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코리안심포니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국 참가자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이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드뷔시의 ‘바다’를 지휘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제공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낯선 무대가 펼쳐졌다. 오케스트라 뒤편 합창석엔 관객 대신 심사위원 7명이 나란히 앉았다. 전면에 펼쳐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청중들은 평소에는 등을 돌려 보지 못하던 지휘자의 앞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다. 엄숙하기만 했던 청중석도 조금 달뜬 분위기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KSO)가 올해 첫발을 내디딘 국제 지휘 콩쿠르의 결선 풍경이었다. 지휘 콩쿠르 자체가 국내 처음이다. 1위를 하면 받는 상금 5천만원도 크지만 예술의전당 상주 오케스트라인 코리안심포니 부지휘자가 되면서 부산·인천·대전·광주시립교향악단 지휘봉도 잡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지난 7월 마감된 예심에 42개국 166명의 응모자가 몰렸다.
본선 진출자 12명 가운데 1·2차를 차례로 통과한 3명이 최종 결선에서 열띤 경연을 펼쳤다. 드뷔시의 ‘바다’를 지휘한 미국의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일라이어스 피터 브라운·26)이 우승을 차지했다. 코리안심포니 단원들이 주는 오케스트라상도 그가 받았다. 한국의 윤한결(27)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으로 2위를 했다. 3위인 중국의 리한 수이(추이린한·27)는 차이콥스키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지휘했다. 연주가 까다로운 대형 관현악 곡들이다. 누가 무슨 곡을 연주할지는 추첨을 통해 결정했다. 코리안심포니 지휘자로 활동했던 정치용 심사위원장 외에 다른 심사위원 6명은 모두 국외 전문가들로 채웠다. 국제 콩쿠르의 면모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제1회 코리안심포니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한국 참가자 윤한결이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을 지휘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제공
지휘 콩쿠르의 일부는 기악·성악과 달리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결선은 일반 연주회나 다름없는 ‘실전 무대 경연’인데, 그에 앞선 1차, 2차 본선은 ‘리허설 경연’이다. 지휘자가 처음 마주하는 단원들과 곧바로 리허설을 진행하고 심사위원들은 연습 과정 그 자체를 평가한다. 시간관리 능력도 중요 평가 항목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단원들의 특징을 신속히 파악해 자신이 해석하는 음악을 끌어내는 게 지휘자의 중요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치러진 2차 본선에서도 25분으로 맞춘 스톱워치가 껌뻑였다. 윤한결은 15초를 남겨두고 단원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웃음을 자아내는 여유를 보였다. 실제로 심사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호평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산전수전을 겪어야 얻을 수 있는 게 ‘명지휘자’ 타이틀이다. 몇차례의 리허설을 통해 ‘거장의 새싹’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심사위원들이 밝힌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평가였다. 플로리안 리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사무총장은 “그가 원하는 것을 음악가들이 어떻게 표현하게 하는지 지휘자의 의사소통 방식을 보며 평가한다”고 했다. 영국의 스타 지휘자 대니얼 하딩을 키우는 등 신인 지휘자를 발굴·육성해온 문화예술경영인 레이철 보론은 “리허설은 영감을 준비하고 공연은 이를 이루어내는 일”이라며 “공연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온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심사엔 참여하지 않았지만 코리안심포니를 이끌 신임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는 “연주자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명확한 의사소통을 통해 그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게 지휘자의 임무”라며 소통 능력을 강조했다.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할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지휘자의 최고 덕목인 셈이다.
제1회 코리안심포니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중국 참가자 리한 수이가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차이콥스키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지휘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제공
지휘 콩쿠르는 관문이 좁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에 가입된 피아노 콩쿠르는 50개지만 지휘 콩쿠르는 6개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구스타보 두다멜이 우승했던 독일 말러 콩쿠르와 프랑스 브장송 콩쿠르, 이탈리아 토스카니니 콩쿠르 정도가 손에 꼽힌다. 한국 음악인들이 기악·성악에서는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제패하고 있지만 지휘 분야에서는 유독 취약성을 드러내왔다. 이번 콩쿠르를 기획한 박선희 코리안심포니 대표는 “유능한 지휘자 양성이 국내 음악계의 시급한 과제”라며 “지휘자를 뽑는 콩쿠르를 축제처럼 진행하고 싶었다. 이런 과정에서 국내 청중들도 지휘라는 영역을 새롭게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적으로도 기악·성악 연주자들의 활동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추세다. 피아니스트인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지휘자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개인의 노력만으론 부족하고 사회적 관심과 꾸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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