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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6 17:00 수정 : 2019.12.17 02:35

켄 로치 감독의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켄 로치 감독 ‘미안해요 리키’ 19일 개봉]

큰 울림 남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 황금종려상 수상했던 켄 로치 감독

저소득층 무료 푸드뱅크 풍경에
은퇴도 미루고 노동자 삶 파고들어

켄 로치 감독의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국의 관료주의적인 복지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사력을 다하는 노인 다니엘 블레이크의 얘기는 큰 감동과 울림을 남겼다. 당시 이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은퇴작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뒤, 켄 로치 감독이 돌아왔다. 은퇴를 미루고 만든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가 19일 개봉한다. 그가 메가폰을 다시 든 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촬영 당시 조사를 위해 저소득층이 무료로 음식을 얻는 푸드뱅크에 갔다 마주한 풍경 때문이었다. 그곳을 찾은 많은 이들은 정규직이 아니라 파트타임이나 ‘0시간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를 새로운 형태의 착취라고 생각한 켄 로치 감독은 이른바 ‘긱 이코노미’(정규직보다 임시직·프리랜서 등을 선호하는 현상)의 문제점을 알리는 영화를 구상했다. 그 결과물이 <미안해요, 리키>다.

건축회사에 다니던 리키(크리스 히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실업자가 되고, 주택 융자도 받지 못하게 된다. 일용직 막노동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리던 가장 리키는 택배 기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택배회사의 매니저는 리키에게 ‘채용’이 아니라 ‘합류’임을 분명히 한다. 직원이 아니라 자영업자로서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는 리키를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음을 뜻한다. 리키는 집에 하나밖에 없는 차를 팔아 택배 차량을 마련하고 일을 시작한다. 그를 기다리는 건 화장실 대용으로 쓸 빈 플라스틱 병과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일해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휴가를 쓰려면 자기 돈을 들여 대체 기사를 구해야 한다.

켄 로치 감독의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그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건당 돈을 받는 ‘0시간 계약’ 노동자다. 아침 7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끼니를 걸러가며 일하기 일쑤다. 주말 저녁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가 불려 나가기도 한다. 부모의 장시간 노동으로 방치된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킨다. 켄 로치 감독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탈출구 없이 추락하는 한 가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켄 로치 감독은 줄곧 서민과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1963년 입사한 <비비시>(BBC)에서 방송 드라마를 연출할 때부터 그랬다. 홈리스가 된 가족 얘기를 담은 <캐시 컴 홈>(1966)은 방송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계로 온 그는 <랜드 앤 프리덤>(1995),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등 자유를 향한 투쟁을 그리는 한편, <레이닝 스톤>(1993), <내 이름은 조>(1998), <빵과 장미>(2000), <앤젤스 셰어>(2012), <지미스 홀>(2014) 등을 통해 서민과 노동자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1936년생으로 올해 83살이 된 거장은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음을 <미안해요, 리키>로 다시 한번 증명했다. 포기할 줄 모르는 그의 질문에 이제는 우리가 답할 때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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