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7 18:20
수정 : 2019.10.28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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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5일째인 27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관람객들이 상영관에 들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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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문제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
개봉 전 평점 테러·악플 등 논란에도
여성 차별 풀어낸 ‘가족 영화’에
성별 넘어선 공감·입소문 늘며 흥행
“갈등 조장? 이해를 구하는 이야기”
일부 선입견에 ‘성찰해야’ 목소리
원작 소설도 판매량 늘며 다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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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5일째인 27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관람객들이 상영관에 들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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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금 같은 내 새끼, 옥 같은 내 새끼….”
엄마(김미경)가 딸 지영(정유미)을 끌어안으며 이 말을 하는 순간, 극장 안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씨지브이(CGV) 여의도. 비교적 이른 시간대인 오전 11시 시작한 <82년생 김지영> 상영관은 3분의 2 넘게 자리가 차 있었다. 관객 이아무개(46)씨는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명절 시가 장면이 특히 그랬다. 영화를 보며 단지 남녀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불평등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지만, 고2 딸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5일째인 이날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를 당하고 주연배우들이 악플에 시달리는 등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렀다. 네이버 누리꾼 평점은 대부분 1점 아니면 10점으로 갈렸다. 이날 현재 평균은 6.06인데, 성별로 보면 남자 2.21, 여자 9.50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개봉 이후 영화에 대한 호평과 지지가 이어지면서 평점 테러를 가뿐히 넘어섰다. 영화를 본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이날 현재 9.59이며, 남자 9.53, 여자 9.62로 거의 비슷하다.
여성이 겪어온 일상의 차별과 설움을 축약해 보여준 영화인 만큼 여성 관객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다. 씨지브이가 개봉일부터 이날까지 든 관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자가 77%, 남자가 23%다. 연령별로는 20대 38%, 30대 32%, 40대 19%, 50대 10% 차례다. 20~30대 여성 관객이 특히 큰 호응을 보인다는 얘기다. 이들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에 적극 추천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부모님께 영화 표를 끊어드리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관람을 권유하는 식이다. 관객 정효천(29)씨는 “엄마 세대는 더한 차별을 겪고도 인식조차 못 하셨다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영화를 보여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트위터에서는 영화 홍보 글을 리트위트(전파)하면 추첨해서 예매권을 주는 이벤트를 일반인들이 앞장서 주최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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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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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차별이라는 주제를 보편적인 가족 이야기로 풀어간 것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관객 김정은(34)씨는 “할머니, 외할머니,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시누이 등 평범하면서도 각각의 시대와 처지를 상징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크게 다가왔다. 아빠가 남동생만 챙기는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다. 이런 가족 얘기에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작 소설을 대중 영화의 문법에 맞게 가족 영화 느낌으로 잘 만들었다. 처음엔 여성들만 보는 영화라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가족 영화로서도 감동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남성 관객도 많이 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작보다 많이 순화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그렸는데도 일부 격렬한 반대가 나오는 사회 분위기를 성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영화는 흔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당신이 남자인데 주변엔 그런 삶을 산 여자가 없다고 느낀다면, 주변 여성들이 당신을 ‘얘기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여기고 얘기 안 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제 고통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다”고 꼬집었다. 김선영 평론가도 “갈등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타자의 이해를 구하는 평화주의적인 이야기인데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건 그만큼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와 행동)가 강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에스엔에스에선 이 영화로 남자친구와 갈등을 겪는 사례와 관련해 “남자친구를 계속 만날지 헤어질지를 가리는 척도가 되는 영화”라는 등의 언급도 적지 않다.
영화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원작 소설도 다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소설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난해 3월 이후 1년7개월 만이다. 예스24에서도 주간 1위에 올랐고, 교보문고에서는 3위에 올랐다. 책을 출간한 민음사는 “영화 개봉 확정 이후부터 판매량이 다시 늘어 누적 123만부가량 팔렸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서울 광진구 능동의 한 서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던 50대 직장인 여성은 “영화가 개봉된다고 해서 책을 먼저 보려고 왔다. 주인공이 나보다 나이는 어려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아 공감된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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