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의 소설 <난.쏘.공>을 연상시키는 그 시절의 비극. ⓒ 현진씨네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우리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여전히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는 소설이다.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을 가진 그곳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의 운명을 맞이한다. 소설에서 '아버지'가 희망의 나라인 '달나라'를 향해 굴뚝에서 날린 마지막 종이비행기와 쇠공은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매개체였던 셈이다. 그 종이비행기와 쇠공은 여전히 달나라에 도착하지 못했다. 도착하지 못한 채 추락한 종이비행기를 두고, 탈옥범 지강헌은 이렇게 정의내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투명한, 너무 투명한 화면이 보여주는 그 시대의 자화상
유전무죄, 무전유죄.
언제부터 생겨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식과는 동떨어진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 사이에서는 상식처럼 오가는 말이기도 하다.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사업을 앞두고, 외국인들의 방문에 대비해 공권력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자화상을 감추기 위해 '돈도 없고, 뒷배경도 없는' 그들의 터전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밀어버린다. 저항? 저항은 무슨. 국가가 하겠다는데 어딜 감히..
그렇다. 국가가 하겠다는데, 돈 없는 서민이 무슨 힘으로 그걸 막겠는가? 최후의 발악은 국가가 고용한 깡패와 경찰에 의해 소리없이 묻혀져 내린다. 영화 <홀리데이>는 그로부터 비롯된 '지강혁'의 분노를 다룬다. 탈옥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탈옥 과정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분노한 이유와 실천에 옮긴 이유, 즉, '왜'가 중요한 영화다.
<홀리데이>가 초반에 보여주는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화면은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형한 적나라한 리얼리즘의 상징이 된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화면은 대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상징이 되지만, 이렇듯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에는 그 이상 가는 처절함을 관객에게 맛보인다. 암울했던 우리 현대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이미지가 투영된 배우들의 열연
영화 <홀리데이>는 '지강혁(이성재)'과 '김안석(최민수)'라는 상반된 캐릭터의 대결을 중심 축으로 전개된다. 돈 없고, '백' 없는 서민의 상징 '지강혁'은 경찰 '김안석'이 쏜 총으로 인해 동생을 잃고,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다 교도소로 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김안석은 그 교도소의 부소장으로 부임한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운명은, 그리고 신은 이따금씩 이렇게 악의적인 장난을 즐긴다.
이 캐릭터들은 우리 현대사의 축을 이루는 서민과 공권력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들이다. 굴곡의 삶을 살던 서민의 역사가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 '지강혁'은 그렇다 쳐도, 공권력의 상징인 '김안석'이 참 재미있는 캐릭터다.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연희동의 '그분'을 연상시키고 있으며, 보는 이를 움찔하게 만드는 그 미소와 함께 드러나는 이 속의 '금조각'은 그 시절의 금테 두른 공권력을 연상시킨다. 교도소에서 벌이는 그들의 치열한 대결은 '저항'과 '굴복'을 놓고 벌이는 우리 현대사의 역사가 스며들은 상징적인 대결인 셈이다.
이 대결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선보이는 이성재는 물론이고, 그간의 패턴에서 벗어난 최민수의 연기도 화려하게 빛난다. 물론 여전히 한 카리스마하는 최민수 특유의 눈빛의 힘은 여전하지만, 그동안 최민수의 상징이었고, 결과적으로 최민수를 짓눌러왔던 '카리스마'는 다소 변형된 형태로 관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형님'이 이제 변신 좀 하시려는 것 같다.
