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8 17:22
수정 : 2019.10.0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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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왕 감독의 신작 <커밍 홈 어게인>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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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커밍 홈 어게인’ 리뷰+인터뷰]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 에세이 영화화
암투병 중인 엄마 간호하는 아들 이야기
가수 이문세 노래 ‘옛사랑’ 삽입 돋보여
“돌아가신 어머니에 속죄하는 작품
이민가족 영화 제작하기 힘든 상황
자본 간섭 덜 받는 작업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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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왕 감독의 신작 <커밍 홈 어게인>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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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왕 감독이 <뉴요커> 잡지에서 이창래 작가의 에세이 <커밍 홈 어게인>을 처음 읽은 건 1995년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던 시절의 기억을 담은 글이었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진정성이 느껴져 대단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웨인 왕 감독은 최근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조이 럭 클럽>(1993)과 <스모크>(1995)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웨인 왕 감독은 당시 이창래 작가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의 소설 <제스처 라이프> 각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감한 소재의 영화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좀처럼 없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2014년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아온 웨인 왕 감독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 작업에 바빠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 몇주를 함께하지 못한 탓에 죄책감이 컸어요.” 오래전 읽은 <커밍 홈 어게인>이 문득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그는 지난해 여름 이창래 작가를 만나 <커밍 홈 어게인>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둘이 함께 각색했고 여기저기 아는 자원을 총동원해 독립영화처럼 만들었다. “이 영화를 만든 건 어머니의 죽음에 속죄하는 나만의 방식인 셈이죠.”
영화는 지난 6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으로 상영됐다. 웨인 왕 감독은 직접 부산에 와서 기자회견 등을 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방한을 취소했다. “면도하다 생긴 상처가 악화해 포도상구균에 감염됐어요. 상태가 무척 안 좋았다가 다행히 지난 이틀 동안 급속도로 회복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그는 영화를 만든 계기 등을 설명한 영상 메시지를 영화제 쪽에 보냈고, 이는 영화 앞에 삽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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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모자 이야기를 담은 영화 <커밍 홈 어게인>을 연출한 웨인 왕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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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창래(저스틴 전)는 위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재키 청)를 돌보기 위해 뉴욕 월스트리트의 직장을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 집으로 돌아온다. 교수인 아버지는 학교 일로 집을 자주 비우고, 누나는 한국에서 일한다. 카메라는 창래가 어머니를 간호하는 모습과 과거 회상 장면을 느린 호흡으로 번갈아 담아낸다. 모자 사이에는 특별한 사건도, 긴 대사도 없다. 하지만 이들 모자를 멀찍이서 관조하다 보면 어느새 깊은 감정의 골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아플 수도 있는 부모나 가족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사람의 삶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죽음마저도 삶의 변화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영화에는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이 주요하게 쓰인다. 어머니가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실은 과거 남편의 외도를 직감하게 한, 안 좋은 기억을 담은 노래다. “좋은 노래가 나빠질 수 있다니…. 신기해.” 어머니는 중얼거린다. 웨인 왕 감독은 “한국의 오래된 사랑 노래를 이 대목에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22년 전 홍콩에서 <차이니즈 박스>를 촬영할 때 한국인 스태프가 이 노래를 들려줘서 처음 알게 됐다. 그때 빌코 필라치 촬영감독이 ‘옛사랑’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웨인 왕 감독은 저작권자인 이영훈 작곡가의 아들 정환씨에게 편지를 보내 사용권을 얻었다.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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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왕 감독의 신작 <커밍 홈 어게인>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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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인 웨인 왕 감독은 <조이 럭 클럽>에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을 다룬 데 이어 이번 영화에서 한국계 이민자 가족을 다뤘다.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연대감 같은 걸 느끼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등에 짊어진 짐 같아요. 그 어떤 제작사도 진정성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아요. 요즘 들어 ‘사이비’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건 ‘가짜 뉴스’와도 같죠. 짊어진 짐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어요.”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여러 편 연출하기도 한 그는 “앞으로는 <커밍 홈 어게인>처럼 자본의 간섭을 덜 받는 독립영화 형태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울림을 주는 아시아계 미국인 이야기를 몇편 더 영화로 만드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언젠가 그가 만든 일본군 위안부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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