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그룹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11일 오후 강원도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신작 <얼이섞다>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춘천문화재단 제공
힙합의 랩을 방불케 하는 빠르고 억센 경상도 억양이 흘러나온다. 귀신을 쫓을 때 쓰였다는 ‘객귀 물리는 소리’다. 수경을 쓴 우주복 차림의 무용수 13명은 그에 맞춰 격렬하게 온몸을 흔든다. 비틀고, 뒹굴고, 흐느적거리는가 하면 점프를 하거나 재주도 넘는다. 현대무용 그룹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11일 오후 강원도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한 신작 <얼이섞다>는 이렇게 혼을 쏙 빼놓듯 격하게 막이 오른다.
이번 작품 역시 탁월한 춤꾼 김보람 예술감독이 빚어내는 안무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무렇게나 흔들어대는 막춤 같다. 살짝 코믹한 느낌마저 묻어난다. 그런데도 뭔가에 홀린 듯 좀체 눈을 뗄 수 없다. ‘앰비규어스 댄스’란 이름 그대로, 여러 춤사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뿜어내는 독특한 개성 때문일 것이다.
이번 작품은 전통의 향토민요 가락에 맞춘 1부와 클럽의 테크노 음악에 맞춘 2부로 나눠 안무를 짰다. 밴드 이날치와 협업한 ‘범 내려온다’의 ‘빅 히트’로 현대무용팀으로선 드물게 팬덤을 확보한 이들이 2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음악의 원재료는 향토민요를 담은 문화방송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소리들이다. 김 감독은 “10년 전쯤 차를 타고 가다 흘러나오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오래전부터 춤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과거 소리들의 호흡을 찾아 움직임을 만들었고, 과거의 호흡 그대로 미래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1부, 2부로 나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김보람 예술감독. 춘천문화재단 제공
1부는 때론 흥겹고 때론 구슬픈 전통 소리가 춤의 배경을 이룬다. ‘멸치잡이 소리’ ‘밭 가는 소리’ ‘모찌는 소리’ 등 각종 노동요와 ‘코타령’ ‘동그랑땡’ 등 12곡이다. 후반부에선 대반전이 일어난다. 무대부터 조명이 번쩍이고 디제이가 턴테이블 돌리는 클럽으로 바뀐다. 음악도 강렬한 비트의 폭발할 듯한 테크노 사운드다. 촌로들의 소리와 강한 비트의 전자음이 결합해 기묘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만들기도 한다. 김 감독은 “1부는 과거 소리에 그대로 반응했다면, 2부는 과거 소리를 미래 감성으로 재해석했다”며 “그래서 움직임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1부와 2부가 다른 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람표 춤사위’의 독특한 개성은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이수경 피디는 ‘몸과 동작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세밀한 분석’을 꼽았다. 아무렇게나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랜 연구와 연습의 토대 위에서 나온 동작들이란 얘기다. 그래선지 겉으론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따라 해보면 매우 어려운 게 김보람 춤사위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얼이섞다>는 공연 제목은 ‘어리석다’의 변용이다. 김 감독은 “‘얼이 썩었다’는 어원에서 나온 ‘어리석다’를 ‘얼이 섞인다’는 의미로 재해석해봤다”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얘기, 영혼이 섞이는 작품을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과거의 소리와 현대의 춤이 섞이고, 전통의 노동요와 최신 클럽 사운드가 어우러지는 이색적인 춤판 <얼이섞다>에 대한 김 감독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리가 만든 춤이 ‘우리의 소리’처럼 후세에도 전달되고 남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동작 하나하나를 정말 공들여 만들었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제 공연장에서 보는 건 많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신작 <얼이섞다> 포스터. 춘천문화재단 제공
서울이 아닌 4개 지역 극장에서 신작을 초연하는 것부터 눈에 띈다. 이번 작품은 춘천문화재단이 먼저 제안해 제작했다. 지난해 11월 이들의 춘천 공연에 관객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게 계기였다. 이 기획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4개 지역 관객들과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공연은 춘천(12~13일), 고양(19~20일), 포항(25~26일), 천안(12월3~4일)에서 펼쳐진다.
춘천/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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