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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AI의 음산한 편곡 ‘2050년판 사계’…새소리 사라지고 해충떼 맹위

등록 2021-10-15 04:59수정 2021-10-15 07:54

기후위기로 황량해진 서울의 사계 표현
20일 임지영 바이올린 독주·오케스트라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인공지능(AI) 프로젝트 '사계 2050'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이 변형해 만든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인공지능(AI) 프로젝트 '사계 2050'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이 변형해 만든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1725년 베네치아와 2050년 서울의 기후변화를 추상적인 음악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이를 통해 인류의 최대 당면 과제인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게 가능할까. 2015년 세계 3대 콩쿠르의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6)은 “그렇다”고 말한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임지영이 바이올린을 들고나왔다. 처음 연주 한 곡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봄의 첫 악장 도입부였다. 이어 가늘게 떨리는 현이 어둡고 음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느린 템포의 곡조를 연주했다.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비발디의 원곡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봄 3악장과 여름 1악장 앞부분도 원곡에 이어 다른 버전을 번갈아 선보였다. 그가 연주한 다른 버전의 ‘사계’는 2050년 서울의 기후 데이터 예측치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편곡한 곡이다. 정확히 말하면, 과학자들과 음악가들이 최신 기후 모델링 데이터를 이용해 정교한 알고리즘을 제작했고, 인공지능이 이를 바탕으로 1725년 비발디 작곡의 원곡을 비틀거나 찌그러뜨리고, 축소하거나 과장한 작품이다.

오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인공지능 작곡 ‘사계 2050―불확실한 사계(Uncertain Four Seasons)’는 비발디가 그린 푸르고 아름다운 베네치아가 아니라 기후위기로 병들어버린 불길한 도시 서울의 사계절을 음울하게 노래한다. 임지영이 바이올린 독주를 맡고 ‘사계 2050’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2부에서는 비발디의 오리지널 버전도 연주되므로 두 곡을 대비하며 감상할 수 있다.

2050년의 기후변화 예측 데이터에 근거해 인공지능이 비발디의 ‘사계’를 변형해 작곡한 ‘2050―사계’의 악보 표지.
2050년의 기후변화 예측 데이터에 근거해 인공지능이 비발디의 ‘사계’를 변형해 작곡한 ‘2050―사계’의 악보 표지.

‘2050년판 사계’는 무작위로 원곡을 변형한 게 아니라 과학적인 기후변화 예측치를 근거로 삼았다. 저감 정책이 시행되지 않아 온실가스가 현재 추세로 배출되는 경우(기후변화 시나리오 RCP 8.5)를 상정했다고 한다. 서울의 평균 온도가 2050년엔 2℃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니 거짓말 못 하는 ‘인공지능 작곡가’의 눈에 비친 2050년 서울의 사계는 봄이 와도 토양엔 물기가 없고, 여름이면 폭염으로 펄펄 끓어오르며, 겨울엔 가루눈조차 흩날리지 않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충실해 곡조를 변형한다. 비발디가 악보에 ‘새들은 노래하고’라고 표시한 부분에선 음표 몇개를 제거해버린다. ‘종의 감소 모델링 데이터’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봄’ 대목에서도 음표를 무더기로 뺐는데, 토양 수분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탓이다.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는 부분에선 전반적인 강우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해 음악의 속도를 느리게 조절했다. ‘종의 다양성 붕괴’ 데이터가 작동해 해충 떼가 맹위를 떨칠 것으로 내다본 대목에선 음의 세기를 원곡보다 강렬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새소리가 사라지고 둔탁하게 변형된 현대판 사계는 거칠고 황량해 묘한 슬픔으로 몰아넣지만, 처연한 기쁨을 불러내기도 한다.

“처음 음악 데모 파일을 들었을 때는 3초도 지나지 않아서 끄고 말았어요. 해괴할 정도로 난해하고 음산한 분위기였거든요.” 임지영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인공지능이 작곡한 곡이면 어떤가. 음악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는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인공지능이 비발디 원곡의 구조와 주제, 선율을 인용하면서도 2050년의 불안전한 서울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인공지능이 내다보는 2050년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관객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50-사계’공연 포스터.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오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50-사계’공연 포스터.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이번 공연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됐다. 영국 디자인·디지털 마케팅 회사인 아카(AKQA)의 주도로 한국과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2019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처음 연주했다. 다음달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개막프로그램의 하나로 세계 각지의 지역별 ‘2050 사계’ 연주가 24시간 동안 국가별 릴레이 공연 방식으로 온라인 중계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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