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통키>의 주인공 '나통키' ⓒ SBS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예쁜 괴도, '천사소녀 네티'를 기억하십니까?>를 쓰고 난 뒤, 나는 제법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던 1990년대 중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른바 '마지막 국딩 세대'들의 진정한 로망이 담긴 만화영화는 따로 있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만화영화를 빼놓고는 '마지막 국딩 세대'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이 만화는 어른들도 한두번 이상은 다 들어본 만화영화다. 뜸들이지 않고 바로 말하겠다. 바로 <피구왕 통키>다.
'불꽃 마크'에 대한 그 시절 어린이들의 로망
아침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어른들도 한두번쯤은 들어본 이 주제곡, 이 노래가 울리던 순간 아이들의 고함 소리로 시끄럽던 동네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당연하다. 이 노래가 울리면, 우리는 거의 '자동'에 가까울 정도로 TV 앞에 앉아 붉은 머리 소년이 던지는 힘찬 '불꽃슛'을 음미했다. 그때만 해도 '피구'라는 운동이 어린이들에게 익숙치 않았지만, <피구왕 통키>는 어린이들에게 '피구'의 참맛을 일깨워준다.
그렇듯 각 학교의 점심 시간과 체육 시간을 '지배'할 정도로 열풍이 불었던 피구는 곧 또다른 유행을 불러 일으킨다. 공의 재질이 부드럽고, 잘 튕겨올라 '탱탱볼'이라 부르는 공이 문구점에서 개당 1천원에 팔리던 그 시절, 어느날 갑자기 출시된, '불꽃 마크'가 새겨진 노랑색 탱탱볼이 무려 4천원의 고가를 자랑하며, 어린이들의 눈 앞에 등장한 것이다. 나 역시 이 유행에 뒤쳐질 수 없어 부모님께 이 공을 사달라고 사정해봤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부모님은 쉽게 사주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간절한 애원이 멈추질 않자, 어머니는 내가 가지고 있던 녹색 탱탱볼에 붉은색 유성매직펜으로 '불꽃 마크'를 그려주시며, 이것으로 만족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장의 심정은 참담했지만,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는데 별 수 없었다. 만족스럽지 못한대로 그 공을 가지고 노는 방법 밖에 달리 방법이 있을리가 있나.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가의 공을 구입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자신의 탱탱볼에 화려하게 수놓인 '불꽃 마크'를 의기양양하게 내밀며 피구를 즐겼고, 이 유행은 각 초등학교의 반마다 배치된 공이라면 배구공, 축구공 가릴 것 없이 피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공이란 공은 모두 '불꽃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너희들 정말 초등학생 맞니?
어린이들을 이렇듯 '불꽃 마크'에 미치게 만든 <피구왕 통키>. 그 아련한 이름의 추억은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캐릭터들과 이야기로 가득찼던 만화영화였다.
참고로 만화가 김성모의 작품의 대표적인 주인공 '강건마'는 야구선수로서는 시속 166km에 육박하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강속구를 던지며, 액션스타로서는 '108계단 콤보'라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기술을 선보인다. 하지만 <피구왕 통키>는 이렇게 대단한 '강건마'조차도 혀를 내두를 신기를 구사하는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먼저 이들은 10미터 이상의 고난도 점프 정도는 가볍게 구사한다. 특히 '통키'의 필살기 '불꽃 슛'은 체력 소모가 심해 하루에 한번 밖에 던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위력을 말해주듯이, 한번 던지기만 하면 경기장의 땅이나 단단한 절벽이 파이는 것은 물론이고, 화염에 휩싸이기도 하며, 이 공에 맞았다 하면 전치 2개월 이상의 부상은 각오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가진 슛이다. 뿐만 아니라 '통키'의 라이벌인 '타이거'의 '번개 슛'은 아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내리며, 날씨까지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도 '통키'와 '타이거'는 그래도 제법 점잖게 묘사한 캐릭터다. 공을 던지는 순간 광풍에 가까운 회오리 바람을 동반하는 '회전 회오리 슛'의 주인공인 '민태풍'이나 단단한 피구공을 순식간에 짓누르는 '파워 슛'을 던지는 '태백산'은 이들이 과연 초등학생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20대 중후반에 가까운 외모를 소유한 이들이다. 국내에서 제작된 아동 영화인 <불꽃 슛 통키>는 결국 이들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들을 성인 배우로 캐스팅하는 기발한 촌극까지 벌인다.
그래도 우리는 '통키'와 '불꽃 슛'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 황당한 판타지는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열광시킬 수 있었다. 얼마나 멋진 환상의 세계인가?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기만 한 그 시절,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할 줄 아는 그들이 우리는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리고 그 부러움은 우리를 한동안 피구 경기로 이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불꽃 슛'을 던질 수 없었고, '번개 슛'도 던질 수 없었지만, 최소한 그 점프라도 흉내내려 노력하며, 그렇게 열심히 피구를 즐겨왔다.
그렇게 우리를 미치게 만든 <피구왕 통키>가 아련한 추억이 됐다니, 우리도 나이를 먹긴 먹은 것 같다. 특히 그 시절의 화려함이 이제는 황당무계함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어떤 면에서는 서글픈 것도 사실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꿈을 꾸고, 환상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화려함이 황당무계함으로 기억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통키'와 '피구'에게 바쳤던 열렬한 사랑은 그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꿈틀거리고 있다. 이따금씩 동심의 세계를 추억하며, 어린 날의 소중한 기억을 돌아보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피구왕 통키>는 '마지막 국딩 세대'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오늘 저녁에는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상징하는 '탱탱볼'을 찾아 창고를 뒤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듯 각 학교의 점심 시간과 체육 시간을 '지배'할 정도로 열풍이 불었던 피구는 곧 또다른 유행을 불러 일으킨다. 공의 재질이 부드럽고, 잘 튕겨올라 '탱탱볼'이라 부르는 공이 문구점에서 개당 1천원에 팔리던 그 시절, 어느날 갑자기 출시된, '불꽃 마크'가 새겨진 노랑색 탱탱볼이 무려 4천원의 고가를 자랑하며, 어린이들의 눈 앞에 등장한 것이다. 나 역시 이 유행에 뒤쳐질 수 없어 부모님께 이 공을 사달라고 사정해봤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부모님은 쉽게 사주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간절한 애원이 멈추질 않자, 어머니는 내가 가지고 있던 녹색 탱탱볼에 붉은색 유성매직펜으로 '불꽃 마크'를 그려주시며, 이것으로 만족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장의 심정은 참담했지만,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는데 별 수 없었다. 만족스럽지 못한대로 그 공을 가지고 노는 방법 밖에 달리 방법이 있을리가 있나.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가의 공을 구입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자신의 탱탱볼에 화려하게 수놓인 '불꽃 마크'를 의기양양하게 내밀며 피구를 즐겼고, 이 유행은 각 초등학교의 반마다 배치된 공이라면 배구공, 축구공 가릴 것 없이 피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공이란 공은 모두 '불꽃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너희들 정말 초등학생 맞니?
<피구왕 통키>의 실사영화 <불꽃 슛 통키>, 이것도 나름대로 추억이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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