대기>는 J.R.R. 톨킨의 <반지 전쟁>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판타지 문학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은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발견했던 그 진수를 다시 맛보기를 원한다.하지만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나니아 연대기>를 즐겁게 감상하는 지름길이 된다고 본다. <나니아 연대기>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달리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 역시 웬만한 스릴러나 추리 소설에 걸맞는 스릴을 가지고 있던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달리 비교적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남매가 옷장 속의 또 하나의 세상을 접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도 초반부의 비중을 너무 높인 것 같다. 특히나 성격 급하고, 꽉 차인 이야기 구조를 중요시여기는 한국 관객들이기 때문에 이 초반부의 지루함은 다소 비약해서 말한다면 욕 먹기 딱 좋은 전형적인 지루함으로 보인다.이 지루함에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다고 본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역인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등의 배우들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거치면서 더이상 아역배우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될 연기력의 소유자가 됐지만, <나니아 연대기>는 이제야 출발점을 맞는 영화이기 때문에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원점에서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역들이 선보였던 실감나는 연기력을 기억하는 관객들로서는 이들의 연기 역시 심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2,000명이 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캐스팅된 배우들이지만, 이렇다 할 경험이 없다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막 출발점에서 발을 내딛은 배우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미숙함은 분명히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남매임에도 불구하고, 그 확실한 개성을 살리지 못한 연출의 미숙함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중세 분위기 물씬 풍기는 전투 장면의 매력은 만만치 않다.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중세 분위기 물씬 풍기는 전투 장면의 매력은 만만치 않다.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나니아 연대기>는 말했지. "조연진을 기대해!"주목해야 할 이들은 오히려 조연진들이다. 비록 갖가지 동물 캐릭터로 등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연진들이 더빙 처리된 목소리로만 등장하고 있지만, 그 무게만은 <해리 포터> 시리즈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출연진들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자 '에슬란'의 목소리를 맡은 리암 니슨을 비롯해 '비버'의 목소리를 맡은 레이 윈스톤은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가 일품인 배우들로서,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큰 매력으로 자리잡는다. 혹시 초반부의 다소 늘어진 스토리에 맥이 빠진 관객이라면 그들의 목소리에서 다시 몰입에 대한 의지를 되찾을 수 있을 듯하다.게다가 '나니아'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장본인 '하얀 마녀' 역의 틸다 스윈튼 역시 얼음같은 냉철함 속에서 이따금씩 번찍이는 눈빛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물론 비슷한 배역인 <그림 형제-마르바덴의 비밀>의 '겨울 여왕' 모니카 벨루치와 비교할만한 매력은 못되지만, 만 45세의 나이를 연상시키기 힘든 중성적이면서도 이지적인 매력은 생각보다 많은 눈길을 끌을 수 있을 듯하다. <나니아 연대기>는 이렇듯 백전노장들이 다수 등장하는 조연진들의 풍부한 경험이 돋보인다.


<나니아 연대기>는 말했지. "원작을 읽어라!"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원작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한다는 점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어른과 아이가 모두 공감할만한 기초적인 선과 악의 개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 세계관을 근거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그래서 굳이 원작을 읽지 않아도 폭넓게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와닿는 영화였다.하지만 <나니아 연대기>는 단순히 상상의 세계를 다룬다는 우리의 선입견 이상의 다양한 상상이 접근할 수 있는 넓은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원작에 대한 파악은 어느 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종교적인 해석이 엿보이는 부분일수록 그 파악은 더욱 중요해진다. <해리 포터>와는 달리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선과 악의 보편타당한 진리를 넘어 그 속에 숨어있는 도덕적인 딜레마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갈등과 새로운 희망 등은 아무래도 원작 소설을 통해 먼저 확인하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속도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현대의 영화 관객으로서는 초반의 지루함을 견뎌가면서 감상에 대한 몰입까지 추구한다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지루함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원작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좋다.<나니아 연대기>는 말했지. "옷장 속을 뒤져라!"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환상의 세계. 누구나 한번쯤은 어린 시절에 그런 환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했을 것이며, 어떤 이는 로보트를 조종하며 우주의 거대 악당들을 혼내주었을 것이다. 혹시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을 애독하는 관객이라면, 어린 날의 이런 상상이 얼마나 즐거운 추억이 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0세기 소년>은 어린 날의 상상이 끔찍한 현실이 되어 주인공들에게 목숨을 걸 것을 요구하지만 말이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옷장 속의 추억'은 수많은 기병대를 거느린 중세의 기병대장에서 로보트의 지휘자나 초능력자로 변했지만, 그 본질만은 여전하기 때문에 <나니아 연대기>는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뜻깊은 영화이자 소설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기억 어딘가에 깊이 잠들어 있는 환상의 추억, 그 추억은 어느 옷장에 숨어 있을까? 그 추억의 옷장을 열어보자. 혹시 마녀와 사자든, 로보트든, 뭐라도 나온다면 당황하지 말고, 주저없이 들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 세계는 분명히 당신이 꿈꾸던 어린 날의 황홀한 추억의 세계일 것이다.

추억의 옷장, 그 아련한 환상의 세계를 기억해보자.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추억의 옷장, 그 아련한 환상의 세계를 기억해보자. ⓒ 월트 디즈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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