되살아난 < Holiday >의 감동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만약 꼭두각시가 당신을 미소짓게 한다면,)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날 욕할거에요.)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날 욕할거에요. 날 욕할거에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계기로 다시 유행해 198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했던 그룹 BeeGees의 < Holiday >는 '지강혁'과 그의 교도소 동기들이 벌인 희대의 인질극과 영화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지강혁'과 그의 교도소 동기들은 '사회보호법'이라는 이름의 공권력의 또다른 횡포에 대한 선전포고를 선언한다. 죄에 따른 죄값을 충분히 치루었음에도,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기준이 모호한 이유로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옥살이를 강요하는 이 전대미문의 법은 그들에게 최후의 행동을 요구한 셈이다. 힘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그들의 범죄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죄값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그분'의 납치에 실패한 뒤, 들어가게 된 어느 가정집, 그곳이 마지막 행동이 벌어지는 무대가 된다. '지강혁'은 마지막 소원으로 BeeGees의 < Holiday >를 요구한다. 왜 하필 < Holiday >였을까?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인질범'답지 않은 낭만적이면서도 꿈같은 요구 조건이다. 결국 그에게는 휴식과 해방이 필요했던 것일까?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적인 행사 앞에서 억지 웃음을 강요하며, 치부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강제적인 힘을 행사하는 공권력에게 휴식을 요구하는 것일까? < Holiday >는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시대의 비극을 느끼게 해주는 은유로 가득한 가사들로 이루어진 노래다. 억지웃음을 짓지 않으면, 비난하고 욕하는 시대. '사회보호법'이라는 이름 아래 2번의 감옥살이를 강요하던 그 시대. 그 시대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결국 '휴식'이고, '휴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당연히 '해방'이지만 말이다. 일말의 '휴식'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를 향한 인질극이었던 것 같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여전한 그 비극을 향하여 앞서 언급했지만, 영화 <홀리데이>는 이례적으로 티 하나 없이 맑은 화면이 갖는 힘은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범죄자 미화' 논란이 오갈 정도로 그들이 벌이는 인질극의 설득력이 큰 이유는 그 투명한 화면 아래 벌어지는 온갖 비극이 여과없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제법 민주화됐다는 요즘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서민들은 시대로부터 '휴식'을 꿈꾸고 있다. 단지 남들만큼 잘 먹고 잘 사는게 꿈인 우리 서민들은 늘 시대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했고, 인내를 요구받았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 Holiday >의 울림이 여전한 이유는 바로 그 시대의 비극은 그만큼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지금도 '희생'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종이비행기와 작은 공이 달나라에 닿기까지, BeeGees는 여전히 휴식을 노래할 것 같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의 '권력'의 상징들이 '김우석(최민수)'에게 엿보인다. ⓒ 현진씨네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되살아난 < Holiday >의 감동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만약 꼭두각시가 당신을 미소짓게 한다면,)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날 욕할거에요.)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날 욕할거에요. 날 욕할거에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계기로 다시 유행해 198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했던 그룹 BeeGees의 < Holiday >는 '지강혁'과 그의 교도소 동기들이 벌인 희대의 인질극과 영화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지강혁'과 그의 교도소 동기들은 '사회보호법'이라는 이름의 공권력의 또다른 횡포에 대한 선전포고를 선언한다. 죄에 따른 죄값을 충분히 치루었음에도,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기준이 모호한 이유로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옥살이를 강요하는 이 전대미문의 법은 그들에게 최후의 행동을 요구한 셈이다. 힘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그들의 범죄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죄값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그분'의 납치에 실패한 뒤, 들어가게 된 어느 가정집, 그곳이 마지막 행동이 벌어지는 무대가 된다. '지강혁'은 마지막 소원으로 BeeGees의 < Holiday >를 요구한다. 왜 하필 < Holiday >였을까?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인질범'답지 않은 낭만적이면서도 꿈같은 요구 조건이다. 결국 그에게는 휴식과 해방이 필요했던 것일까?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적인 행사 앞에서 억지 웃음을 강요하며, 치부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강제적인 힘을 행사하는 공권력에게 휴식을 요구하는 것일까? < Holiday >는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시대의 비극을 느끼게 해주는 은유로 가득한 가사들로 이루어진 노래다. 억지웃음을 짓지 않으면, 비난하고 욕하는 시대. '사회보호법'이라는 이름 아래 2번의 감옥살이를 강요하던 그 시대. 그 시대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결국 '휴식'이고, '휴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당연히 '해방'이지만 말이다. 일말의 '휴식'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를 향한 인질극이었던 것 같다.
이성재는 물론이고, 인질범에게 감정이 이끌리는 소녀를 연기한 조안의 연기도 눈여겨볼만 하다. ⓒ 현진씨네마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유전무죄 무전유죄, 여전한 그 비극을 향하여 앞서 언급했지만, 영화 <홀리데이>는 이례적으로 티 하나 없이 맑은 화면이 갖는 힘은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범죄자 미화' 논란이 오갈 정도로 그들이 벌이는 인질극의 설득력이 큰 이유는 그 투명한 화면 아래 벌어지는 온갖 비극이 여과없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제법 민주화됐다는 요즘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서민들은 시대로부터 '휴식'을 꿈꾸고 있다. 단지 남들만큼 잘 먹고 잘 사는게 꿈인 우리 서민들은 늘 시대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했고, 인내를 요구받았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 Holiday >의 울림이 여전한 이유는 바로 그 시대의 비극은 그만큼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지금도 '희생'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종이비행기와 작은 공이 달나라에 닿기까지, BeeGees는 여전히 휴식을 노래할 것 같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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