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에겐 한동안 화려한 최상급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오늘날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재즈 싱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재즈 보컬’ 등 주로 유럽 유력 언론의 극찬이 동원됐다. 지금의 나윤선에게 이런 타이틀은 다소 새삼스럽다. 이미 국내외에서 충분히 명성을 쌓고 독보적 위상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재즈 가수 나윤선’이 모처럼 한국 관객들 앞에서 대면 공연을 펼친다. 5~7일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에서 열리는 제18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셋째 날 무대다. 지난 2일 서울 삼성동의 자그마한 지하 공연장 엔플러그에서 그를 만났다. 미국과 유럽 6개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이틀 전 귀국했다고 했다.
“유럽은 지난여름부터 실내외 공연장을 100% 가동해요. 그동안 공연을 못 봐서 그런지 관객들 반응이 이전보다 더 뜨겁더군요. 프랑스는 재즈 페스티벌이 500개가 넘어요. 연어 떼가 고향을 찾듯이 여름이 되면 관객들이 자녀들 데리고 소풍 가듯 재즈 페스티벌에 놀러 갑니다.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죠.” 그는 “20년 뒤에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게 작은 소망”이라고 했다. 이제 막 쉰을 넘겼으니 이루지 못할 꿈도 아닐 듯싶다.
나윤선은 이번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서 ‘아침이슬 50돌’을 기념해 선보이는 ‘김민기 헌정 공연’에도 참여한다. 그에게 김민기는 특별한 존재다. 김민기가 만들어 흥행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대 ‘옌볜(연변) 처녀’ 역을 맡았는데, 그게 나윤선의 데뷔 무대였다. “저한테 그분은 아이돌이죠. 초등학교 때 그분 노래를 다 습득했어요. 가사 내용도 잘 모르면서 ‘기지촌’ ‘작은 연못’ ‘금관의 예수’ 같은 노래를 부르고 다녔어요.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분은 음악적 천재예요. 저한테 늘 용기를 주시곤 합니다.”
천하의 나윤선도 코로나19의 파고를 피하진 못했다. 무대 공연이 막히니 막막하기만 했다. 라이브가 생명인 재즈 가수이니 압박감이 더 컸다. “노래를 그만둘 생각마저 했어요. 가수로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하지만 역시 나윤선이었다. 결국 돌파구를 찾아냈다. 끝없이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고치고 또 다듬었다. 그 결실이 11집 앨범으로 맺어져 내년 1월 말께 발매된다. 그가 작사·작곡·편곡까지 한 곡들로 앨범 전체를 채웠다. “코로나19 사태가 뜻밖에도 25년 재즈 가수 이력에 전환점을 만들어줬다고 할까요.” 그가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로 나서는 첫 앨범은 어떤 색채일지 궁금해진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해맑게 웃었다. 그에게 무대 울렁증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저는 늘 자신이 없어요. 제 공연 영상도 보지 않아요. 굉장히 많이 떨거든요. 야외공연 때면 비가 내려 공연이 취소되길 빌기도 합니다. 하하하~. 그래서인지 모든 무대가 첫 공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괴롭지만 흥분도 되고 설레기도 하니까요.” 그가 끝없이 변신하며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든 공연을 ‘처음’인 것처럼 임하기 때문은 아닐까.
나윤선은 음색과 음역의 폭이 넓다. 동시에 작은 뉘앙스조차 놓치지 않는다. 조각칼처럼 섬세하지만, 때론 화산처럼 폭발하기도 한다. 꽃 같은 미성의 고음은 둔탁한 중역으로 이동했다가 돌연 저음의 귀곡성으로 변모한다. 그가 ‘디바디야~’ ‘슈비두와~’ 등 의미 없이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스캣 창법을 선보일 때면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은 무녀의 굿판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 언론이 제가 샤먼 같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그냥 내가 느끼고 좋아하는 내 음악을 하는 거죠. 누구를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생동감 넘치며 고정된 틀을 거부하는 나윤선의 음악은 새로움과 자유로움을 본질로 하는 재즈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꼭 서보고 싶은 공연 무대를 묻자 “아주 먼 곳과 아주 가까운 곳”이라며 아프리카와 북한을 꼽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향이 북한이에요. 평양에서 공연하고 싶은데 아직 기회를 만들지 못했어요. 국외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과 평양에서 재즈 공연을 할 날이 올지 모르겠네요.” 아버지 나영수(83) 한양대 명예교수는 국립합창단을 창단한 ‘합창계의 대부’로 꼽힌다. 어머니는 한국 최초 뮤지컬 악단인 예그린의 배우 출신 김미정(80)씨다. 할아버지도 연극을 했다고 하니, 예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셈이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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