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칸 영화제의 황금카메라상과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특별상을 두 손에 거머쥐며 신인감독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린 미란다 줄라이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27일 개봉한다. <미 앤 유…>의 소재는 새롭지 않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저마다 하나씩 병적 징후를 가진 사람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단절의 강. 어른보다 ‘까진’ 아이들. <아메리칸 뷰티>나 <숏컷>, 토드 솔로즈의 냉기 흐르는 가족영화 등 ‘인디’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했던 사람과 풍경들이다. 그러나 <미 앤 유…>는 냉소로 일관하는 이런 영화들과 달리 ‘꾸밈없이’ 유쾌하고 다정하다.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은 없지만 감독은 하찮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은 어긋나고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으며 삐걱거림의 하모니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아니겠느냐 말한다. 막 이혼을 당해 낯선 동네로 이사온 리처드는 두 아들을 걱정하지만 정작 마음을 못추스리는 건 자신이다. 10대의 큰 아들 피터는 성적인 도발로 자신이 어른임을 확인하려는 동급생들에게 성적 실험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고 둘째인 6살 로비는 성인 채팅방에서 묘령의 여인을 흥분시키는 데 재미를 들였다. 노약자 택시기사를 하면서 비디오 아티스트를 꿈꾸는 크리스틴은 백화점 신발 코너에서 일하는 리처드에게 매력을 느끼고 접근하지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리처드에게 면박당한다. <미 앤 유…>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각각 매우 느슨한 끈으로 연결돼 있다. 한 예로 리처드를 좋아하는 크리스틴이 작품을 전달하기 위해 만났다가 거절당하는 미술관 큐레이터가 바로 로비와 음란채팅을 하는 익명의 여인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끈은 말하자면 ‘점선’이고 각자들은 형식적인 만남 뒤에서 고립된 자기세계에 살고 있다. 크리스틴을 직접 연기한 감독은 이 약하고 복잡하게 엉킨 끈을 조심스럽게 풀면서 디지털 시대의 소통 꿈꾸기라는 주제를 펼쳐나간다. <미 앤 유…>의 줄거리는 산만하지만 마술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 초반 운전자의 실수로 차 위에 놓인 채 위태롭게 딸려가던 금붕어를 살리기 위해 크리스틴이 다른 차에서 애를 쓰다가 결국 떨어진 금붕어에게 조의를 표하는 장면은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명상을 담은 한 편의 시처럼 보인다. 우연한 기회에 사람이 물고기의 짧은 삶을 응시하게 되듯 크리스틴과 리처드, 피터와 애늙은이 같은 옆집 꼬마, 로비와 미술관 큐레이터는 둘 사이에 놓여있던 높은 벽이 스르르 열리며 서로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공명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 순간들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발가게에 처음 찾아온 크리스틴의 상처난 복숭아 뼈를 보면서 “사람들은 발의 통증을 참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라고 던지는 리처드의 말처럼 고립과 소통불능을 인간의 숙명인 것마냥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는 게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쉼없이 말을 거는 이 영화에 흐르는 경쾌한 낙관주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하이퍼텍나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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